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지 않는 꽃
마지막.
나는 리디아에 비해 한 열 배쯤 느렸고, 그녀는 나에 비해 한 일곱 배쯤 빨랐을 것이다.
관계나 진도 문제에서 타이밍에 대해 서로가 생각하는 조건들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래서 소통이 필요하겠지만 말이 쉽지,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들을 다 내뱉도록, 사회적 장면 속에서 허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수많은 다른 말들을 내뱉으며, 그 주위를 빙빙 맴돈다.
말은 들어야 소통이 된다. 소통은 입이 아니라 귀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언제나 더 어렵고,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은 언제나 너무 많거나 또는 너무 적었을 것이다. 리디아는 말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수많은 말들이 내 귓가로 흘러 빠져나갔을 것이다. 나는 말이 너무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뒤늦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을 때,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섹스가 나와, 섹스가.' 느려터진 나에게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리디아는 자신의 속내를 일부 들켜야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소통의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온 그 말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나와 자고 싶어 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문을 닫았고,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그것은 리디아의 정체성처럼 내게는 미지의 영역으로 영원히 남았다. 다만 관계에 있어 소통이라는 것이 자주 이런 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드물어서 우리는 오감을 사용해서 모든 정보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소통은 우연한 순간에 잠깐만 피어나는 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통되었다는 느낌은 마치 한순간의 착각처럼, 그다음 순간 손에 쥐려 하면 곧 사그라들고 만다. 왜 그럴까? 잘 모르겠다. 의식이 개입되어 그 순간을 재현하려 하면 할수록 진흙 속으로 쏙 숨어버리는 갯지렁이 같다. 그건 왜 그러는 걸까? 잘 모르겠다.
리디아와 함께 했던 소통의 궤적을 추적해 본다. 결국 지속적인 소통에는 실패한 관계였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소통이 있었고, 그래서 그 순간까지나마 이야기가 흘러갔을 것이다.
그 첫 만남에서처럼, 우리가 함께 술을 병째로 마셔버리는 일은 두 번 다시없었고, 그녀가 그처럼 감정과잉을 보여준 적도 두 번 다시없었다. 그날 내가 본 감정은 술과 담배와 그날 밤의 무엇이 어우러져 터져 나온, 우발적인 어떤 것이었다. 다시 돌이켜보면, 그것은 가까움과 거리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그런 감정이었다. 그날 밤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어색함, 그리고 그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말들. 그러다 더듬더듬 끄집어 올린 기억들, 그리고 그 흐린 기억을 뚫고 우연히 튀어나온 서로의 공통점들.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낯선 친밀감에 양념처럼 더해진 웃음과 슬픔,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그러한 모든 것들이 아주 우연히 한데 뒤섞여 공기 중에 떠돌아다닌 그런 밤이었다. 그러다가 그 혼합물에 불꽃이 탁 튀었다. 그다음 순간 내가 목격했던 것은, 우리가 보통 위험하다고 거리를 두는 그런 어떤 것이었다. 그 순간 보았던, 리디아의 웃는 얼굴과 쾌활함 이면에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격렬함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날 이후로 늘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늘, 그 순간에 끌렸고, 또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나는 말이 느린 만큼 감정도 무척이나 절제되어 있는 사람이고, 또 항상은 아니더라도 감정을 체념하는 일이 더 많은 사람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은 그다지 바라 볼 가치가 없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나는 그녀의 검은 스타킹처럼 어딘가가 찢어진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그처럼 우발적으로 터져 나온 그 순간의 어떤 것에 더 매혹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 순간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못했고, 나는 계속 머뭇거렸다. 아마도 그 꽃이 다시 피기를 계속 기다렸던 것 같다. 만일 그랬더라면 나도 완전히 마음을 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꽃이 다시 피는 일은 좀처럼 없었고, 나는 수없이 의미 없는 말들과 현실의 피곤함 밑에 깔려 그저 빙빙빙 어딘가를 맴돌고만 있었던 것 같다.
리디아와의 짧았던 관계는 그저 우습고 우발적인 어떤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꽃이 피는 그 순간에 대한 기대감이나 그것을 재현해 보려는 의식적인 노력은, 살아오면서 언제나 나를 실망시켰던 것 같다. 꼭 연애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과 말로 맺어지는 모든 종류의 관계 속에서 그 꽃은 피고 지고를 끝없이 반복한다. 그것은 우연히 주어지는 선물 같은 어떤 것이고, 어쩌다 우연히 도박에서 거머쥐는 승리 같은 것이다. 그 다시는 닿지 않는 감정 언저리에서 계속 맴돌다가, 다시 현실 속에서 길을 잃고,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 속으로 놓쳐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눈앞에 놓여있던 손으로 만질 수도 있었던 그 어떤 것도 함께 놓쳐 버린다. 그러한 패턴은 늘 반복된다. 그 반복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기대를 접고, 조용히 잊어버린다. 그것도 또한 또 하나의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 꽃이 다시 피기 위해서는 일상과 현실이라는 지루한 터널을 거쳐가야 하겠지만, 나는 망설이기만 하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물론 모든 관계가 그 터널을 지나도록 허락되지는 않고, 어떤 터널은 너무나 길어서 끝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그래도 끈을 놓지 말고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남들에 비해 느리고 내 삶은 이처럼 소통 실패의 순간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그게 꼭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래도 조금씩 배워가는 것들은 늘 있는 법이다. 그리고 가끔씩, 어떤 감정들은 내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리디아를 본 것이 그날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후 우리 사이는 빠르게 멀어져 갔다. 관계의 주도권은 처음부터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몇 달 후 크리스마스 때 그녀의 사촌과 셋이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일에 대해서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마드리드를 떠나 멕시코시티로 간다고 메시지를 남겼을 때, 리디아는 내게 만나자고 청하지 않았다. 그냥 행운을 빈다는 정도의 메시지만 남겼을 뿐이다.
그 무렵 나는 이미 다른 여자아이와 사귀고 있었고 연애가 아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리디아에게는 항상 어떤 아쉬움 같은 것이 남았었다. 섹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물론, 보통 남자들이 그러듯 나도 진도에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곤 했다. 하지만 그녀와 잤다고 해서 달라질 일이 뭐가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 불편하고 더 복잡한 상황으로 들어섰을 수도 있다. 또 어차피 나는 그녀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대신, 내가 리디아에게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어느 정도 무거운 감정을 꽤 오래 가지고 있었다. 어떤 자조적인 피식거림과 함께.
나는 아직도 가끔씩, 리디아와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그녀의 그 단골 농담을 뒤늦게나마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내가 그 농담의 웃음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미니카에 대해 스페인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선입견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씩 생각해 본다. 그때 나도 그 농담을 이해해서, 리디아가 웃을 때 나도 함께 배꼽 잡고 웃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손에 쥐기 힘든 그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대신 현실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