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넓이
둘.
얼마 후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유럽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연말 연휴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그 랭귀지 스쿨은 거의 텅 비게 되었다. 누리아와 나는 그곳에 남은 몇 안 되는 학생들 중 하나였다. 동아시아는 잠깐 다녀오기에는 그곳에서 너무나 멀고 비쌌다. 하루는 텅 빈 테라스에 우리 둘만 남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바깥공기는 추웠고, 하늘에서는 부슬부슬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연말 연휴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리아가 춥다고, 집이 그립지 않냐고 물었다. 집 생각은 별로 안 나지만, 새로운 말을 배우는 게 피곤해서 좀 쉬고 싶다고 했다. 그 무렵 우리는 학교 안에서만큼은 꽤 수다스러웠지만, 바깥에 나가면 여전히 입을 다물 때가 많았다. 길거리에서 원어민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리아는 렌트방을 옮기고 싶은데, 서툰 스페인어 때문에 전화를 걸기만 하면 말이 빠른 집주인들이 통화를 끊어버린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속상하다고 했다.
그때, 그곳에는 바닥을 쓸던 스페인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쉬면서 담배를 꺼내 피우다 우리를 발견하더니, 이쪽으로 다가와서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우리를 위해서 아주 쉬운 스페인어로 또박또박 말해주었고, 우리는 우리의 스페인어 실력이 갑자기 일취월장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잠시 후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누리아는 방금 전의 그 경험을 아이처럼 신나 하며 선생님 앞에서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외국어로 대화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누리아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자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우리는 학교 밖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도서관에서 책들을 기웃거리거나,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시를 함께 찾아가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계속 어색한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어른들의 깊은 대화를 나누기란 거의 불가능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오히려 단순한 언어로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냥 두 명의 아이들이었다.
하루는 근처에 예쁜 카페가 있다길래 함께 찾아갔다. 알함브라 궁전을 모티브 삼아 인테리어를 꾸민 야외 카페였다. 정글처럼 푸른 나무가 우거지고, 그 사이사이로 따뜻한 빛깔의 아라베스크 무늬가 가득 보였다. 그곳에서 나는 어릴 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유명한 클래식 기타곡을 연습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트레몰로 주법이 인상적인 서정적인 곡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옛날 일이었고, 지금은 누리아가 하는 말에 집중하기 위해 그 기억을 잠시 밀어내려 했다.
그때 우리는 렌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누리아에게 새로 이사 간 곳에서 렌트비를 얼마나 내냐고 물었을 때, 그 아이는 자신이 집주인이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묻자, 맘에 드는 방을 찾을 수 없어서, 대신 맘에 드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통째로 빌렸다고 했다. 그중 방 두 개를 다시 렌트를 주고, 월세를 받아 자기 렌트비를 다시 낸다는 것이었다. 세입자들을 관리하는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을 때, 할만하다고 했다. 다 자기 같은 외국인 학생들만 받아서 언어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현실적이고 나보다 성숙한 한 여성으로 그 아이가 달리 보이는 것 같았다. 단지 서툰 언어에 갇혀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내게 부족한, 현실적인 성향의 여성들에게 더 끌리곤 했었다.
누리아는 나보고 왜 스페인에 왔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이 반가웠다. 나는 안드레스 세고비아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릴 때 클래식 기타를 배웠고, 그래서 스페인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내 스페인어 이름도 그에게서 따온 거라고. 아직도 기타를 연주하냐고 묻길래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재능이 없어서 완전히 포기했다고 말했다. 누리아는 좀 슬프다고 대꾸했고, 나는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스페인에서 취업하고 싶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취업하는 일보다는 가능하다면 아직은 더 꿈을 꾸고 싶다고 했다. 내 꿈은 계속 좌절되어 왔고, 이번만큼은 내 꿈을 제대로 붙잡고 싶다고 했다.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내 미래가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게 뭐냐구 그 아이가 되물었을 때, 나는 짧게 대답했다.
"내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서 꿈을 계속 꾸고 싶다면... 어린아이로 오래 남는 편이 나을 수도 있어."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자주 붙어 다녔다. 둘이 붙어 다니는 모습이 눈에 자주 보이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사귀는 줄 알았지만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