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걸었어

들어가는 글

by 노유현

햇빛이 화창하다. 얇은 창 하나를 두고 커피 머신을 딸깍거리며 샷을 내리고 있다. 햇빛은 점점 더 깊게 바닥을 비추며 자신을 봐달라고 애쓰는 듯하다. 손님들의 끝없는 줄. 멈추지 않는 주문용지. 숨이 가빠온다. 머릿속이 하얗게 번진다.

‘ 아,,, 여기서 뭐 하냐?’



일하던 레스토랑을 그만두었다. 25살. 전역을 하고 시작된 원룸 살이. 숨 쉬고 있지만 자신이 없는 삶. 100만 원을 받고 월세와 관리비 50만 원을 내니 남은 돈 절반. 핸드폰비, 티셔츠를 하나 사니 돈이 없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달라고 할 처지가 못 된다. 손 벌릴 곳이 없다. ‘나는 왜 이딴 인생을 살아야 할까?’ 매일이 불만이었고 스스로를 잠식했다. ‘병신 같은 놈. 음악밖에 할 줄 모르니까 이따위 삶이지.’



가끔씩 친구들과 만나 거나하게 취해본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나온 2만 원. 꼬치와 가락국수를 시키고 소주 네댓 병에 헛소리를 나불대며 세상의 시름을 잠시 잊어본다. 짧았던 술자리는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간다. 유난히 무거운 발걸음으로 취한 채 집을 향해. 그러다 숨겨왔던 억울함과 세상에 대한 울분이 가슴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차오른다. 비난의 대상은 없다. 왜? 누굴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까. 젊은 시절에 느껴지는 그 울분들은 풀리지 않은 채 쌓여만 갈 뿐이다.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두 볼에 뜨거운 눈물 줄기만 흐르고 가끔씩 발에 차이는 돌들을 다시 한번 세게 찰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다는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 편의점 도시락은 2,500원. 삼각김밥 900원. 만원이 없어서 굶기를 수차례. 이번 달 핸드폰 요금을 내지 않으면 끊기기 일보 직전. 10만 원이 필요하지만 도저히 구할 곳이 없었다. 그러다 정 견디기 힘들어서 큰 마음을 먹고 친척에게 문자를 보낸다. 다들 힘들어서 죽는소리를 한다. 한껏 부풀려진 큰 마음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쉬익’ 거리며 바람이 빠진다. “알겠어요. 괜찮아요. 잘 지내세요.” 그 뒤로 핸드폰은 3개월간 울리지 않았다.



‘죽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언제나 겁쟁이 었다. 부모가 없으니 남들에게 망나니라는 소리를 듣기가 싫어서 주변 어른을 만나거나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때 매번 가면을 썼다. 가면은 잘 맞지도 않고 더러워서 나의 속을 망가뜨렸다. 그렇게 세상 속에 마음이 다 열린 채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냥 이렇게 사는 거겠지’라는 생각으로 견디기 시작했다.



그 어떤 울타리도 없는 자유로운 삶. 하지만 노예였다. 매달 50만 원의 집세는 점점 목을 조였고 삶의 의지를 매번 꺾어 놓았다. 언제나 수중에 남는 돈은 몇 천 원 남짓이거나 마이너스. 그러다 이 속박된 삶이 견디기 힘들어서 꿈을 한 번씩 꾸게 되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저 자유롭게 걷는 꿈을 꾸었다. 몸은 아주 덥고 고통스러웠지만 왜 인지 마음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첫 자유였고 속박을 풀어낸 순간이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이건 걷기라는 행동으로 자유를 찾아 나아가는 어리숙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아직도 사회적인 삶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걷기로 찾은 자유를 통해 진정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그 걸음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