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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북 Jun 30. 2021

자기애의 늪에 빠진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정유정 신작 장편소설 / 책리뷰 『완전한 행복』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행복은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결혼한다면 한 팀이 되는 건데 자기도 내게 맞춰 노력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맹세해?"

"맹세해"

맹세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그는 '노력'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여름+스릴러 = 정유정 작가가 완전무결한 행복한 삶을 꿈꾸는 한 나르시시스트와 함께 돌아왔다.

한여름 서늘한 공포 정유정『완전한 행복』 이다.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아빠가 아니었다. 등을 웅크리고 길고 검은 머리칼을 풀어 앞으로 늘어뜨린 알몸의 여자였다.

붕대가 감긴 한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완전한 행복을 위해 가족과 타인의 삶은 완전한 불행으로 이끄는 여자

유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하나씩 제거해나간다. 그것이 설령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가 물었어요. 왜 이혼하려고 하는데?

오빠 대답은 간단했어요. 더 살다간 죽을 것 같아서.

아내의 전 남편의 여동생이라는 여자가 실종된 오빠는 분명 아내와 관련되어 있다며 그를 찾아왔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버려 죄책감 빠져있던 그는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며 진실에 다가서려 하는데...


아이의 영혼을 지배하는 절대자.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여자.

그녀의 악의 서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믿고 읽는 정유정 작가의 신간 소식에 설레었다.

생각보다 잔인함의 정도는 그전 작품에 비해 약했지만 상상을 자극하는 필체의 힘이 느껴져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희대의 악녀라 불리는 한 사건이 떠올랐다. 작가도 이 사건이 이야기를 태동시킨 배아였다 말했는데, 가려졌던 그녀의 이야기가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그 끔찍함에 소름이 돋았다.


한 사람의 영혼까지 지배하는 가스라이팅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의 행동과 심리를 교묘하게 조정하며 상대방이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스며들게 만든다. 결국 상대방은 자아를 잃어버리며 그를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하게 된다.


<<가스라이팅 대화 예시>>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이게 다 너가 잘못해서 그런 거잖아.
난 그런 말 한적 없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널 사랑하겠어?
날 사랑한다면서 이 정도도 못해줘?
다 너를 사랑하니까 하는 말이야.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내 말대로 해.


어쩌면 우리는 일상 속 가스라이팅을 하거나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유정 작가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고백하며 아주 야금야금 길이 들었다고 한다. 그 후 관계에서 벗어났을 땐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고 하니 가스라이팅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소설을 통해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2년 후 다시 독자와 만나자는 정유정 작가의 인터뷰를 보며 <<완전한 행복>>에 이어 앞으로 출간될 '욕망'에 대한 소설 2편을 기대하게 된다.



언젠가부턴 이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다.

다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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