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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ker Jun 11. 2022

대공황, 새로운 경제학을 탄생시키다.

거시경제학 역사의 시작

1. 고전주의 경제학의 시대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 (Thomas Samuel Kuhn, 1922-96) 은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적 지식의 진보는 선형적이고 연속적인 형태의 매끄러운 변화가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이전의 지식체계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현상 앞에, 과거의 패러다임과 "단절"해야만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진리체계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하는 말과도 상통한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전 글에서 말한 거시경제에 대한 해석도구로서의 '거시경제학'도 그러한 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20세기 초에 발생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1929-39)"이 그 위기였다. 당시까지만해도 고전주의 경제학이 지배적이었다. 고전주의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90)의 '보이지 않는 손'을 그 이론적 시초로 하여 시장의 가격조정 및 초과공급 또는 초과수요에 대한 해소 (시장청산) 기능이 원활이 작동한다고 보는 경제학 기조다. 그래서 누군가가 경제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을 하는 것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본다. 고전주의 경제학자 중 한 명인 프랑스의 장 밥티스트 세이 (Jean Baptiste Say, 1767~1832)가 말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이 그 대표적인 주장 중 하나다. 세이의 법칙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폐기해야했던 대표적인 패러다임이었다.


출처 : Investopedia


세이의 법칙의 논리는 무엇일까? 우리가 무언가에 대한 수요를 갖는다면 그럴 수 있는 이유란, 내가 무언가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그 생산한 것을 팔아서 얻은 매개물인 돈으로 우리는 필요한 무언가를 산다. 즉 수요의 원천은 공급(생산)인 것이다. 많이 생산하면 많이 구매할 수 있는 것이므로, 생산능력이 높을 수록 구매력 또한 높다. "공급(생산)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물론 세이도 매순간 공급이 100% 수요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했다. 일시적인 초과공급 (또는 수요부족)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시장의 가격조정기능에 의해 초과공급 상태의 재화에 대한 가격이 하락하여 다시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지점을 달성하게 된다. 외부의 개입이 없는 경제 하에서라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오히려 정부개입과 같은 시장논리 왜곡은 자칫 공급과 수요의 영구적인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


세이의 법칙과 같은 고전학파 경제학의 주장은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그 효과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공급의 대대적인 증가는 수요에 의해 뒷받침되어 경제규모의 확대 및 성장을 가능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2. 고전주의 경제학 패러다임의 위기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을 믿고 생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고전주의 경제학적 비전은 모든 국가의 모든 기업들로 하여금 대대적인 설비투자와 생산을 부추겼다.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물론 생산규모도 급격히 증가했다. 여기에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소위 "과학적 생산방식"을 주창한 테일러(F. W. Taylor)에 의해 노동의 효율적 사용이 확산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기조를 테일러리즘 Taylorism이라 한다.), 근로기준법과 같은 근로자보호제도가 없던 시대에 이는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착취로 이어진 것이다.


분업화, 차등성과급제 등으로 요약되는 테일러리즘 하에서 노동이 언제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한편 막대한 효율성을 지닌 설비자본의 가치는 높아지지만 사람이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는 점점 낮아졌다. 한편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제활동에 힘입어 도시의 인프라는 고도화되고 도시의 생활물가는 계속해서 오르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이 시기의 사람들의 생활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도시의 공장 말고는 일자리가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도시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매우 열악해졌다. 이는 해방 이후 서울의 모습과도 같았다.

고전주의 경제학은 돈을 벌기 위한 생산활동에 있어서 자본과 노동의 효율성이 달라, 보상에 있어서 큰 격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을 소유한 이에게는 높은 보상을, 자본을 소유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을 팔아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낮은 보상을 제공했다. 그 결과 최저생계비 수준의 보상을 받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득 전부를 소비해도 생활이 어려웠고,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은 소득이 워낙 많아 웬만큼 소비하고도 소득이 아주 많이 남게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불균형의 일반화였다. 생산성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경제원칙 하에서, 산업화를 통해 생산성이 급증하는 환경에서는 대부분 노동자인 소비자들이 충분하지 않은 소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소득으로는 자본설비로 생산한 재화들을 모두 소비할 정도로 큰 수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즉, 재고가 쌓이기 시작한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고전주의 경제학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3. 거시경제학의 시작


팔리지 않은 재고의 지속적인 축적은 기업 입장에서 큰 문제다. 직접적인 재고관리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당시에는 재고의 축적에 큰 문제의식 없이 계속해서 또 다른 재고들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진짜 문제였다. 재고가 회전되어 채권이 현금으로 회수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원재료를 사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주고 이자도 내면서 생산활동을 계속한 것이다. 새로운 투자없이 현금흐름만으로 버티기 어려워 도산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당시까지 과열된 증시도 거품이었다는 논란이 발생하면서 빠르게 폭락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도산하면서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임금마저 끊겼다. 경제 내의 수요가 계속해서 증발했고 이러한 연결고리는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시작이었다.


출처 : picryl.com



이러한 불황과 실업의 원인을 새롭게 진단한 사람이 바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였다. 고전주의 경제학 입장에 따르면 이러한 대공황과 20% 이상의 대량실업을 두고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시장이 균형을 이루어 다시 경제가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전주의 경제학파는 문제를 임금의 유연한 변동을 방해하는 노동조합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사실 실업자들이 더 낮은 임금으로라도 일하려고만 한다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기업가는 상품가격을 내리면 매출액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주의 경제학파의 주장과 달리 현실은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 없었다. 자본설비를 통해 구축된 현대산업경제의 소득분배 불균형 하에서는 수요의 부족이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활동을 통해 대부분의 이윤을 가져가는 쪽은 자본을 소유한 소수의 사람들인데, 그들은 소득에 대비해서 너무나 적게 소비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매우 적은 임금을 받으며 임금 대부분을 써도 생활이 넉넉지 않게된 것이다. 자본소득과 임금소득의 괴리가 커지는 것은 현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케인즈는 그 원인을 "유효수요"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유효수요란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를 말하는데, 지나친 소득불균형 상태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득이 적어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제 필요한 만큼의 수요량을 얻지 못한다. 한편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을 소비하고 나머지는 저축을 해서 다른 누군가의 투자수요로 이어지도록 한다. 여기서 만성적인 유효수요의 부족이 발생한다. 유효수요가 부족한 경제에서는 저축이 투자로, 투자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란 자동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 즉, 그 전까지의 "저축이 미덕"이라는 말은 틀린 것이다. 오히려 저축은 성장을 저해한다는 "저축의 역설"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케인즈는 유효수요이론의 관점에서 경제 내의 수요를 정책당국이 적극적으로 관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케인즈의 그 유명한 1936년 저서『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은 당대 경제학이 놓치고 있었던 이 사실을 거시경제의 여러 변수들 간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이는 경제학 패러다임의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 고전주의 경제학은 가격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장기(Long run)에는 시장의 모든 변수들이 스스로 조정되어 균형을 찾아간다고 보았지만, 케인즈는 시장의 단기적인 불균형은 스스로 조정될 수 없으므로 모든 거시경제변수들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케인즈는 이러한 관점에서 말했다. "장기에는 결국 모두가 죽는다 (In the longrun, we are all dead.)" 이것이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관리와 개입이 필요한 이유였다.


출처 : https://biblio.co.uk/


관리와 개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정책의 대상을 지정해야한다. 관리대상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우선적으로 명명되어야 한다. 케인즈가 사실상 거시경제학을 창시했다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케인즈의 저서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보듯, 케인즈는 고용, 이자, 화폐(량) 등의 거시경제 변수를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했고 이러한 변수들 간의 함수관계를 일반이론으로 정리하고자 했다. 이렇게 거시경제변수들을 함수관계로 엮음으로써 경제 내의 작동원리가 규정된다. 이를 바탕으로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그 효과를 예상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살펴볼 거시경제학의 여러 모델들은 모두 함수관계로 구성된다. 어떠한 조건 하에서 하나의 경제변수가 변화할 때 다른 변수들이 서로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따라 경제 내의 균형점이 달라지며, 정책목표에 따라 재정 또는 통화정책 중 무엇을 해야하는지가 결정된다. 거시경제학의 등장은 국가의 역할에 관한 근본적인 통찰 또한 제시했다. 국가는 시장의 자동조정기능만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필요할 때라면 언제든지 시장에 개입하는 "큰 국가"가 되어야 한다. 대공황 이후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행했던 일자리 창출로서 뉴딜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거시경제학은 새로운 경제학 패러다임이자 국가의 정치경제학적 역할까지 새롭게 규정하는 하나의 세계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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