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4월 (4)

세상의 넓이

by 하도

마지막.


그 후 나는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계획대로 망설임 없이. 적어도 난 그렇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던 책의 일부를 버리고, 나머지 모든 소지품을 여행가방 두 개에 욱여넣고 끙끙대면서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마드리드를 향해 달렸다. 사실 마드리드 방문이 처음은 아니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던 첫날, 나는 여권을 소매치기당했고, 그 때문에 지금처럼 기차를 타고 마드리드에 있던 대사관에 방문해야만 했다. 즉 지금이 두 번째 방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느낌이 많이 달랐다. 시간 속에 쌓인 경험과 추억들을 뒤에 남기고 멀어져 가고 있었으니까.


마드리드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도시 북쪽에 있던 어느 콜롬비아인 가족의 아파트에 작은 방을 렌트했다. 나중에 라띠나 지역의 극장옆 아파트에 옮겨가기 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처음 마드리드에 왔을 때 호텔 방을 잡기 위해 손짓발짓 다 사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디자인 학교를 찾아가 스페인어 시험 점수를 제출하고 등록을 마쳤다. 가을에 학교 수업이 시작하기까지는 몇 개월 여유가 있었고, 나는 영어 수업을 새로이 받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그 후 몇 개월 후, 아마도 학교 수업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딱 한 번 누리아와 통화를 시도했다. 영상통화도 가능했지만 우리는 카메라를 켜지 않았다. 그냥 짧게 안부인사 정도만 주고받을 작정이었으니까. 그것은 좋은 계획처럼 보였다. 감정적으로 되는 것은 싫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연결이 되고, 서로 나눌 말이 정말로 그것 말고는 별로 남아있지 않았음을 발견했을 때, 그 순간의 공기는 정말 어색하고 또 무거웠다.


그 순간은 어두웠고 아무런 형상도 보이지 않았다. 표정도, 제스처도 없었다. 눈빛도, 미소도, 손짓도 없었다. 오로지 마이크 너머로 전달되는 음성 신호만 존재했다. 우리의 스페인어는 마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시절로 다시 퇴화한 것만 같았다. '잘 지내…? 응, 잘 지내…' 따위의 형식적인 몇 마디를 빼면 정말로 나눌 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였나. 어쩌면 우리 둘 다 그 순간에 상처받았을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두 번 다시 서로 연락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난 말이라는 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진실한 것도 담고 있지 않다고 믿게 되었다.


정작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왜 거기 있었고, 무엇을 하려고 했으며, 나이가 몇 살이고, 진짜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아이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제법 꽤 많은 얘기를 서로 나눈 것 같았는데,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서 말로 들은 것들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았다. 내 안에는 그 아이의 말들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 무렵 내 머릿속은 내 계획들로 가득 차 있었다. 또 내가 해야 할 일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마드리드로 옮기고 나서 얼마 후 또 다른 누리아를 만난다. 이름 외에는 외모도 인종도 성격도 국적도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이미지가 겹치는 곳이 있었다. 마치 원래가 같은 사람이었던 것처럼. 특히 작은 발이 그랬다.


내 삶은 이처럼 소통 실패의 경험들로 가득하다.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보면 분명한 것들이 있다.


이 세상의 넓이는 말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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