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감정의 밤
서너 달 전쯤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직장 동료 하나와 킹스트리트에 있는 스트립바에 갔다. 아주 건전한 장소였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퇴폐적인 곳도 아니었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작품 칼리토 <Carlito’s Way, 1993>에는 유명한 스트립클럽 장면이 하나 나온다. 우리가 간 곳도 그처럼 화려한 곳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그보다 규모도 작고 훨씬 초라한 장소였다.
그날도 금요일 밤이었다. 회사 앞에는 할리우드라는 이름의 바가 하나 있다. 보통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맥주잔을 기울이곤 했던 곳이다. 그날따라 모두가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일찍 자리를 떠났고, 나는 한 친구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나도 슬슬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 낌새를 눈치챈 그 친구가 내 흥미를 붙잡아 두려 했다.
“여기서 매트릭스 찍은 거 알아?”
“정말이야? 몰랐는데.”
“혹시 그 영화 다시 볼일이 있거든 잘 살펴봐. 영화 후반부에 네오랑 요원들이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어. 사다리를 타고 건물 위로 올라가기 전에 거리 장면이 풀샷으로 하나 나오는데 바로 요 앞에서 찍은 거야.”
그랬구나 싶었다. 내가 매주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는 곳이 매트릭스 촬영지라니. 하지만 화석 같은 이야기였다.
“우리 더 재밌는 데 갈까?”
그 친구의 삶은 내 것만큼이나 따분했던 모양이다. 그는 그때까지 내가 그 얼굴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무표정을 짓더니, 스트립바에 가자고 제안했다. 스트립바라니. 나는 그때까지 스트립바를 방문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러자.” 내가 대답했다. 기혼자인 그에게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세상을 복잡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의기투합해서 길을 나섰다. 택시를 하나 잡았다. 이미 밤 열 시가 넘어있었다. 평소라면 이미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을 시간이었다.
그 친구는 회사 오피스 내 왼쪽 자리에 앉는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만큼 친하게 지내던 동료였다. 작년이었던 것 같다. 비 오는 어느 여름날 저녁, 그 할리우드 바의 야외 테라스에서 우리는 지금처럼 단 둘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해는 아직 남아있었다. 그 친구가 담배 피우고 말하고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가고 하는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나른함이 몰려왔다. 그의 중얼거리는 듯한 말소리와 투둑 거리는 빗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내가 가진 맥주 파인트잔을 꿀꺽 다 비웠을 때, 문득 그가 입을 열더니 가끔씩 자기 집에 나를 초대할 테니 놀러 오라고 말했다. 나는 친절은 고맙지만 어차피 영어도 잘 못하니, 너희 가족들에게 방해만 될지도 모른다고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우리 집에도 영어 못하는 애들이 둘씩이나 있는데 뭘.”
두 살짜리와 네 살짜리인 자기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딘지 모르게 가슴 안쪽이 심하게 뭉클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백인에게 이런 식으로 타향살이를 위로받기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시내 중심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은 불빛으로 가득했다. 그곳에는 이름이 제법 알려진 스트립클럽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입장을 거절당했다. 그 친구가 반바지 차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도 드레스코드가 있구나. 그렇게 해서 우리는 택시를 다시 잡아타고 킹스트리트로 향했다.
술과 마약과 섹스를 즐길 수 있다는 이 도시의 대표적인 유흥가이다. 가끔씩 총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는 우범지역이고, 특히 나 같은 아시아계 이방인들은 가급적 방문을 삼가라는 권고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술 마시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밤늦게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언젠가 이른 저녁 그 근처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은 적도 있었다.
회사에 소속된 디렉터가 한 명 있다. 태도는 친절하지만 말이 어눌해서 조금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한 루머에 따르면, 이곳에서 마약을 하다가 넘어져서 머리가 깨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머리에는 뇌수술 흔적이 있고,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있어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어떻게 하면 한 번 넘어졌다고 머리가 깨질 수 있는지 상상이 되질 않지만, 아무튼 그런 루머가 있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거의 모든 영어권 대도시에 있는 같은 이름의 거리는 똑같이 유흥가로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처음 찾은 곳은 어느 빌딩 2층에 자리한, 어느 소극장처럼 생긴 작은 스트립바였다. 우리가 좁은 홀을 지나 그곳에 들어섰을 때, 무대 위에서는 비키니 차림의 댄서가 조명에 반짝거리는 봉을 붙들고 몸을 이리저리 꼬아대고 있었다. 우리는 바에서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한 잔씩 시키고, 무대 근처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댄서의 몸매는 적당히 보기 좋았지만, 그곳의 분위기에는 무엇인가 살아있는 것이 빠져 있었다.
영화 칼리토에 나오는 화려하고 신나는 음악도, 퇴근 후 한잔 하러 온 비즈니스맨들도 없었고, 환호를 지르는 성공한 일본인 사업가도 없었다. 그 대신 자욱한 담배연기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관객들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하나같이 게슴츠레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세상의 루저란 루저들은 다 모아놓은 듯이 침울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를 보고 루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댄서가 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아마 그런 걸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그 무대 앞에서 한 삼십 분가량 하품만 연신 해대고 있었다. 그러다 위스키잔이 다 비워져 갈 때쯤 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다른 데 갈까?” 그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와 거리를 조금 걸었다. 나는 오늘 밤 우리가 이렇게 방황하는 이유는 네가 반바지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웃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크고 화려해 보이는 간판을 찾아 들어갔다. 입장료도 조금 더 비싸게 지불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까보다 다른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좀 더 시끄럽고 역동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칼리토에서 본 것 같은 큰 원형 무대가 클럽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홀 한구석에서는 댄서에게 줄 티켓을 팔고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묻자 댄서를 위한 팁이라고 했고, 한 장에 5불씩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티켓을 두툼히 구입했다. 그 친구가 물었다. 위스키? 맥주? 우리는 맥주잔을 사들고 그 원형무대 한쪽 끝에 자리 잡고 앉았다. 무대 위를 올려다보자, 그곳에서는 두 명의 댄서가 가슴을 드러낸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은근히 기대했던 그런 분위기가 될 법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기대처럼 흐르는 법은 드물다. 정작 그 댄서들은 마치 파트타임으로 스트립티즈 일을 하는 듯 뚱뚱하고 나이 들어 보였다. 내가 물었다. “자리 또 옮길까?”
“그냥 있자.”
그 친구가 또 옮기기는 귀찮다는 듯 조금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이번에도 호기심을 가지고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보다는 나은 장소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곳 공기에도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빠져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영화 속 관객들은 무대 바로 앞에서 환호한다. 하지만 이곳의 관객들은 대부분, 마치 자신을 숨기기라도 하듯이 무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어둠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무대 바로 앞자리는 조명 때문에 얼굴이 환히 드러나니까. 그래서인지 무대 앞자리에는 우리를 비롯한 몇몇 관객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앉은 맞은편을 보니 데이트를 하는지 같이 놀러 온 한 커플이 손을 맞잡고 앉아 있었다. 댄서가 여자 앞에서 다리를 좌우로 벌리며 쪼그려 앉자, 여자는 입을 사용해 팁을 팬티에 꽂아주고는 몸을 부르르 떤다. 그러더니 남자친구가 옆에서 박수를 쳐준다. 또 다른 쪽 맞은편에는 잘 다린 블루 셔츠를 입고 짧은 탑햇을 쓴 근사한 외모의 노신사가, 조명 아래 조각상처럼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차분한 시선으로 쇼를 감상하고 있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감정이 보이질 않는다.
댄서들은 우리 앞에서도 춤을 추었다. 다리를 벌리거나 뒤로 돌아 엉덩이를 흔들면서 교태스러운 몸짓으로 팁을 요구하곤 했다. 가끔은 내게 곁눈질하듯 시선을 던졌고, 몇 번인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눈이 마주친 그 순간들이 재미있었다. 어색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스트리퍼의 시선일 뿐이었다. 그때마다 팁을 한 장씩 팬티 사이에 꽂아주면 윙크를 던지고는 잠시 떠났다가 원형 무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패턴은 끝도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무한 루프였다. 지루함의 무한 루프였다. 성적인 상상력이나 감흥?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스트립쇼라는 게 원래 이렇게 지루한 거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댄서들에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은 너무 뚱뚱했다. 뚱뚱한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장소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에게 기대할 법한 몸매는 아니었다. 십 대 소년도 아니고 눈앞에서 젖가슴이 조금 흔들린다고 흥분하고 그럴 나이도 아니었다. 바깥으로 도망쳐 찬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옆 친구를 보니 술기운이 다시 오르는지 꽤나 즐기는 것 같아서 다시 나가자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자꾸 들여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뚱뚱한 몸매가 혹시 이 친구에게는 스탠더드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댄서들이 뚱뚱하다고 느끼는 것은 혹시 내 문제일까. 그때부터였나, 무언가 조금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댄서들 중 하나가 시선을, 나를 피해서 내 오른편에 앉은 그 친구에게만 주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 우스운 감정이었을 것이다. 누가 스트리퍼들의 시선에 신경을 쓸까? 그들은 철저하게 보여지는 대상들이다. 타인의 시선을 받는 것이 그들의 직업일 뿐, 그들의 시선에는 아무런 권력도 의미도 없다. 하지만 반복되는 그 시선회피가 내 관심을 끌었다. 문득 그것에는 인종적인 어떤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종차별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단어를 쓰려면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 댄서가 내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그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마음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 시선회피는 인종적인 그 무엇이 맞았을 것이다. 외국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겪게 되는 나름 익숙한 감정이기도 하다. 나는 그 장소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아마도 그 스트립바는 동양인의 출입이 흔하지 않은 장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그냥 다른 인종을 대할 때 따라오는 어떤 거리감 같은 것이지, 그 댄서가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라서 동양인인 나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댄서가 늘 보지 못하던 다른 종류의 고객이 앞자리에 앉아있었을 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어쩌면 그저 환한 조명 아래 드러난 지루함에 가득 찬 내 표정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나와 그 친구는 무대 앞쪽에 바짝 붙어 앉아 강한 조명을 받고 있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그 댄서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자니 예전에 토론토에서 겪었던 작은 일화가 하나 떠올랐다. 어느 날 점심시간, 미국인이었던 옆자리 동료와 함께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동양인들은 가급적이면 출입을 꺼릴 듯한 전형적인 서구식 스타일의 장소였다. 그날도 나는 그곳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우리는 햄버거를 시켰다. 옆자리에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던 한 백인 커플이 내 동료에게 스몰토크를 걸어온다. 그 동료의 햄버거 패티를 놓고 뭐라 뭐라 떠든다.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가벼운 농담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맞은편에 앉은 내 존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를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들을 빤히 노려보고 있자니, 억지로 눈길을 피하려는 기색이 느껴진다. 그냥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식사를 계속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성격상 자세를 고치고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눈싸움이라고 할 기색으로 더더욱 노려본다. 그쪽에서도 불편함을 느꼈는지, 곧 주문했던 요리가 나오자 말을 멈추고 식사에 집중한다. 자칫하면 시비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겠지만, 가끔씩은 이처럼 자기 컨트롤이 서툴렀다.
한 번은 옆방의 음악소리 때문에 시비가 붙었을 때, 이런 식의 내 태도 때문에 그 방의 흑인이 내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며 떠들어대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그떄, 나는 그가 흑인이라서 음악소리나 소음에 너무 무신경하다고 생각했고, 그는 내가 동양인이라서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했다.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 인종이 다르면 생각이 더 복잡해진다. 다행히 그는 렌트를 취소하고 그 집을 떠나버렸다. 아무튼 레스토랑에서 그 순간 나는 인종차별을 당했던 것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그저 의사소통이 가능할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모가 너무 다른 타인종을 대하는 것이 어색할 뿐이었을 것이다. 유색인종과 어울려본 경험이 적은 백인들은 어디에서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오른편의 그 친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다가온 그 댄서와 얼굴을 가까이하고 무슨 말인지 주고받으며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스트립댄서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제화시대에 영어를 쓰는 백인으로 태어난 것의 이점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영어에 서툰 동양인으로서 백인들이 설계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다. 쿵쾅대는 음악은 계속 흘러나왔고, 댄서들은 무대 위를 끝도 없이 돌아다녔다. 그 무대는 끝도 없이 반복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사촌누나 한 명이 오래전에 미국인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 당시 누나는 영어교사였고, 매형은 외국인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기자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꽤 되지만, 한국말을 배우지는 않았다.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의 특권 같은 것이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어느 파티에서 처음 만나 매형이 누나를 쫓아다녔다는데, 누가 누구를 먼저 쫓았는지 서로 말이 다르다. 아무튼.
가끔씩 구정이나 추석 때 온 식구들이 모이는 자리에 놀러 오곤 했었는데, 그때 나는 나이도 어렸고 영어도 전혀 못했다. 사촌누나를 빼면 식구들 중에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좀 영어를 하셨던 우리 아버지가 예전 기억을 더듬어 몇 마디 건네 보지만 자연스러울 리가 없다. 그렇게 온 식구들이 그 외국인 매형에게 하루 종일 눈길 하나 안 주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안타까운 마음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 외국인 매형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외국인을 대하는 것은 감정적인 소모를 겪어야 하는 일종의 노동처럼,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마다, 그 매형도 내가 그 스트립바나 레스토랑에서 겪었던 것처럼 똑같이 투명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헤이, 잠 깨. 그 친구가 새 위스키잔 두 개를 언더락으로 들고 왔다. 또 위스키라니. 얼마나 더 오래 있으려고. 그는 이 지루한 쇼를 즐기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내 몸속에는 술이 들어갈 빈 공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한두 모금 마시고 무대 끝 가장자리에 잔을 내려놓았다. 많이 지쳐있었다. 위스키잔 속의 얼음도, 공기를 가득 채운 뿌연 담배연기도, 흔들리는 젖가슴도, 댄서들의 반짝이 의상도 많이 지쳐있었다. 그저 눈을 감고 싶었다.
문득 내가 저녁도 먹지 않고 줄곧 마셔만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는 원래 음주문화가 그런지 술 먹자고 모이면 다들 안주도 없이 빈속에 술만 계속 들이킨다. 술이 제법 센 편인 나도 가끔은 따라갈 수가 없다. 나는 속이 쓰렸다. 백인들은 위벽이 우리보다 더 두껍기 때문에 멀쩡한 것일까? 나중에 기회를 봐서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물어봐야겠다. 그러다 문득 내 얼굴에 드러난 건 지루함이 아니라 속쓰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구나. 어쩌면 내 찡그린 속쓰림이 그 댄서를 불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친구도 지루함을 느꼈다 보다. 마침내 해방이다.
우리는 그 장소를 떠났다. 새벽 두 시를 갓 넘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흐른 시간이 고작 네 시간밖에 안되었다고?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우버를 불렀고, 나는 근처에 있던 택시를 잡아타고, 각자 집에 돌아왔다. 우버를 기다리면서 그는 술김이었는지 상사 한 명을 '컨트'라는 심한 욕을 써가며 비난했다. 사내 관계 갈등은 국적불문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늦은 시각이라 거리가 텅 비어있었다. 낮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저 거리. 이 도시를 한 번이라도 방문했던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그 거리는 언제나 나와 같은 동양인들로 넘쳐난다. 특히 중국인들이 많다. 하지만 그 거리를 벗어나 어느 장소에 들어서면 동양인들의 머릿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식당에 들어가도 줄어들고, 옷가게에 들어가도 줄어든다. 특히 나처럼 어떤 회사라도 다니다 보면, 그 머릿수는 완전히 쪼그라들어서 동양인은 완전한 소수자로 남는다. 어디 동양인뿐일까. 내가 몸담은 이쪽 인더스트리에 흑인들의 존재는 특히나 찾아보기 힘들다.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원래가 인종차별이라는 것의 시작은 어느 특정 인종 집단의 노골적인 우월의식이 아니라 타인종에 대한 사소한 불편함과 낯설음일 것이다. 나도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론 그런 것을 두고 인종차별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며칠이 지났다. 문득 궁금해져서 영화 칼리토의 그 스트립클럽 장면을 다시 찾아보았다. 영화를 공부할 때 외울 정도로 수없이 반복해서 보았던 장면이지만, 다시 볼 때마다 신선함을 느낀다. 브라이언 드 팔마라는 거장 스타일리스트의 솜씨. 주인공 알 파치노가 뮤지컬댄서인 줄 알았던 옛 연인이 사실은 스트리퍼였다는 걸 우연찮게 발견하게 되는 대목이다. 관객의 시선 유도에 대한 히치콕적인 테크닉이 완벽하게 쓰인 장면이다. 내 삶의 첫 스트립바 방문도 그처럼 화려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짜릿함은 없었고, 짜릿한 우연함 같은 것은 더욱 없었다. 스트립바에 다녀온 그다음 주였던가. 우리는 서로 비밀이라도 지키려는 듯 그날 밤에 대해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있었다. 업무 중 문득, 고개를 돌려 왼편을 바라보자, 그 친구는 모니터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던 그날 밤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넌지시 물었다. 그날 재미있었냐고.
“Nope.”
그가 다시 돌아온 무표정으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짧고 단호한 대답. 그럼 그렇지, 재미있었을 리가 없었지. 내가 보았던 것은 그냥 화석처럼 죽은 감정이었다. 내가 만일 스트립바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는다면, 뚱뚱한 스트립댄서들 앞에서 지루해 죽는 두 청년의 멍한 눈동자를 찍을 것이다.
현실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