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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시 Aug 11. 2022

술이 솟아나는 마을, 떼낄라

멕시코 전통주의 기원을 찾아서

 노파심에 미리 이야기하지만, 제목처럼 땅을 파면 술이 온천마냥 솟아오르는 마을은 아닙니다. 하지만 멕시코 술문화의 정수를 맛보고자 하는 자라면 죽기  반드시 들러야 하는 여행지, 할리스코 주의 떼낄라(Tequila).


 할리스코 주를 비롯한 '인증을 받은' 일부 지역에서 생산된 주류만이 'Tequila'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 떼낄라 마을을 비롯한 할리스코 주에는 원산지 인증(DOT, Denominación de Origen)을 취득한 주조 기업 157개 및 그 외 중소규모 브랜드가 무려 1,756개나 존재한다고 합니다.


 멕시코에서 주류 산업 규모를 따져보았을 때 1위인 맥주(약 75%)의 뒤를 잇는 산업이 바로 떼낄라 및 메스칼(약 19%)입니다. 이 두 술을 빚는 국가는 멕시코가 유일하며, 멕시코에 처음 방문한 이라면 이 두 주류를 종종 혼동하곤 하죠(사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Bourbon이 위스키의 일종이듯, 떼낄라 역시 메스칼의 하위 범주라고 이해하면 쉽겠죠.


 약 28가지의 다양한 용설란을 찌거나 로스팅해 추출해 낸 술인 메스칼 중, 오직 블루 아가베(Agave Azul)를 사용해 원산지 인증을 받은 지역에서 만들어낸 술만이 떼낄라라는 호칭을 얻습니다. 멕시코 어느 바에 가도 최소 5가지 이상의 메스칼 또는 떼낄라 샷을 맛볼 수 있으며, 두 술을 베이스로 한 이국적이고 깊은 향미의 칵테일 역시 그 세계가 무궁무진합니다.


 마을의 초입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수의 떼낄레라(Tequilera, 떼낄라 양조장)가 농익은 색채를 뽐냅니다. 대부분의 떼낄레라에서는 각 브랜드의 술과 그에 어울리는 안주를 판매하는 바 또는 대규모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니, 투어 전 먼저 배를 채워도 좋아요.



호세 쿠엘보 양조장, Fábrica La Rojeña

 호세 쿠엘보 제품을 생산하는 '라 로헤냐'는 1812년 개업하여 현재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손꼽힙니다. 브랜드명의 Cuervo는 스페인어로 까마귀를 뜻하기에, 거대한 까마귀 새장이 양조장 입구에 설치되어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아가베 밭에서 싣고 온 원물을 가공하고 오크통에 숙성시키는 과정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호세 쿠엘보 익스프레스 투어. 아가베를 익히는 화덕에서 열이 뿜어져 나오고, 숙성실 등의 공간 역시 냉방시설이 부재하기에 전반적으로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투어가 진행된다는 점 참고해 주세요.


 양조장 투어 막판에는 호세쿠엘보 사에서 만든 떼낄라 베이스 탄산음료를 하나씩 나누어 주더군요. 무더위에 지친 코스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칵테일입니다.



떼낄라 투어 Tip : 숨겨진 양조장 발굴하기

 호세 쿠엘보 익스프레스 투어의 장점이자 단점은, 점심식사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게 대체 왜 장점이냐고요? 투어 가이드들의 말에 따르면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식당의 음식 퀄리티가 그-다지 좋지 않으니, 차라리 유명 식당에 들르는 것이 낫다고 하더군요. 양조장 투어 후 충분한 자유시간을 제공하니, 동네 시가지를 돌며 식당을 겸하는 작은 떼낄레라를 물색해 보세요.


 구글맵에서 가장 평점 높은 식당을 찾던 중, 떼낄라 브랜드 'Sauza'에서 운영하는 La Cueva de Don Cenobio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덜 유명한 브랜드의 술은 과연 어떨까요?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겸 이 레스토랑을 선택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 최고의 선택이었죠!


 먼저 할리스코 주의 고온 건조한 날씨에 어울리는 소금 레몬맥주로 시작해, 떼낄라와 꾸덕한 아사이베리청이 가득한 칵테일로 주종을 넘나들었습니다. 떼낄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은 스모키 하면서도 쨍한 향이 베리류 및 시트러스류와 묘하게 어우러졌습니다.


 Jocoque 치즈 샐러드, 문어 카르파치오, 립아이 스테이크 모두 굉장히 퀄리티가 높았습니다. 더불어 탁 트인 분위기와 서버들의 센스까지 곁들여지니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더군요. 술과 미식의 마을에서 휴가를 보내는 듯한 기분으로 식사하고 싶다면, 탐험하는 기분으로 시내 외곽 떼낄레라를 찾아가 보세요!



떼낄라 마을 볼거리와 즐길 거리

 전형적인 멕시코 소도시 중앙광장의 모습이죠, 대성당을 등진 플라자와 알록달록한 깃발이 특징인 떼낄라 마을 센트로. 이 사진만 본다면, Tequila 포토존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타 시골마을 대비 딱히 특별한 점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재미있는 관광 콘텐츠는 바로 이 투어 차량입니다. 대부분의 멕시코 관광 도시에서는 2층 투어버스를 운영합니다. 하지만 이 마을의 경우 오크통을 본뜬 소규모 투어 차량이 시내를 누비더군요. 여타 도시의 투어버스 탑승객의 경우 사진을 찍고 풍경을 구경하는 데 집중하지만, 떼낄라 마을 차량의 경우 탑승객 모두가 대낮부터 거나하게 취해 노래하고 춤춘다는 점이 너무나 '떼낄라스럽다'고 느꼈어요.


 더불어 센트로 곳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수십 가지의 떼낄라 샷을 판매하는 노점들이 있어, 각 제품들의 특징 및 숙성 정도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오리지널 떼낄라뿐만 아니라 커피, 과일, 리큐어 등을 혼합한 제품들도 갖가지 맛보다 보면, 어느새 날숨에서 향긋한 술내음이 잔뜩 배어나오죠!


 자유시간이 끝날 무렵, 이미 술이 오를 대로 오른 여행자들은 마을 입구의 공연장으로 향합니다. (물론)공연 중간중간 떼낄라 샷 및 다양한 칵테일을 쉼 없이 제공하죠.


 전통 무용 공연이 끝나면, 마리아치들이 흥을 돋우고 관람객들을 무대로 이끕니다. 이에 너 나할 것 없이 20대부터 노부부들까지 무대로 나와 막춤을 즐깁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는 어디 빠지지 않는 외향인이거늘, 멕시코에 오니 로컬들의 흥은 아무리 애써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떼낄라 투어의 마무리, 용설란 농장

 광란의 공연 후, 버스를 타고 이십여 분간 달리면 광활한 아가베 농장이 펼쳐집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밭에서 재배된 이 용설란들이 원산지 인증을 받은 각지의 공장으로 보내져 가공을 거칩니다. 석양이 질 무렵이기에 왜인지 정적이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었어요.  


 역시 빠지지 않는 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또 망고와 석류 주스가 가미된 떼낄라 베이스 칵테일을 '또' 주네요.


 떼낄라는 땅 위에 드러난 이파리 부분이 아닌, 뿌리 바로 위쪽의 동그란 피냐(Piña, 파인애플)를 가공해 만듭니다. 숙련된 이들만이 피냐의 손상을 최소화하여 깔끔하게 다듬어낼 수 있다고 하네요. 즉석에서 잘라낸 피냐를 맛볼 수 있는데, 꾸덕하고 달착지근한 콜라비 향이 느껴졌습니다.


  떼낄라 마을 투어는 동명의 술과 굉장히 닮아 있었습니다. 숙성되기 전의 술인 레포사도(Reposado)처럼 맑고 쨍한 아침 공기 속에서 동행들을 만나, 다채로운 풍경의 마을을 누비며 점점 무르익어가죠. 그리고 농익은 분위기와 진득한 석양 아래서, 잔잔한 아쉬움을 남기는 떼낄라 아녜호(Añejo)처럼 여운을 주며 막을 내립니다. 


 멕시코에서 사 온 비싼 술을 아껴마실 때면, 이날의 기타 소리와 양조장의 증기가 퍼지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여러분에게도 공감각적으로 추억을 복기하게 하는 술이 있나요? 지금까지 애주가의 심금을 울리는 마을, 떼낄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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