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언어와 낯선 자아
하나.
일주일에 두 번. 어느덧 반년째. 퇴근 후 시내 프랑스 문화원에서 불어 수업을 듣고 있다. 같은 라틴 계열인 스페인어를 조금 구사하는 덕분인지, 간단한 회화는 벌써 가능해졌다. 일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혹은 잔업 때문에 조금 늦더라도, 수업을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야심 차게도 올해 안에 B2 레벨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일주일에 고작 두 번 모두 합쳐 네 시간 수업과, 주말에 한두 시간 따로 공부하는 정도로는 따라잡기 어림도 없는 목표다. 게다가 막상 배워보니 문법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스페인어나 영어에 비하면 규칙도 변형도 더 많았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어쩌면, 한국인들에게 불어는 영어보다 덜 까다로운 언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 풀어보겠다. 불어와 영어 학습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발음 시 강세가 아닐까. 한국인에게 영어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문법도 아니고, 발음 그 자체도 아니다. 바로 음절 악센트가 리드미컬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언어감각으로는 듣거나 말할 때 따라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반면 불어는 한국어를 말하듯 매음절 악센트를 두고 끊어서 발음할 수 있다. 그래서 듣기도 말하기도 영어에 비하면 훨씬 쉽게 다가온다. 발음 체계도 항상 제멋대로 바뀌는 영어에 비하면 상당히 규칙적이다.
지금보다 학습시간을 늘려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내년에는 중급 수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내 외국어 구사 리스트에 불어를 억지로 끼워 넣고 싶다. 그러면 나는 한국어 포함 네 개 국어 구사자가 되는 셈이다.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시간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 한국을 떠난 지가 엊그제 같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사실 불어를 배우려고 시도한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 마드리드에 살던 시절 독학으로 처음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 무렵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프랑스인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는 모든 불어 발음을 한글로 적은 발음표를 손수 만들어 주었다. 예쁘고 귀여운 손글씨로 정성스레 적어준, 그 조그만 쪽지 하나를 가이드 삼아 불어 텍스트 독해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불어 발음 체계의 난해함에 질려서, 한 달도 못 가 배움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조금 흐른 지금, 상황은 많이 다르다. 한때 내가 질려버렸던 불어의 그 난해한 발음 체계는, 지금은 문화원 수업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못 가 깨우쳐 버렸다. 그 발음 체계를 다시 살펴보니 소리와 표기 방법이 직관적으로 일치하지 않을 뿐, 영어에 비하면 너무나 명징하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는 뭘 그리도 어렵게 느꼈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불어의 R 발음도 글쎄,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익혔다. 물론 원어민처럼 정확한 발음은 아니겠지만. 내가 다른 반친구들보다 초반에 조금 앞서 나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그들이 불어를 배우는 기본 조건은 나보다 유리하겠지만, 내게는 벌써 세 번째 외국어가 아닌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내 불어는 결국 문화권 차이에서 오는 그들의 자연스러움을 따라잡지 못하리라는 것도 잘 안다.
문득 스페인어의 R 발음을 연습하던 순간의 기억이 떠오른다. 불어의 그것과는 또 완전히 다른 소리다.
태양빛이 세상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던 스페인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는 마드리드 도심 근처 한 공원에 있는 작은 벤치 끝에 걸터앉아 죽어라 혀를 굴려대고 있었다. 엘 레띠로 공원이었다. 눈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손에는 연습 대본 역할을 하던 스페인어 소설이 한 권 들려있었다. 혀는 계속 제 위치를 빗나가기만 한다. 나처럼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지나가면서 그런 내 모습을 보았다. 그게 뭐가 그리 어렵냐는 듯, 낄낄거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자신은 우아하게 아르르르 혀를 굴리면서.
둘.
내가 한국을 떠나 첫 모험의 목적지로 스페인을 고른 것은 순전히 스페인 문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릴 때 클래식 기타를 배웠기 때문에, 스페인 음악의 강렬한 정서와 스페인식 이름들에 친숙했었다. 그 후 미술과 문학과 영화에서 내 취향을 자극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이 한결같이 스페인 출신임을 깨닫고는, 스페인과 나 사이에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끈이라도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꼈다. 결심을 내리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날은 일을 쉬는 주말이었고, 난 우면산 자락에 있던 예술자료관의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이런저런 책들을 들추고 있었다.
무엇이 날 자극했기 때문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백일몽에 빠져있다가 퍼뜩 깨어나듯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결심하는 데 오분도 채 안 걸렸을 것이다. 어느새 친구들에게 내 결심을 문자로 돌리고 있었다. ‘스페인으로 가볼까 해.’ 그렇게 유학을 결심했다. 마침 아버지가 내 결혼 자금을 위해 모아놓은 돈이 얼마간 있었다. 그 돈을 앞당겨 쓰게 해달라고 설득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번만 도와주면 앞으로 그 어떤 경제적인 지원도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유학 계획을 세울 때면 흔히 앞으로 배우게 될 언어가 앞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를 따지게 된다. 나는 스페인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정작 스페인어 자체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나는 스페인어가 그렇게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언어라는 사실조차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버지께 내 계획을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영국처럼 영어권 국가로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넌지시 밝히셨다. 아마도 영어를 배우는 것이 스페인어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스페인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와 체험에 대한 욕구에 그저 사로잡혀 있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사려 깊은 조언이었는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난 그다지 계산적이지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경악했다.
바르셀로나의 한 랭귀지 스쿨에서 수업을 받기 시작했는데,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나만 빼고. 그 건물에 붙어있던 바의 바텐더와 바닥을 쓸던 청소부마저도 영어에 자유로운 환경. 그들에게 스페인어란 영어 이후의 세컨드 랭귀지에 불과했다. 내가 좁은 우물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뒤늦게 깨달았다.
한국에서 남들이 스펙을 쌓기 위해 피눈물을 흘릴 때에도 나는 현실감각 없이 도서관에 틀어박혀 내가 읽고 싶은 책들만 골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십 대가 거의 다 끝나 갈 무렵까지 나는 그 흔한 토익이나 토플 한 번 쳐본 적이 없었다. 한국인은 영어보다 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지론이 있었고, 한국어 문장 하나 제대로 구사 못하는 애들이 영어를 붙잡고 씨름하는 모습을 내심 비웃었다. 영어는 그저 미국어였고, 영어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강박증은 그저 사대주의적 발상으로 치부했다.
‘그래, 나만 빼고 다들 영어를 한단 말이지?’
영어는 그렇게 내가 처음 마주한 바깥세상의 현실이었다.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학이라는 마지막 남은 인생카드를 활용하면서 영어권으로 가서 영어부터 배웠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계획을 전부 취소하고 판을 다시 짜야할까. 영어는 단지 미국어가 아닌 국제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으니, 내가 얼마나 현실감각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그렇게 내가 저질러버린 선택을 두고 회의와 자책감에 빠져 한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뒤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스페인어도 영어도 현지에서 먹고 살만큼은 구사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두 언어 다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고, 그 선택이 내 앞날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가 너무나 불안했다. 아무튼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로.
‘까짓 거 여기서 둘 다 배우면 되지.’
내가 어학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1여 년에 불과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든 잘 활용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스페인어 회화가 조금 가능해졌을 때, 나는 한 디자인 학교에 등록하기 위해서 마드리드로 거처를 옮겼다. 아직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곧 영어 수업을 신청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배웠었는데, 중급반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테스트를 치고 나서 완전 초급반에 배정받았을 때 ‘그럼 그렇지’ 싶었다.
낮에는 스페인 사람들과 어울려 영어를 배웠다. 쉬는 시간에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교실을 통틀어 스페인 출신이 아니었던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모두들 나에게 영어를 한두 마디 써먹고 싶어 쉬는 시간이면 내 앞에 줄을 섰다. 그들은 나보고 스페인에서 오래 살았냐고 묻곤 했다. 작년에 처음 왔다고 대답하면 정말이냐고 놀라곤 했다. 파티가 있을 때마다 꼭 초대받았다. 그런 식으로 스페인어 실력도 영어 실력도 더 빠르게 늘어났다. 오후에는 스페인에 일하러 온 다른 유럽인들과 어울려 스페인어 수업을 들었고, 쉬는 시간에는 그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불과 몇 달 만에 나는 영어를 중급반 상위 과정까지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초급반 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셋.
그 무렵, 항상 붙어 다니던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 이름은 안느.
어느 날 스페인어 수업을 듣다가, 그 랭귀지 스쿨 아래층 한구석에 있던 매점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다가와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다. “너 한국에서 왔지? 우리 반에 한국말할 줄 아는 애가 하나 있어.” 그다음 쉬는 시간에, 나는 그를 따라갔다. 그가 안내해 준 교실 한구석에 키 작은 금발 여자아이 하나가 앉아서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한글 글씨가 언뜻 보였다. 내가 한국말로 “안녕.” 하고 인사하자, 그 아이는 또렷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어 안녕, 반가워.”
안느는 십 대 시절을 남아공 국제학교에서 보냈기 때문에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 후 아버지의 사업차 한국에서 3년을 보내면서 놀라운 수준의 한국어를 배웠다. 모국어인 불어는 물론이고. 지금은 런던의 한 대학에 진학하기 전,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마드리드에 잠시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그 아이와 몇 번 마주치면서 조금 가까워졌을 때, 나는 언어교환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안느는 주저 없이 오케이 했다. 그래, 하자. 나는 영어 소설책을 한 권 골라, 안느의 도움을 받아 첫 페이지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스페인어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나곤 했다. 서로 마주 앉아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대화가 끝나면 함께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안느는 내게 일종의 살아있는 사전 역할을 해주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소리 내서 소설을 읽어 나가다가 모르는 어휘나 표현이 나오면, 나는 한국말로 “이건 또 무슨 뜻이야?”라고 묻곤 했다. 그때마다 안느는 그 뜻을 다른 예시를 들어가며 한국말로 척척 대답해 주곤 했다. 안느가 한 번이라도 대답이 막히는 모습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소리 내서 읽고, 묻고, 듣고, 받아 적고. 그러고 나면 순서를 바꾸어 내가 안느의 한국어를 도와주곤 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영어를 배울 수 있었고, 그 아이는 한국어를 더 연습할 수 있었다. 안느는 예전 서울의 한국어 어학당에서 쓰던 고급 단계 교재를 들고 나왔는데, 국어 실력에는 꽤 자신이 있던 나도 가끔은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쩔쩔매곤 했다. 안느는 동시통역가를 꿈꾸고 있었고, 나는 외국어의 세계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딛던 참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언어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안느의 도움을 받아 불어를 시도했다가 포기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스페인어도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불어는 무슨. 나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영어 소설책을 두어 권 끝냈을 때 영어라는 언어가 조금 잡히는 듯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외국어를 배웠다. 항상 사람들을 만났고, 항상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항상 무언가를 소리 내서 읽고 있었다.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무엇이든 다 잡으려고 했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어떤 즐거움이 있었다.
넷.
지금은 원어민 수준은 아니더라도 외국어로 농담도 주고받고 낄낄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Tengo hambre(땡고 암브레: 배고파)라는 기본적인 스페인어 표현조차 너무나 낯설었다. 그 말을 처음 배웠을 때 나는 생각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나는 허기를 가지고 있다.’ 정도 될 텐데, 얘네들은 이걸로 배고프다는 표현을 한단 말이지?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배고프다는 우리말에는 여러 가지 뉘앙스가 있는데, 예를 들면 굶주렸다든가, 위장이 음식을 원한다든가, 음식을 원하느라 배가 아프다거나, 또 '고프다'에는 뭔가를 추구한다는 뉘앙스도 있지. 그런데 그걸 다 싸잡아서 그냥 땡고 암브레 해버리면 하나도 표현이 안되잖아.
아직은 익숙하던 한국어 또는 모국어 중심의 세계관에서 충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영어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더 이상 안느와 스페인어 수업을 같이 듣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날마다 만나고 있었다. 하루는 항상 들리던 카페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보았다. 엘 레띠로 공원이 내다 보이는 어느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여름날의 쨍한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 쪽에 앉아서 스페인어 연습 많이 하곤 했었는데.” 손가락으로 그 공원 한쪽을 가리키면서 내가 말했다. 안느가 싱긋 웃더니 한국어로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묻는다. “근데, 넌 스페인어를 잘하면서 영어는 왜 못해?” “그야 공부를 안 했으니까 못하는 거지. 스페인어도 아직 잘하는 건 아니고.” 내가 대답하자 다시 묻는다. “공부를 왜 안 했는데?” “나도 모르겠어.”
그때는 정말로 몰랐다. 왜 나는 영어 공부를 진작 하지 않았을까. 항상 후회심을 한가득 담아 스스로에게 되묻던 질문이기도 했다. 그때 문득 뭔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안느에게 물었다. “‘공부를 안 했다’를 영어로 어떻게 말하지?” “I didn’t study.” 안느가 그 간단한 걸 묻느냐는 투로 가볍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뭔가가 석연치 않았다. “그게 다야?” 나는 되물었고, 안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여전히 의아했고, 재차 물었다. “정말로?”
“응, 그게 다야.”
안느가 그렇단다. 안느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나는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영어와 불어를 완벽하게 말하고, 존댓말과 반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놀라운 한국어 실력을 가지고, 스페인어도 이미 수준급이었던 아이였다. 안느가 단언하듯 되돌려 준 이 짧은 대답은 내게 깊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때는 이미 스페인어 회화도 꽤 가능한 상황이었고, 영어도 처음에 비해 제법 많이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고를 때마다 여전히 뭔가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걸리적거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I didn’t study.’를 몰랐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간단한 표현조차 바로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 순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순간부터 외국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언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특성을 그때부터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계적인 번역은 가능하겠지만, 언어에 담긴 의미 그 자체는 번역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언어 그 자체는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번역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언어는 그저 사용자 상호 간의 공통된 체험과 기억을 호출하기 위한 신호체계일 뿐이다. 하나의 신호가 같은 기억을 호출하면 같은 의미가 된다. 같은 말일지라도 다른 기억을 호출하면 이미 다른 말이 된다.
언어적 의미란 구르는 돌에 덕지덕지 끼는 이끼 같은 것이다. 돌은 계속 구르지만, 이끼는 그 표면에 묻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면서 흘러간다. 당신이 어떤 외국어에 낯섦을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 그때까지 익힌 언어적 기호체계에 이끼가 아직 덜 끼어서 그럴 것이다.
나는 왜 안느의 그 간단한 번역에 의아함을 느꼈을까? 그건 내가 ‘공부를 안 했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을 때, 스스로 무의식적으로 불러온 수많은 기억과 감정들에 압도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단지 공부를 안 했다는 것 그 이상을 말하고 싶어 했다. 내가 왜 공부를 안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내가 중고등학교 때 영어에서 얼마나 좌절을 느꼈는지. 내가 어떻게 해서 영어에 냉소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현실감각이 결여되어 있었던 내 어리석음까지. 내 짧은 한마디 아래 담긴 그 수많은 의미를 안느가 말해 준 그 간단한 영어 문장 하나로 표현해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표현해 낼 수 없다. 그 어떤 언어도, 몇백 마디의 말을 사용해도, 그러한 것들을 직접적으로 표현해 낼 수 없다. 언어는 그저 기호일 뿐 의미 그 자체는 아니니까.
그때 '공부를 안 했으니까’라는 내 한국어 문장의 구조도 안느가 들려준 영어 문장만큼이나 단순했다. 그처럼 단순한 구조를, 나는 그 문장을 발화하던 그 순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언어적 의미란 언제나 잉여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말한 것보다 더 말했다고 생각하고, 상대가 내 말을 충분히 알아듣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또 상대가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혼자서 감정 상하고 상처받고 화를 내는 것이다.
저 유명한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미는 그런 식으로 늘 ‘미끄러진다.’
다섯.
꽤 오랜 기간 언어에 대해 조금 과하게 집착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좋게 표현하면 언어 속에 푹 빠져서 살아온 것이다. 즉 한국어에 푹 빠져서 살았던 셈인데, 외국에 나와 살며 외국어를 배우기 전까지는, 그것이 한국어라 불리는 수많은 언어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아무튼 언어는 꽤 오랜 시간 내 정체성을 규정했고, 내 행동력의 기반이었다. 언어는 중요했다. 내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가진 언어의 가치, 즉 내 아이디어와 나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래서 내 언어가 비판을 받으면 나도 더불어 상처를 받았고, 내 언어가 받아들여지면 나도 더불어 행복해했다. 그러한 심리적인 동일시가 깨져나가는 데에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저기 취업을 시도할 무렵,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에게 호감이 있었던 나는 ‘한 번 봐달라’는 핑계 삼아 내가 쓰고 있던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었다. 내 속내는 따로 있었다. 그 글을 통해서 내가 가진 매력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여자의 반응은 단순했다. "글은 정말 잘 쓰셨는데요, 근데 회사에 글 잘 쓴다는 걸 보여주고 싶으세요? 이건 그냥 자소서 일뿐인데." 나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나에 대한 호기심도 없었던 것 같다. 서운함 보다는 의아함이 앞섰다. 이 여자의 눈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매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내가 가지고 있던 오류를 파악하기까지는 그보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언어는 분명 기호체계이고 나 아닌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습득해서 사용할 뿐이다. 보통은 사회적으로 이미 합의된, 남들의 방식을 가져다 쓰지만, 간혹 자신만의 조합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언어를 조합하는 일은 매력적인 일이다. 나만의 언어를 가지는 것은 때로는 나를 남들로부터 구별 짓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기 시작할 때 문제는 시작된다. 언어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의미가 늘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결점 없이 의미로 충만한 완벽한 언어적 구조를 만들어내기는 불가능하다. 만일 누군가가 작정을 하고 당신의 언어를 비판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완벽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세운 그 완벽한 논리구조 속에서도 의미는 계속 새어나갈 수밖에 없다. 만일 상대방이 꼬투리 잡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당신은 그의 말을 덮거나, 감정을 내세우거나, 그를 조롱하거나, 어떻게든 합의를 보거나 해서 그 상대방이 물러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당신이 만든 언어구조를 보호하고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그러나 그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다. 자기 아닌 것으로 자기를 삼는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른 지금 언어를 대하는 내 태도는 많이 달라져 있다. 지금은 그것이 '배고파'이든 'Tengo hambre'이든, 'I'm hungry'이든, 혹은 'J'ai faim'이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의 말에 큰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남들이 생각 없이 던지는 말에 크게 휘둘리지도 않는다. 그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단어를 적당히 내뱉고 적절한 의미를 획득한다. 저 유명한 오스트리아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의 의미는 그 쓰임에 있다. 그렇게 삶 속에서 언어의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히 집중한다. 언어의 기만에 휘둘리지 않고 그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언어를 대하는 이런 시선을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호와 의미 사이에 늘 존재하는 그 간극을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내 말과 글에 불필요한 무게감을 담아 완벽하려 들고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언어가 촉발하는 불필요하고 과도한 의미의 세계에 짓눌려 있었을 것이다.
여섯.
안느는 런던의 통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마드리드를 떠나야 했다.
모두 예정되었던 대로 흘러갔을 뿐이었지만 나는 많이 아쉬웠다. 나만 마드리드에 홀로 남은 것 같았다. 함께 걷던 길을 혼자서 계속 걸어가야 했다.
그 아이가 떠나고 얼마 후 디자인 학교 수업이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전공 수업을 위해서 모든 어학 수업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주말 서너 시간은 꼭 공원 벤치 같은 곳에 앉아서 언어를 익히며 보냈다. 가끔은 포기했던 불어에 미련이 남아, 안느가 남겨 준 발음 기호 쪽지를 들여다보면서 불어 문장을 읽어보려고 시도해 보곤 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안느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지금쯤 프랑스에 살면서 동시통역사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구축하고 있을 것이다. 아주 성공적일 것이다. 어학에 대한 재능이 아주 남다른 아이였으니까. 만일 그때 내가 불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더라면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느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귄 프랑스인 친구였다. 그 아이는 떠났지만, 그 후로도 내 주위에는 언제나 프랑스인들이 한 둘쯤은 꼭 있었다. 안느가 런던으로 가고 나서 얼마 후 또 다른 프랑스인 친구 하나를 만났다. 이 친구는 나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서너 살 많았고, 직장인이었다. 그 친구가 퇴근 후면 새로운 바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공연을 감상하거나, 아니면 파티에 참석하거나 하면서 재밌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니면 광장 한구석에 맥주캔을 들고 앉아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몇 년 후 나도 그 친구도 모두 스페인을 떠났다. 스페인을 떠난 지 오래된 지금도, 내 주변에는 프랑스인들이 많다. 한 번은 내가 일하는 회사의 영국인 사장이 농담 삼아 말한다. 이 회사는 절반의 영국인들과 상당수의 프랑스인들과 약간의 호주인들, 그리고 한국인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내 바로 옆자리에도 날마다 티격태격하는 프랑스인 동료가 하나 있다.
‘아, 그럼 불어 배우기 좋은 환경이겠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끼리 불어로 대화할 때 나는 굳이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듣는 편이다. 기본적인 회화만 조금 되지, 아직 원어민과 본격적인 대화를 나눌 수준은 못된다. 더구나 말하기 연습을 한답시고 무턱대고 남들을 귀찮게 할 만큼 철없고 다급했던 시기도 지난 것 같다. 그런저런 이유로 내가 불어 수업을 듣기 위해 가끔 제시간 보다 일찍 퇴근하는 것은 친한 동료 몇몇만 아는 비밀이다.
살면서 외국어를 몇 개나 배워나갈지 모르겠다. 만일 내가 불어를 충분히 배우게 된다면, 그다음 순서는 일본어가 될 것 같다. 실질적인 쓰임새도 많겠지만, 그보다는 영화사에서 중요한 언어들을 모두 배워 고전영화들을 자막 없이 즐길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지루하고 긴 과정이다. 노력에 비해 성과도 적다. 무엇보다도 언어는 어릴 때 배우는 것이다. 마치 안느가 그랬던 것처럼. 나이 들면 못 배운다는 것은 아니지만 효율성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나는 언어 실력으로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원어민처럼 되고 싶은 욕심도 없다. 회사에 널린 프랑스인 이민자 2세들처럼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영어와 불어를 장착한 사람들을 보면, 내게 주어진 조건이 정말 불공평함을 느낀다. 아무리 노력해도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또 완벽하려는 노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려는 시도는 분명히 어떤 이득을 준다.
스페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언어는 일단 생존 문제였다. 하지만 생존이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 언어는 그저 자기만족적인 취미 활동일 뿐이다. 원어민들처럼 모든 것을 다 표현하지도 다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언어학습이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외국어 단어 몇 개만 알아도 경험이 더욱 풍부해진다는 점이다. 단어 몇 개만 내뱉고 알아들어도 사실상 기초적인 대화가 가능해진다. 영화를 볼 때 전부 다 못 알아들어도, 단어 한두 개만 알아들어도 그건 이미 질적으로 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예전에 드로잉을 연습하면서 배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인체 해부학을 공부할 때 처음부터 완벽하게 뼈의 구조를 그리려 할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막대기나 동그라미처럼 간단한 형태로 각 뼈들의 위치만 제대로 잡는 법을 배우고, 세부 묘사는 평생에 걸쳐 다듬어 나가면 된다라는 내용이다. 외국어 학습은 그런 것과 같다. 영어든 스페인어든 불어든 일본어든 지금 젊을 때 기본을 닦아 놓고, 어휘력이든 표현이든 평생에 걸쳐 조금씩 다듬어 나가면 된다. 나이 들면 새로운 언어는 못 배운 다는 것은 그냥 도시괴담 같은 것이다. 원어민 같은 유창함을 얻지 못한다는 거지,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씩 늘게 되어있다. 더듬거리는 외국어도 외국어 실력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시간과 함께 내 언어실력은 점점 늘어 갈 것이고, 그와 함께 내 경험의 질도 나이가 들 수록 점점 풍부해 지기를 기대해 본다.
일주일에 두 번. 어느덧 반년째. 퇴근 후 시내 프랑스 문화원에서 불어 수업을 듣고 있다. 같은 라틴 계열인 스페인어를 조금 구사하는 덕분인지, 간단한 회화는 벌써 가능해졌다. 일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혹은 잔업 때문에 조금 늦더라도, 수업을 빼먹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