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지 않는 꽃
하나.
이것은 섹스에 관한 글이 아니다. 그리고 리디아는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나는 항상 느렸다. 꼭 연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말들이 안에서 모양새를 갖추어 나올 준비가 되기까지 늘 시간이 한참 걸렸다. 마치 외출 준비를 하는 여자들이 늘 그러듯이. 성장기를 거쳐 오면서 내가 익힌 사회적 기술 중 하나는 말이 형성되기를 기다리기 전에 재빨리 머리를 굴려 다른 어떤 말을 찾아 대신 내뱉는 것이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항상 뒷자리 구석 어딘가에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늘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간혹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게 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말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시킨다.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소통은 원래가 늘 실패하게끔 되어있는 것 같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통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일찌감치 마음을 닫고 그냥 체념해 버린다. 나는 어느 쪽일까. 때로는 말도 침묵도, 소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은 항상 너무 많거나, 너무 없거나, 또는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거나 한다. 나는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는 일에 항상 서툴렀고, 언제,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말할지, 그것은 항상 숙제 같은 일이었다.
그것을 폴라로이드로 찍은 듯한, 작고 우스운 일화가 하나 기억난다. 그 스냅사진 몇 장을 여기서 꺼내본다. 지금도 여전히 서툴지만, 나이가 어렸을 때는 아주 심하게 서툴렀다. 극장 옆 아파트에 세 들어 살 무렵, 리디아와의 관계도 그런 식의 숙제처럼 느껴졌었다.
그녀는 도미니칸이었지만, 백인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볼 때마다 내가 도미니카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항상 그래. ‘근데 넌 백인이잖아?’”
그 농담은 리디아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그 농담의 마지막 부분을 말할 때마다 리디아는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를 낮게 깔며 강조하곤 했다. 그 짧은 연기가 끝나면, 자기 혼자 배꼽이 빠져라 깔깔거리곤 했다.
나는 그 농담을 적어도 세 번은 들었다. 한 번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또 한 번은 어떤 파티에서 그녀가 어떤 남자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마지막은 또 다른 어떤 파티에 갔을 때, 그 집 테라스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그때 리디아는 술에 적당히 취해 있었고, 그 농담을 이미 나에게 한 번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 다시 한번 크게 깔깔거렸다. 그녀의 유쾌한 깔깔거림은 나를 항상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 웃음의 포인트가 어디인지는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눈에 비친 리디아의 외모는 그냥 전형적인 유럽 백인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섬나라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무엇인지 모를 은근한 열등감이라도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는 그녀가 나고 자란 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곳은 내겐 그냥 미지의 영역이었다. 몇 번인가 인터넷을 통해 도미니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자료도 많지 않았고,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대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리디아가 도미니칸인 백인이었는지, 백인인 도미니칸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도시 북쪽에 있는 어떤 콜롬비아인 가족이 사는 집에 방을 하나 구했다. 주인아주머니는 그 근처 공립 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뚱뚱하고 신경질적인 여자였는데, 잔소리가 너무 심했다. 이사를 또다시 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라 나는 그곳에 어떻게든 적응해 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하루는, 밤중에 내가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간 사이, 그 주인아주머니가 현관문 걸쇠를 걸어버렸다.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추운 바깥에서 외투도 없이 덜덜 떨면서 아침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때 내가 가진 담배는 금세 바닥났다. 그날 이후, 그 집주인에 대한 인내심도 바닥나 버렸고, 이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다른 장소들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리디아를 만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마드리드 도심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라띠나라고 불리는 구시가지 지역이 있다. 오래된 건물들과 시장과 바와 레스토랑 그리고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적어도 백 년은 되어 보이는 그 아파트 건물에 처음 도착했을 때, 금발의 그녀가 아래층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그리고 이층에 있던 자기 아파트로 나를 안내했다. 렌트 광고를 보고 메시지를 보냈을 때만 해도, 집주인이 여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곳은 보통 ‘여자들만’이라는 문구를 광고에 집어넣곤 하는데, 그런 글귀를 어디서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실수로 빠트렸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맞이할 때 그녀의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빨간 페인트를 칠한 거친 질감의 벽. 그 벽면에 걸린 선반을 가득 채운 디자인과 여행 서적들. 작은 방 두 개, 작은 부엌 하나, 그리고 그보다 작은 코딱지만 한 발코니. 노란색 소파 맞은편 벽에는 사용하지 않는 벽난로가 있었고, 그 위 선반에는 각종 술병들, 향초, 꽃, 그리고 영화 DVD들이 조금 어수선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검은 고양이 두 마리가 좁은 바닥에서 서로 장난치며 뛰어놀고 있었다. 그 장소는 내게 마치 스페인을 작게 함축시켜 놓은 곳처럼 느껴졌다. 리디아는 한 여행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리디아가 그 아파트의 소유주는 아니었고 자신도 렌트 중이었는데, 월세 감당이 힘들어서 룸메이트를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면접을 위해 소파에 마주 앉았고, 나는 여러 가지 기본적인 질문들을 받았다. 리디아는 말이 빠른 여자였다. 그녀가 내 직업을 물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나이를 물었다. 내가 그녀보다 두 살 많았다. 우리가 비슷한 나이대라는 사실을 그녀는 마음에 들어 했다. 내 경제력에 대해 물었다. 나는 사업하는 사촌이 하나 있는데, 내 유학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둘러대었다. 그 편이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어 간단했다. 그렇게 룸메이트 면접을 마쳤으니 이제 남은 일은, 그럼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작별 인사를 한다음 그 집을 떠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벽난로 위에 놓여있던 럼 한 병을 가리켰다. 그리고 물었다. 저거 럼이냐고. 나는 그게 럼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냥 물어봤다. 그저 대화를 좀 더 이어 나가기 위해서.
“조금 마셔볼래?” 그녀가 부엌으로 사라지더니 잔 두 개를 내왔다. 우리는 친구처럼 마주 앉은 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무슨 대화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사를 기억하는 내 능력은 언제나 형편없다. 하지만 우리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술잔은 계속 비워졌고, 그 조그만 발코니에 서서 담배를 함께 피웠다. 그리고 다시 마셨다. 해가 지고 어둑해졌다. 서로의 불행했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서로 부모에게 상처받았던 이야기가 나왔다. 첫 만남에서는 너무나 무거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술이 들어갔을 때, 리디아는 말이 지독하게 빨랐다. 나도 꽤 빨라졌을 것이다. 아마 우리 둘 다 살아오면서 쌓인 말들이 많았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내 어설픈 스페인어 사이사이의 공백을 헤집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부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단어를 많이 쏟아내다 보면, 상대방이 알아서 내 말의 의미를 주워섬기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대충 말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진지했고, 그녀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도록 도와주었다. 거의 목부근까지 가득 차 있었던 럼 한 병이 어느새 바닥났고, 우리는 그 옆에 있던 코냑을 열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내 기억 속에서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사라진 순간이 있다. 아마도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른하고 머리가 아팠던 것 같다. 담배 때문에 목도 아팠던 것 같다. 그리고 기억나는 그다음 장면. 리디아는 카펫 깔린 바닥 위에서 발버둥 치며 뒹굴고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던 스커트가 말려 올라가며 두 다리가 드러났다.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몇 군데 찢어진 구멍들이 보였고, 그 사이로 하얀 허벅지 맨살이 드러나 보였다.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둘 것은, 그것은 절대로 성적으로 유혹적인 장면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바닥에 뒹구는 어린애처럼, 터져 나오는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다. 그녀가 내뱉는 스페인어 단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단어들이라기보다는 감정들이었을 것이다. 잠시 후 조금 진정이 되면서 정신이 돌아왔는지, 리디아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 옷매무새를 주섬주섬 챙겼다.
조금 지친 나는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며 일어섰다. 현관문 앞에서 작별인사를 할 때, 리디아가 갑자기 내 목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우리 친구 맞지? 우리 친구인거지?”
나는 또 다른 격한 감정에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친구가 맞다고 차분하게 대답했고, 렌트를 할지 말지 결정이 되면 다시 연락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나는 그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또 리디아가 울면서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건지, 아직도 모른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 기억 속에는 구멍 난 곳들이 너무나 많다. 마치 그 찢어진 검은 스타킹처럼.
둘.
우중충한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콜롬비아인 가족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웠지만, 숙취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고 잠이 오질 않았다. 그날 일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그곳에 렌트를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 내려야만 했다. 리디아의 빨간 벽 아파트는 분명히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망설여졌다. 첫 번째 문제는 가격이었다. 지금 내고 있던 렌트비의 거의 배를 내야만 했다. 만일 그곳을 렌트하면 매달 생활비가 빠듯해질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장차 내 룸메이트가 될 리디아의 성격이 마음에 걸렸다. 그녀에게는 분명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감정조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어설픈 심리학 지식으로 그녀가 조증일 거라고 판단 내렸다.
결심을 내리는 데는 여러 날이 걸렸다. 결국 강렬한 이미지들이 주는 유혹에 굴복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리디아에게 네 집에 세 들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고, 그 오지 않는 답장은 나를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마침내 리디아에게 답장이 왔을 때, 그녀는 문자 대신 통화를 하고 싶어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날 밤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낮았다. 하지만 말은 여전히 빨랐고, 차갑고 논리적인 말투로 왜 나에게 렌트를 해 줄 수 없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그 내용을 다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요점만큼은 분명했다. 비슷한 직종에 일하는 다른 여자한테 그 방이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그 작은 아파트에 젊은 남녀 둘이 룸메이트로 지낸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작은 스페인은 그렇게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 같은 라띠나 지역의 오래된 극장 옆 어느 아파트에 방을 하나 구할 수 있었다. 집주인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무명 배우였고, 밤에는 근처에 있던 '카페 갈도’라는 어느 바에서 관리일을 맡고 있었다. 우리는 집주인과 세입자로서 서로를 첫눈에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잘생기고 인상 좋은 그가 좋았고, 그도 내가 세입자 후보 첫 순위이니 꼭 연락을 다시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집에서 지내려면 어떤 규칙들이 있냐고 내가 먼저 나서 물어보았던 점이 호감을 샀던 것 같다. 가격도 적당했다. 그리고 그곳은 리디아의 빨간 벽 아파트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얼마 후 나는 리디아에게 한심한 문자메시지를 한 통 보냈다. ‘너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방을 구했다. 네 고양이들을 보고 싶다. 너의 고양이들이 춤추는 모습이 벌써 보이는 것 같다.’ 그 문자를 보내면서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답장은 오지 않았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문자는 바보짓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사를 하느라, 학교 수업을 듣느라,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리디아가 문자를 한 통 보내왔다. 그다음 주말에 근처에서 노천시장이 열리는데, 자기 친구랑 놀러 갈 거란다. 나도 오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물론이지. 나는 즉시 답장을 보냈다. 주말이 오자 약속 장소에 나가 그녀와 그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갖가지 물건들을 구경하며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그날 오후는 한순간처럼 지나갔다.
그 후로 리디아는 틈만 나면 나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더 많은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고, 함께 시장을 돌아다녔고, 파티에 초대받으면 나를 데리고 갔다. 하루는 그녀의 단골 바에 한 잔 하러 들렀다. 친분이 있던 바텐더에게 날 소개한다. “한국인이에요 한국인. 여기 공부하러 왔어요.” 그리고 혼자 키득키득 거린다. 그게 뭐 어쨌다고. 하지만 리디아의 키득거림에는 어떤 전염성이 있었다. 나도 키득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고, 바텐더도 키득거렸다.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어쩌면 리디아는 내 바보 같은 문자를 보고 혼자 키득거렸는지도 모른다. 비록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녀는 그런 성격이었다.
아마도 작은 섬나라에서 왔기 때문인지, 리디아에게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어떤 차별적인 편견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아주 소탈했다. 나중에 시간이 좀 더 지나면서 깨닫게 된 점이지만, 우리 문화권에서는 말이 너무 복잡하다. 항상 복잡한 관념을 언어의 밑바닥에 깔고, 그걸로 자신을 표현하고 또 장식하기를 좋아한다. 농담도 수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리디아에게는 그런 점들이 전혀 없었다. 비록 감정기복은 심했지만, 그 구조는 단순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웃기면 웃긴 그런 것이었다. 그런 단순 솔직함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 언젠가 자기는 아시아인과 데이트해보고 싶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썼던 또 다른 에세이 ‘마드리드, 카페 갈도에서’는, 아마도 내가 리디아에게 들려주었던 경험담이 그 글의 원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프랑스인 친구가 가리켜서 쳐다봤지. 저 쪽에 그 미녀가 있다구. 그런데 너무 멀어서 잘 안보이더라구. 그냥, 두 눈만, 개구리처럼 이따 만 했던 게 기억나.”
내가 개구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리디아가 배꼽을 잡고 쓰러진다. “개구리라니, 개구리래! 깔깔깔” 나는 그녀의 그런 단순하고 과장된 리액션이 좋았다. 비록 나중에 그 이야기를 에세이로 다시 쓸 때 ‘개구리’ 대신 ‘아만다 사이프리드처럼 큰 눈’이라고 좀 더 점잖은 표현으로 바꾸지만,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읽을 때마다 눈 큰 개구리 이미지와 함께 리디아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뒤섞여 떠오르곤 했다.
하루는 자기가 출장 가 있는 동안 고양이들을 좀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물론 봐줘야지. 리디아가 키우던 그 작고 검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 빨간 벽 아파트 카펫 바닥 위에서 고양이들과 장난치고 있자니 문자가 한 통 날아온다. 집을 나서기 전에 잊어버렸는데, 부엌에 있던 쓰레기 좀 비워달라고. 물론이지.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나는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쓰레기 봉지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골목길 저 편 끝까지 다녀왔다. 영국에서 두어 달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만난 사람도 리디아였다. 공항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녀를 불러내었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좋아라 하는 티가 너무 났다. 잠시 영어로 대화를 나누자, 내 영어가 더 늘었다고 좋아했다. 이른 저녁이었고, 우리는 근처 시장에서 캔맥주와 소시지를 사서 어딘가 계단에 걸터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갔던 여러 파티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나는 그 관계에 적극적이지가 않았다.
한두 번 손을 잡았던 것을 빼면, 나는 이상하게도 리디아에게서 성적인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예쁘고 쾌활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를 대하는 내 감정에는, 무언가 있어야 할 것이 빠져 있었다. 나는 리디아를 만날 때마다, 첫 만남에서 보았던 그 찢어지고 구멍 난 검은 스타킹을 떠올리곤 했다. 그것은 섹슈얼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고 또 우스꽝스러운 그런 이미지였다. 물론 나는 그 생각을 단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리디아가 그날 밤처럼 감정적으로 격앙된 모습을 보여준 적은 두 번 다시없었고, 그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점차 흐릿해져 갔다. 하지만 내 안에는 어떤 거리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계속 남아있었다. 그 거리감을 좁혀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나는 그것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또 이런 얘기들을 하면, 내가 유학까지 가서 데이트나 즐기며 그곳 생활을 한가하게 즐겼던 것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받던 학업 스트레스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내 머릿속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항상 시끄러웠고, 리디아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그런 나에게 조용히 휴식을 주곤 했을 뿐이다.
내가 감정적인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말이 많거나 빠른 사람들을 많이 좋아하는 법이 없다. 말이 빠르고 많으면 깊은 감정을 느끼기 힘들다. 적어도 말 수 적고 느린 내겐 그렇다. 더구나 내 스페인어는 리디아가 말하는 속도에 비하면 한참 느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 느린 속도를 가지고 문제 삼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또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떠드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내가 느릿느릿 이야기를 할 때면, 그녀는 자기 말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운채로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그녀의 빠른 속도가 벅차다고 종종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서너 번쯤 만났을 때, 나는 그녀를 그만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계속 불러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즐거운 감정이 드는 그 순간들을 나는 포기하기 싫었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순수하기는 해도 비교적 단순한 감정이다. 리디아를 만나면서, 나는 그 즐거움 너머로 무언가가 나타나기를 계속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무언가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는 그녀와 자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심리적 간극을 어떻게 좁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을 무시하고 건너뛰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을 것이다. 나는 리디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느꼈다. 잘 모를 때에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도 답일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는 그저 친구처럼 섹스리스 데이트가 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나는 무성욕자가 아니다. 자신의 욕망 앞에서 쓸데없이 진지했을 뿐이다.
셋.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항상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리디아에 대한 나 자신의 감정과 입장에만 집중했지, 그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무신경했다. 우스꽝스러운 그날의 해프닝이 있기 전까지는.
마드리드 시내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날은 월요일 연휴가 붙은 어느 일요일이었는데, 우리는 오전 시간을 집 근처 공원에서 때우기로 했다. 예술사 과제가 많아서 오후 시간은 도서관에서 보낼 예정이었고, 리디아는 다른 약속이 잡혀있었다.
그녀는 얇은 나무로 짜인 피크닉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안에 뭐가 들었냐고 묻자, 뚜껑을 틱 열어서 안을 보여주었다. 손수 만든 샌드위치가 있었고, 작은 레드 와인 한 병, 그리고 하몬과 치즈가 있었다. 우리는 공원 그늘진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그것들을 먹으며 찬공기를 즐겼는데, 나는 '정말 고맙지만 다음번에는 이런 걸 따로 준비하며 시간 쓰지 말라고' 말했다. 너무 정중하게 말했나 보다. 리디아의 얼굴에 서운한 표정이 잠시 스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특유의 쾌활함을 다시 보여 주었고 나는 그 일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학교 수업시간에 들은 영화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리디아는 그중에서 아는 제목을 하나 듣더니, 자기가 그 영화 DVD를 가지고 있으니까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다음 주에 들릴까? 그렇게 리디아의 아파트에 들러 영화를 빌리기로 약속을 잡았다.
다음 주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일 저녁이었다. 리디아는 회사를 퇴근하고, 나는 그날도 도서관에서 과제를 마치고, 우리는 근처 시장 한구석에서 와인에 초리소를 시켜 먹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리디아의 말에 고개를 계속 끄덕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먹고 마시고 있었다. 뭐 좀 더 시킬까? 내가 말하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쾌활하던 리디아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질문을 하나 던졌다.
“한국 사람들은 보수적이야?”
글쎄, 내가 둔감한 편이긴 하다. 그래도 그날은, 그녀가 실제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처럼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질문에 베스트 답변을 찾기 위해, 그 짧은 순간 말을 고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리디아처럼 말이 빠른 여자 앞에서는. 그래서 그냥 팩트라고 생각되는 걸 하나 골라서 대답을 했다.
“응 아마도 그럴걸. 유럽 사람들에 비하면 더욱 그렇지.”
리디아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는 것을 언뜻 본 것 같았다. 그녀는 계속 다른 얘기를 이어갔지만, 포크를 쥔 손동작이 어딘지 조금 급하다고 느껴졌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 말 뒤에 내가 덧붙일 수 있었거나 혹은 덧붙여야만 했던 다른 말들이 여러 가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러지를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의 아파트를 향해 함께 걸어갔다. 골목길을 지나 아래층 현관에 도착했다. 위층으로 올라가 아파트 현관문을 밀고 함께 들어갔다. 벽난로 앞에 서서 뭔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날 영화만 받아서 일찍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빌리기로 했던 영화에 대해 다시 묻자, 그녀가 선반 위를 뒤지더니 DVD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아르헨티나 영화였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영화를 빌려놓고도 보지를 않았다.
그때였다. 그 DVD를 내 손에 건네주던 순간, 그녀가 갑자기 소리치듯 말을 뱉었다. 그녀 특유의 따발총 같은 말투로.
“섹스가 나와, 섹스가. 조심해!”
언뜻 농담 같기도 했지만, 나는 그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단숨에 눈치챘다. 왜냐하면 농담 뒤에는 항상 뒤따르던 리디아 특유의 깔깔거림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아까의 내 말 때문에 나를 비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는 용수철 튕기듯 나를 때리며 저만치 튕겨내던 그 비슷한 어떤 차가움.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고, 대신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많이 경솔했던 것 같다. 리디아는 그녀답지 않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시 후, 조금 어색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집을 향해 걸었다. 내가 머물던 그 극장 옆 아파트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기도 한참 전에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고, 발길을 다시 되돌렸다.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른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다시 층계를 올라, 닫혀 있던 리디아의 빨간 벽 아파트 문을 다시 두드렸다.
하지만 리디아는 문을 다시 열어주지 않았다.
어떤 남자들은 이런 나를 두고 비웃을 것이다. 눈앞의 기회도 놓쳐버렸다면서. 하지만 이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남자가 욕망을 발현하는 모습이 항상 똑같이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넷.
나는 리디아에 비해 한 열 배쯤 느렸고, 그녀는 나에 비해 한 일곱 배쯤 빨랐을 것이다.
관계나 진도 문제에서 타이밍에 대해 서로가 생각하는 조건들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래서 소통이 필요하겠지만 말이 쉽지,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내뱉도록, 사회적 장면 속에서 허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수많은 다른 말들을 내뱉으며, 그 주위를 빙빙 맴돈다.
말은 들어야 소통이 된다.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언제나 더 어렵고,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은 언제나 너무 많거나 또는 너무 적었을 것이다. 리디아는 말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수많은 말들이 내 귓가로 흘러 빠져나갔을 것이다. 나는 말이 너무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뒤늦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을 때,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섹스가 나와, 섹스가.' 느려터진 나에게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리디아는 자신의 속내를 일부 들켜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소통의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온 그 말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나와 자고 싶어 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문을 닫았고,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그것은 리디아의 정체성처럼 내게는 미지의 영역으로 영원히 남았다. 다만 관계에 있어 소통이라는 것이 자주 이런 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드물어서 우리는 오감을 사용해서 모든 정보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소통은 우연한 순간에 잠깐만 피어나는 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통되었다는 느낌은 마치 한순간의 착각처럼, 그다음 순간 손에 쥐려 하면 곧 사그라들고 만다. 왜 그럴까? 잘 모르겠다. 의식이 개입되어 그 순간을 재현하려 하면 할수록 진흙 속으로 쏙 숨어버리는 갯지렁이 같다. 그건 왜 그러는 걸까? 잘 모르겠다.
리디아와 함께 했던 소통의 궤적을 추적해 본다. 결국 지속적인 소통에는 실패한 관계였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소통이 있었고, 그래서 그 순간까지나마 이야기가 흘러갔을 것이다.
그 첫 만남에서처럼, 우리가 함께 술을 병째로 마셔버리는 일은 두 번 다시없었고, 그녀가 그처럼 감정과잉을 보여준 적도 두 번 다시없었다. 그날 내가 본 감정은 술과 담배와 그날 밤의 무엇이 어우러져 터져 나온, 우발적인 어떤 것이었다. 다시 돌이켜보면, 그것은 가까움과 거리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그런 감정이었다. 그날 밤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어색함, 그리고 그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말들. 그러다 더듬더듬 끄집어 올린 기억들, 그리고 그 흐린 기억을 뚫고 우연히 튀어나온 서로의 공통점들.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낯선 친밀감에 양념처럼 더해진 웃음과 슬픔,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그러한 모든 것들이 아주 우연히 한데 뒤섞여 공기 중에 떠돌아다닌 그런 밤이었다. 그러다가 그 혼합물에 불꽃이 탁 튀었다. 그다음 순간 내가 목격했던 것은, 우리가 보통 위험하다고 거리를 두는 그런 어떤 것이었다. 그 순간 보았던, 리디아의 웃는 얼굴과 쾌활함 이면에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격렬함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날 이후로 늘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늘, 그 순간에 끌렸고, 또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나는 말이 느린 만큼 감정도 무척이나 절제되어 있는 사람이고, 또 항상은 아니더라도 감정을 체념하는 일이 더 많은 사람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은 그다지 바라 볼 가치가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나는 그녀의 검은 스타킹처럼 어딘가가 찢어진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그처럼 우발적으로 터져 나온 그 순간의 어떤 것에 더 매혹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 순간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못했고, 나는 계속 머뭇거렸다. 아마도 그 꽃이 다시 피기를 계속 기다렸던 것 같다. 만일 그랬더라면 나도 완전히 마음을 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꽃이 다시 피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나는 수없이 의미 없는 말들과 현실의 피곤함 밑에 깔려 그저 빙빙빙 어딘가를 맴돌고만 있었던 것 같다.
리디아와의 짧았던 관계는 그저 우습고 우발적인 어떤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꽃이 피는 그 순간에 대한 기대감이나 그것을 재현해 보려는 의식적인 노력은, 살아오면서 언제나 나를 실망시켰던 것 같다. 꼭 연애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과 말로 맺어지는 모든 종류의 관계 속에서 그 꽃은 피고 지고를 끝없이 반복한다. 그것은 우연히 주어지는 선물 같은 어떤 것이고, 어쩌다 우연히 도박에서 거머쥐는 승리 같은 것이다. 그 다시는 닿지 않는 감정 언저리에서 계속 맴돌다가, 다시 현실 속에서 길을 잃고,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 속으로 놓쳐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눈앞에 놓여있던 손으로 만질 수도 있었던 그 어떤 것도 함께 놓쳐 버린다. 그러한 패턴은 늘 반복된다. 그 반복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기대를 접고, 조용히 잊어버린다. 그것도 또한 또 하나의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 꽃이 다시 피기 위해서는 일상과 현실이라는 지루한 터널을 거쳐가야 하겠지만, 나는 망설이기만 하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물론 모든 관계가 그 터널을 지나도록 허락되지는 않고, 어떤 터널은 너무나 길어서 끝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그래도 끈을 놓지 말고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남들에 비해 느리고 내 삶은 이처럼 소통 실패의 순간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그게 꼭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래도 조금씩 배워가는 것들은 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가끔씩, 어떤 감정들은 내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리디아를 본 것이 그날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후 우리 사이는 빠르게 멀어져 갔다. 관계의 주도권은 처음부터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몇 달 후 크리스마스 때 그녀의 사촌과 셋이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일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마드리드를 떠나 멕시코시티로 간다고 메시지를 남겼을 때, 리디아는 내게 만나자고 청하지 않았다. 그냥 행운을 빈다는 정도의 메시지만 남겼을 뿐이다.
그 무렵 나는 이미 다른 여자아이와 사귀고 있었고 연애가 아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리디아에게는 항상 어떤 아쉬움 같은 것이 남았었다. 섹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물론, 보통 남자들이 그러듯 나도 진도에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곤 했다. 하지만 그녀와 잤다고 해서 달라질 일이 뭐가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 불편하고 더 복잡한 상황으로 들어섰을 수도 있다. 또 어차피 나는 그녀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대신, 내가 리디아에게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어느 정도 무거운 감정을 꽤 오래 가지고 있었다. 어떤 자조적인 피식거림과 함께.
나는 아직도 가끔씩, 리디아와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의 그 단골 농담을 뒤늦게나마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내가 그 농담의 웃음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미니카에 대해 스페인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선입견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씩 생각해 본다. 그때 나도 그 농담을 이해해서, 리디아가 웃을 때 나도 함께 배꼽 잡고 웃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손에 쥐기 힘든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대신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