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은 떠나봐야 깊이를 알 수 있다

양평

by 노유현

경기도 자전거길은 양평 전까지 참 멋지게 잘 꾸며져 있다. 중간중간 나오는 터널은 푹 익은 더위를 식혀주기에 금상첨화. 살인적인 뜨거움은 하얗던 피부를 벌겋게 만들어 놓았다. '걸어서 부산 까지라니...' 혼자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한강을 따라가는 길은 아름답다. 햇살에 반사되며 빛나는 윤슬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귀중한 광경이다. 그런 멋진 순간들과 함께 하며 '살아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진짜 살아가는 법이 무언지 그때 많이 느끼고 지금 살아가는 여유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경제적 여유는 아니지만.


아무튼 한참을 걷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다. 워낙 땀이 많다 보니 발에도 땀이 많은데 열감을 이기지 못하고 양말과 살에 마찰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로 원만한 합의를 하지 못하고 살가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다. 양쪽 발바닥에 100원짜리 동전 3개 크기의 물집이 잡히고 뒤꿈치에도 잡혔다. 심하게 고통스러웠지만 애써 공들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나이가 이 정도도 못 이기냐며 속으로 자신을 질책했다.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50분 걷고 10분 쉬고 했어야 했는데 쉬는 시간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 무리수였다. 그렇게 아픔으로 더 이상 가지 못할 것 같아서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다. 처음엔 정자가 보이길래 드러누워서 편하게 쉬어가려 했지만 눕고 보니 천장에 말벌집이 눈에 딱 들어온다. 그리고 들리는 "붕, 붕" 소리들. 말벌이 얼마나 큰지 붕붕거리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한참을 떨어진 곳 벤치로 피신을 갔다. 그 자그마한 것들이 왜 그렇게 무서운지 열은 받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마치 힘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벤치에 가방을 던져 놓는데 들리는 소리. "털썩" 무겁긴 무겁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마구 짐을 챙겼다. 어깨에 얹힌 고통이 젊음의 무게같다.


"아이고, 힘들다. 좀 쉬어보자꾸나." 아저씨 같은 말을 내뱉으며 앉는다. 한숨을 쉬이 뱉고는 주변을 둘러보고 하늘을 쳐다본다. 깊었던 삶의 무게가 한 시름 덜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어유 발에 물집이 많이 잡히셨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며 왠지 모를 위로가 두 눈에 가득 찬다. "네, 오래 걸었더니 물집이 잡혔어요." 그 말을 들은 아저씨가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말한다. "바늘 하고 실 있어요?"


인터넷을 쥐 잡듯이 뒤지며 찾아낸 결과 물집에는 바늘과 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작은 포켓 사이즈로 된 바늘과 실을 가지고 출발했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른 채. 하지만 삶은 배우는 것 아닌가. 능수능란한 아저씨의 손놀림. 라이터로 바늘을 한번 지지고 실을 꿰더니 순식간에 물집을 관통시킨다. 물집에는 실만 덩그러니 남겨 놓고. 살갗을 무언가가 뚫는 기분을 처음 느껴보았기에 끔찍했지만 염증이 점차 사라질수록 너무나도 시원했다. 바늘로 구멍만 내면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는데 이렇게 하니 염증 물이 전부 사라지고 다시 살에 달라붙는다. 처음 느껴보는 방법과 감정에 아저씨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어디서부터 출발했어요?"

"서울이요."

아저씨는 삼촌 미소를 지으며 또 질문한다. "어디까지 갈 예정이에요?"

"부산이요."

뿌듯한 미소를 짓고는 아저씨가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신다. "제가 특전사 출신인데 천리 행군을 하면 발에 물집이 많이 잡혔었어요. 그때 많이 했던 방법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왜 이런 신박한 방법을 알고 계신 건지 궁금했던 궁금증이 풀렸다. 햇빛이 일렁인다. 갑자기 아저씨의 등에서 한강의 윤슬과 함께 빛이 나는 듯했다. 첫 이벤트로서 너무나 멋진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특전사 아저씨와의 추억을 뒤로하고 다시 출발을 하려 짐을 챙긴다. 그리고 마지막 조언처럼 아저씨는 또 한마디를 던진다. "지금 신발이 너무 가벼운 운동화라서 더 물집이 잡히는 거예요. 좀 가다가 등산화 매장에 가서 밑창이 튼튼한 신발로 갈아 신고 가면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말하시며 웃으신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허리 굽혀서 인사를 드리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아, 근데 나 돈 없지?' 현실을 인지하고 닳고 닳은 러닝화와 함께 나의 길을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