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 화창하게 빛나는 햇살 아래 반짝이는 청년의 눈동자. 햇빛에 반사된 눈빛은 그렇게 초롱일 수 없다. 골목길을 걸어서 까마득히 보이지도 않는 부산이라는 곳을 향해 발자국을 저벅거린다. 닳을 대로 닳은 운동화 밑창. 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운동화의 상태는 깨끗할 리 없다. 얼룩덜룩 얼마나 빨지 않았을까? 그 흔적들 위로는 발목 양말이 모습을 비춘다. 신발의 상태와는 대비되듯 양말은 새 하얗다. 새로 산 거라곤 하나도 없는 모습의 아디다스 티셔츠와 반바지. 검은색의 티셔츠가 뜨거운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준비가 되었다고 소리 지르는 듯하다. 몇 십 분을 걸었을까. 신천역(현 잠실새내역)을 지나고 잠실대교를 건넌다.
다리 위를 건너며 불어오는 바람을 살며시 마주한다. 그러다 육교 난간에 적힌 문구를 발견한다.
"힘내, 오늘도 잘했어."
따뜻해 보이는 말이지만, 와닿지 않았다. 이곳에 선 사람들에게 이 문구들이 와닿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스치듯 지나간다. 삶은 그렇게 쉽게 지나가고, 사라지듯 스쳐간다.
한강 물에 윤슬이 일렁이고 눈망울에 반사되어 귀한 보석들이 담긴다. 청춘은 슬프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마음엔 깊은 아름다움이 담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서울을 벗어나는 표지판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여기서부턴 서울입니다." 경기도 구리를 향해 한강길을 따라 뽈뽈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애틋하다. 조금 더 내리쬐는 햇빛에 젊은이의 열정도 점차 녹아내리고 구슬땀은 옷을 흠뻑 적신다. 그럼에도 무언가 찾을 것이 남은 사람처럼 연신 두리번거리며 앞을 향해 나아간다.
짊어진 삶의 무게만큼이나 G마켓에서 산 배낭이 무거워진다. 짐을 우겨넣 듯 마구 집어넣었더니 벌어진 참사다. 다시 정리하긴 귀찮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지지만, 짐을 다시 풀고 싸기는 너무 귀찮다. 그저 다리가 가는 대로 걸어 나갈 뿐이다. 앞으로, 앞프로.... 아프다.
첫 번째 목적지는 양평. 작은 국내 지도를 하나 샀다.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도에 수 없이 표기를 해가며 연신 펴고 접는 통에 접힌 자국이 또렷하게 남기 시작한다. 양평으로 첫 숙소를 잡고 의지를 불태운다. '이 정도면 뭐, 하루면 가겠지?' 사람의 경험이 중요하단 것을 이때 깨달았다. 그동안 많이 걸어봐야 잘 포장된 한강 길을 십몇 킬로 걸어본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경기도로 가는 길은 좀 달랐다. 언덕도 있고 다리를 지나기도 하고 좁디 좁아진 길에 적잖이 당황했다. 오전에 출발하여 어느새 오후로 가는 길목. "꼬르륵" 배가 고파온다. 팔당으로 이어지는 길. 그 길을 따라 쭉 걷는데 빨간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토스트"라고 쓰여있다. 굉장히 빈약한 지갑을 털고 현금 천 원을 꺼낸다. 본능적으로 일어난 일들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토스트를 받아 들었다.
"바사삭"
한 입 베어 물은 토스트에 입안과 장기가 춤을 춘다. 그렇게 토스트를 맛보며 양평을 향해 가는 길. 그늘이 없어도, 구슬땀에 온몸이 젖었어도. 토스트와 콜라 하나면 충분했다.
그 맛있던 토스트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다시 햇빛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짜증이 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간중간 불어오는 자연풍과 매미소리 자전거를 탄 아저씨들이 보내주는 따봉. 이 단순한 몇 개의 동기부여만으로 에너지가 되고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나 그 따봉은 기분이 정말 좋아진다. 혹시라도 누군가 힘겹게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면, 꼭 엄지를 치켜들고 응원을 해주자. 나에게는 작은 행동일지라도 받는 사람은 엄청나게 감동적일 수 있으니.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양평을 향해 젊은이는 뚜벅, 뚜벅. 걸어 나간다. 젊은이가 지나간 자리로 흘려진 땀방울. 햇빛에 반사되며 빛이 난다. 경제적 가치가 없는 보석이지만 참, 맑게도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