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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시 Aug 04. 2022

1,000피스 퍼즐을 닮은 음식, 몰레(Mole)

푸에블라 Augurio에서 맛본 멕시코 전통&퓨전 디쉬

 아직 마땅한 매거진 이름을 찾지 못했지만, 음식 및 여행 블로거로서 오랜 숙명이었던 '중남미의 식문화'에 대해 연재해 보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각 국가별 전통 식문화의 특징을 명료하게 정의하기란 모순에 가깝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르헨티나는 소고기가 맛있다', '멕시코는 타코가 유명하다' 등의 표현을 쓸 수야 있다. 다만 각국의 넓은 영토만큼이나 지역별 조리법 및 특산물이 상이해 전통 음식을 딱 하나만 꼽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자 역시 처음 멕시코에 도착한 , 잔뜩 쌓인 또르띠야에 철판  고기와 해산물, 각종 살사를 얹어 '멕시코  타코'라고 SNS 게시했더랬다. 이를  멕시코 출신 대학 동기는 '이건 타코가 아니라 파히타다'라고 쌍욕을 퍼붓더라. 그제야 또르띠야에 뭔가를  먹는다고  타코는 아니구나, 라는 베이직한 상식을 깨우쳤으며, 이후 멕시코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마주한 무궁무진한 멕시코 미식의 세계에  앞이 어질할 정도였다.

출처 : Noticieros Televisa

 멕시코 각지의 유명 레스토랑에 방문한다면, 스페인어 메뉴판에서 'Poblano(푸에블라식)'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전통 레시피가 탄생했고, 또 식민 시대를 거치며 유럽에서 건너온 식재료와 조리법을 받아들여 현재 가장 다채로운 식문화를 선보이는 지역 중 하나인 푸에블라. 이 도시의 식문화는 그 섬세함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 : angelopolis.com

 푸에블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단 하나만 꼽자면, 모든 이가 한 목소리로 '몰레(Mole)'를 외칠 것이다. 언뜻 보면 장류와 같은 이 음식 관련 다양한 탄생 썰(?)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신빙성 있는 기원설은 아래와 같다.

 

 17세기, 푸에블라의 산타 로사 수녀원에 깜짝 손님이 찾아온다. 바로 누에바 에스파냐의 총독인 후안 데 팔라폭스(Juan de Palafox).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려 높은 손님을 대접할 만한 식재료도 없는 와중에, 급히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수녀들은 대혼란에 빠진다. 이때 늙은 칠면조를 끓이던 솥에 실수로 온갖 향신료를 쏟아버리지만, 시간이 없는 나머지 이 혼종의 음식을 한데 갈아 칠면조 고기를 찢어 총독에게 진상한다. 놀랍게도, 이를 한 숟갈 맛본 총독이 최고의 음식이라며 극찬을 퍼부었고 이후 멕시코 전역으로 레시피가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푸에블라에는 역사 깊은 식당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레시피를 재해석한 컨템포러리 레스토랑 역시 무수히 존재한다. 여행 이틀 차 방문한 Augurio(아우구리오)는 전통 몰레 요리법에 독특한 시도를 곁들인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식당이다. 이른 점심 방문하여, 느긋한 식사를 즐기고 진정한 Poblano 퀴진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하며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우구리오의 수장인 셰프 Angel Vazquez의 이름이 새겨진 박스. 이곳의 몰레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간편하게 포장해 판매를 진행하나 보다.

 오리지널한 음식을 선보이는 업장이기에, 다소 푸근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상상했다. 막상 방문해 보니 컨템포러리하고 통통 튀는 인테리어에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혼밥을 즐길 수 있었다.

 양심 고백하자면, 필자는 멕시코 음식에 싫증이 났다. 비슷비슷한 칠레와 살사의 향연에 혀가 지쳤다고나 할까. 더군다나 호텔 조식으로 그린 살사 듬뿍 칠라낄레스를 먹고 나왔는데, 그래도 멕시코시티로 돌아가기 전에 푸에블라식 음식 한 번 먹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다소 억지로(?) Augurio에 왔단 말이다.


 때문에 내 돈 주고 몰레가 잔뜩 들어간 메인 메뉴를 주문하고 싶지는 않았다. 서버에게 이런 심정을 설명하며 '그래도 너희 몰레가 너무 유명하다 보니 아주 조금 맛보고는 싶어. 몰레가 정말 조-금 들어간 메뉴는 없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걱정하지 말라며, 작은 그릇에 맛보기 몰레를 줄 테니 맛이 어떤지 소감을 알려 달라던 유쾌한 서버.  

 흔히 알려진 몰레 레시피에는 다크 초콜릿이 들어간다. 하지만 Augurio의 경우 초콜릿을 넣지 않고 칠리, 아몬드, 바나나 등 비건 베이스로 조리한다고 한다. 때문에 쌉쌀하면서도 뒷맛이 텁텁하지 않고, 마른 칠리 특유의 익숙하면서도 묵직한 감칠맛이 돌더라. 약고추장보다는 묽지만 쫀득한 질감이 일품인 이곳의 몰레는 꼭 맛보길 바란다.


 덧붙이자면, 오리지널 몰레 레시피에는 50가지 이상의 향신료가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요점은 재료를 '섞는다'가 아닌 '조화시킨다'에 있다. 1,000피스의 직소 퍼즐을 구입한다고 해도, 각 조각들이 섬세히 짜 맞춰지기 전까지는 그저 시판 제품에 불과하다. 각자의 자리를 찾아 온전한 조화를 이뤄야만 퍼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듯, 몰레 역시 수십 가지의 향신료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만 오감을 일깨우는 '요리'가 된다.

 웰컴 푸드는 쌀로 만든 크로께따. 뒤이어 나올 메뉴들에서도 엿볼 수 있겠지만, 스페인식 레시피를 다양하게 활용해 더욱 재미있었던 Augurio의 요리들.

 속풀이로 주문한 수프 역시 굉장히 맘에 들었다. 호박과 호박꽃, 훈연 향이 밴 치즈, 버섯 등을 알차게 넣은 푸에블라식 수프는 숙취에 지친 속을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많이 맵지 않은 할라피뇨 소스를 살짝 곁들이니 기분 좋은 칼칼함이 돌았다.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푸에블라 음식의 대표적인 특징은 유럽과 멕시코 전통 레시피의 융합이다. 이에 더불어 멕시코의 미식 전문가들은 '섬세한 매운맛'을 꼽는다. 멕시코 산지의 고추만 해도 족히 50가지가 넘는데, 푸에블라의 요리사들은 이를 적절히 사용해 맛있는, 그리고 매력적인 매운맛을 구현해 낸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메인 메뉴는 새끼돼지 콩피와 피피안(Pipián). 몰레는 칠리와 각종 향신료를 섞어 만든 살사라면, 피피안은 호박씨와 아몬드 등 견과류를 주재료로 한 걸쭉한 살사의 일종이다. 찐 연어 뱃살처럼 부드럽디 부드러운 돼지고기 위에 삶은 검은콩과 쇠비름, 쌀 등을 올려 보는 맛을 더했다.

 다만 음식을 주문하면서도 간과했던 사실은, 필자는 새끼 양과 새끼돼지 등의 음식을 먹을 때 일종의 죄책감(...)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것. 이렇게 이상한 취향과 이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이들이 부담 없이 즐길만한 요리이다. 꾸덕꾸덕한 피피안과 돼지 콩피의 부드러움이 한데 어우러져 기분 좋은 식감을 자아낸다.


 혼자 방문해 다양한 요리를 맛보았음에도 3만 원대라는 착한 가격을 자랑하는 Augurio. 이곳 외에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최고의 푸에블라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산재하니, 멕시코를 방문하는 미식가라면 푸에블라를 반드시 기억하기를 바란다.




미식 여행 크리에이터 @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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