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기억 조각들
극장 옆 아파트에 세 들어 살 무렵, 큰 방에는 배우가 한 명 살았다. 그는 내 집주인이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잘생기고 선량한 표정을 지닌 아르헨띠노였는데, 우리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로를 마음에 들어했다.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로서 말이다.
잘 나가거나 유명한 배우는 아니었다. 밤에는 ‘카페 갈도’라는 이름의 바에서 관리일을 맡고, 낮에는 연기 연습을 하거나 오디션을 보러 다니거나 했다. 아르헨티나 악센트 때문에 마드리드에서 배우로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나이는 나보다 열 살가량 많았지만 애 같이 순수한 구석이 많아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가끔씩 밤에 한 잔 하러 같이 나가기도 하고, 내가 단편영화를 찍을 때 배우을 맡아서 해주기도 했다. 사람들에 대한 붙임성이 좋고, 집에 주로 데려오는 친구들도 전부 같은 배우들이거나 아니면 뮤지션들이었다. 그렇게 자주 데려오는 무리 중에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키 작고 까불거리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는 실력 좋은 가수였다. 언어장벽 때문에 모든 대화가 다 가능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그 친구가 정기적으로 공연하던 바를 몇 번 찾아가기도 했었다.
까불거리는 것만큼이나 노래를 정말 잘했다. 그 정도의 실력으로 아직 무명가수라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나는 그 친구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그 친구가 공연하는 바를 처음 찾았을 때가 기억난다. 갑자기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다 말고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내 앞으로 기타를 쑥 내밀더니 "한 곡 부를래?"라고 묻는다.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리고, 당황한 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내가 기타를 칠 줄이나 알고 물어보는 거야? 조금 치기는 하지만. 그다음 날이 주말이라 점심을 먹고 그릇을 씻고 있었는데, 집주인을 찾아 놀러 온 그 친구가 부엌에 불쑥 들어왔다. 그러더니 묻는다. "어제 왜 뺐어?"
"그야 난 기타도 못 치고 노래도 못하니까." 내가 대답하자,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한마디 한다.
"그럴 리가... 악기는 몰라도 노래는 세상 사람 누구나 할 줄 알아"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같은 줄 아는가 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던 그 친구도 나중에 내가 노래하는 걸 한 소절 듣더니 두 번 다시 권하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집주인이 일하던 카페 갈도에서 그 친구 공연이 열렸다. 자연스럽게 내게도 초대장이 돌아왔고, 친하게 지내던 한 프랑스인 친구와 함께 그곳을 찾아갔다. 집주인과는 가끔 이리저리 밤늦게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집주인이 일하는 바를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프랑스인 친구가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우리는 공연 시작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고, 맥주 한 잔 들이켤 새도 없이 바 한 구석에 마련된 작은 공연장으로 바로 들어갔다.
정식 공연장이라 부르기에는 그냥 홀 한쪽에 무대를 설치하고 객석을 커튼으로 둘러쳐서 만든 수준이었지만, 짙은 어둠과 천정에서 내려오는 조명 속에서 환히 빛나듯 노래하는 그 친구가 눈에 들어왔을 때, 여기가 어디인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까불거리던 성격이지만 무대에서 만큼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우리는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무대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심스럽게 가서 앉았다.
이 친구는 팝발라드를 주로 부르는데, 그저 감미롭고 그저 생동감 넘친다. 아마도 아르헨티나식 억양이 노래에 그 맛을 더하는 것 같았다. 한 곡 두 곡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작은 공연장을 가득 매운다. 무명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랴. 나는 뮤지션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직업 같았다. 어느덧 질투심이 슬며시 솟아오른다.
나도 한 때 뮤지션을 꿈꿨었다. 비록 노래는 음치지만 클래식 기타를 배웠었고, 어쩌다가 작은 청소년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한 적도 있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는 어린 시절 내가 처음으로 꾸었던 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께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내게 대단한 재능은 그다지 없음을 파악하신 부모님은 반대하셨고, 나는 그 꿈을 포기했다. 일종의 좌절된 꿈인 셈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음악에 재능이 부족한 내게 그 좌절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로 인해 받았던 상처는 상당히 컸었다.
만일 그때 계속 기타를 연주했더라면, 지금쯤 여기 마드리드에도 지금과는 다르게 클래식 기타로 유학을 오지 않았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고 따라서 인생에도 가정은 없겠지만, 그런 상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있다가 옆에 앉아있던 프랑스인 친구를 곁눈질로 보았다, 그 친구도 넋을 잃은 듯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집주인이 모든 것이 잘 작동되는지 감시하는 관리자인 마냥 굵은 팔짱과 함께 바 입구 옆에 우뚝 서있다. 6.3 피트 가까이 되는 장신이라 듬직해 보였다.
또 한곡이 끝나고 새로운 곡을 시작하려던 찰나였는데, 갑자기 연주가 뚝 그친다. 무슨 일이지?
무대 위에서 그 친구가 갑자기 내 쪽을 가리키더니, 뭐라고 빠르게 쏘아댄다. 주위에서 가벼운 웃음이 터지고, 나는 당혹스럽다. 악센트가 강해서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듣겠고, 도움을 청하듯 옆에 앉은 프랑스인 친구를 바라보니 그 역시 날 바라보며 웃기만 한다. 이 상황은 대체 뭐지? 대체 뭐냐는 식의 제스처를 무대 위로 쏘아주자, 무대 위의 친구는 체념한 듯 말을 멈추고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잠시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게끔 다시 감미로운 음색에 빠져든다.
공연이 끝나고, 나와 그 프랑스인 친구는 홀에 나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주문했다. 집주인이 손수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해주고 갔다. 나는 이 기회를 계속 기다렸다는 듯 그 친구에게 서둘러 묻는다.
"아까 대체 뭐였어?"
그 친구가 설명해 주기를, 내 뒷자리에 기막힌 미녀가 한 명 앉아있었나 보다. 그 아르헨띠노 친구는 '네가 가려서 잘 안 보이니까 좀 옆으로 비켜달라'는 일종의 무대 조크를 던졌던 모양인데, 내가 그 친구의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는 바람에 시시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내가 그 장소에서 유일한 아시안이었으니 다른 관객들도 내 스페인어가 좀 모자람은 감안하면서 그냥 그렇게 가벼운 웃음으로 마무리된 것 같았다. 아무렴 어떠랴. 내 책임도 아니고. 내 관심은 이미 내 뒤에 앉아있었다는 그 미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 그렇게 미인이었어?"
"그렇다니까. 진짜 예뻤어."
어디 있냐고 나도 좀 보고 싶다고 난리를 치는데, 그 프랑스인 친구가 바 입구 쪽을 턱으로 가리킨다. "마침 저기 나가네." 전체적으로 바가 무척 어두웠지만 길거리 쪽에서 새어 들어온 불빛 덕분에 대충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아볼 수는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예뻤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냥 뭐... 아만다 사이프리드인 마냥 멀리서도 반짝거리던 큼직했던 두 눈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바로 내 등 뒤에 앉아 있었단 말이지......
그날은 그렇게 한 아르헨띠노 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내가 알아듣지 못했던 어떤 조크와 단 한 번 가까이서 바라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어떤 눈 큰 미녀와, 그리고 몇 잔의 맥주가 뒤섞여 마무리되었다.
그 노래 부르는 친구에 대한 기억은 여기서 끝난다. 그 후 그 친구와 몇 번이나 더 만났는지, 그 친구 공연에 몇 번이나 더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 이후 내 삶이 다시 바빠졌고, 어느 순간 관심과 기억 속에서 슬그머니 사라졌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 친구의 이름이 뭐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지를 않는다.
참,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같은 날 그 미녀를 놓치고 난 잠시 후 그 가수 친구가 거리로 나와 담배를 피우길래 나도 따라 나갔는데, 가까이서 보니 담배가 아니라 마리화나였다. 나에게 한 모금 피우라고 건네주는 걸 받아 들고는 짧게 물었다.
"목쓰는 가수가 이런 거 피워도 돼?"
"뭐... 조금은 괜찮겠지"
그 바가 아직도 그 장소에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까. 그 집주인이 아직도 거기서 일하는지 또는 연기를 계속하는지 나는 전혀 모른다. 그 노래하는 친구도 아직 노래를 계속하는지, 마드리드를 떠나 자기 나라로 다시 돌아갔는지 알 길이 없다.
유일하게 내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나는 그 순간 그곳에 있었고, 지금 이 글을 쓰듯이 그 순간에 대한 흔적이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대단한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하고, 그저 장면과 장면의 연결 같은 것이지만, 가끔씩 그 흔적을 떠올리는 것은, 신기하게도 삶에 생기를 더해준다. 억지로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제 먹은 점심도 기억 못 하고, 방금 양치질을 했는지 안 했는지 조차 한참 걸려 떠올리지만 이런 식으로 생생하게 기억나는 대상들은 언제나 따로 있다. 물론 그 이면에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훨씬 더 많긴 하겠지만.
그 집주인과는 그 후 일 년 여를 더 같이 살았고, 다른 나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페이스북 메시지로 잠시 안부를 주고받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개인적인 이유로 페이스북 계정을 닫았고, 많은 인연들을 그와 함께 잃어버렸다. 그 집주인에 대한 연락처도 함께 잃어버렸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그 바를 다시 방문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 집주인이 아직도 거기 있다면 더 재미있겠지.
참, 한 가지 더 기억하는 것이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 같던 그 이름만큼은 똑똑히 기억한다.
율리세스. 집주인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