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2)

by 하도

둘.


그보다 기억을 한 참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것이다.


'엄마, 쟤는 방랑벽이 있나 봐.'


친구 하나가 나를 두고 자기 엄마한테 말했나 보다. 그 친구 엄마는 이 얘기를 우리 엄마한테 했고, 우리 엄마는 그 얘기를 다시 내게 전했다. 뭐, 대단한 얘기는 아니다. 툭하면 몇 시간씩 걸어서 여기저기 뿔뿔 돌아다니는 내가 그 친구 눈에는 비정상으로 보였나 보다. 혼자 걸어서 한강을 다녀오거나, 이 동네 저 동네 기웃거리거나, 그 당시 삼성동에 있던 서울문고까지 몇 시간씩 걸어가서 책을 보고, 다시 몇 시간씩 걸어서 돌아오곤 했었다. 글쎄,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내겐 별일 아니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그것도 나름 모험적인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친구가 그런 말을 자기 엄마한테 했을 것이다.


정말로 내겐 타고난 방랑벽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내친김에 작은 기억 하나만 더 이야기해 보자. 3살 때였을 것이다. 부모님이 은행에 가실 때 나를 데리고 갔었는데, 잠시 한눈 판 사이 내가 사라져 버렸다. 눈앞이 캄캄해지신 부모님은 나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었지만, 나는 이미 은행 안에 없었다. 부모님은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오셨는데, 그때 길 저 쪽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를 어깨 위에 목마 태우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걸 발견하셨다.


그 꼬마는 그저 아장아장 걸어서 이 세상을 탐험하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가 안 보인다고 울지도 않았다. 인파 속에서 어린 꼬마를 발견한 그 현명하신 아저씨는 내가 부모를 잃어버렸음을 즉각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부모가 발견하기 쉽도록 나를 높이 목마 태우고 내가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때 탐험했던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내가 붙잡고 있었던 그 아저씨의 양쪽 귀가 손에 닿았던 감촉, 뒤로 스쳐가는 건물과 거리의 풍경들, 길 저편에서 나를 발견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손을 흔들던 부모님의 모습 등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게 혼자 뿔뿔 돌아다니길 좋아하던 아이는 이제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마저도 떠났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외국 생활을 시작했다. 언어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해 왔던 내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떠듬떠듬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한두 해가 지났을까. 어느 날 문득 일기를 쓰다가, 한때 내 정신을 가득 채웠던 거칠고 격렬했던 관념들이 어느새 많이 녹아내렸음을 깨달았다. 먹먹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한국어를 잊어버림과 동시에 그와 결합되어 있던 많은 관념들도 허공으로 증발해 버린 것이다. 언어란 그런 것이다. 한국에서 가졌던 삶과 사고방식이 그대로 이어지길 원하지 않았던 나는 그것을 아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외국에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만족감은 잠시, 외국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기나긴 현실이었다. 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외국생활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특히 의사소통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우선 자아가 위축된다. 자아를 내려놓는 법을 배우기 위한 좋은 연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툰 언어 때문에 자존심을 구길 때마다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느 날은 영어가 좀 트이나 싶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일 뿐,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무슨 알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전부 웅얼거림으로 들린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집중력이 따라 실력이 오르내리는 것이다. 하루는 제법 괜찮다가도, 하루는 윗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실수가 생긴다. 따라서 늘 긴장하고 살아야 한다. 외국에서의 삶은 물아래에서 잠수하는 것과 같다고 늘 느껴왔다. 숨도 막히고, 무거운 수압이 온몸을 늘 짓누른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싫었다. 비록 숨은 조금 막혀도 이곳에서는 어떤 역할이나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아무리 끝이 안 보이는 길 위에서 아무리 불확실성을 마주해도 내 삶은 여기 길 위에 있지,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정해진 틀에 맞추어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기대했던 만큼 내가 어학에 재능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 현실적인 어려움을 깨닫고 나서도 내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조금씩이나마 열리는 것 같은 어떤 가능성이었기 늘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답답해도 여기서는 미래가 열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날마다 찔끔찔끔 늘어나는 언어 실력과 함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너무 멀리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멈추어 설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만 포기할까 싶다가도 포기하기를 포기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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