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그렇게 혼자서 뿔뿔 돌아다니길 좋아하던 아이는 자기 나라를 한 번 떠났던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도 돌아다녔던 것 같다. 남들처럼 배낭 하나 둘러매고 백여 개국을 여행하고 그 경험으로 책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장소에서 살아왔다. 사는 것과 여행하면서 잠시 방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체험이다. 한 도시에 최소 두 달 이상 머물러 본 경험만 따져보자. 서른 살 이후 한국 빼고 5개국 7개 도시가 된다. 아마도 적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랬으랴. 내가 가진 방랑벽을 주체하지 못해 계속 나라와 도시들을 옮겨 다녔던 것이 아니었다. 살다 보니 어쩌다 사정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만일 방랑이 내 운명이라면 그 말만큼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하늘이 ‘넌 이곳을 떠나야만 해.’라고 말하듯 가는 곳마다 오래 머물지 못할 사정들이 생기곤 했다. 학교문제로 학업을 끝마치지 못하거나, 대사관 파업으로 비자발급이 늦어지거나, 국가 부도 상태로 취업길이 막히거나, 정치적 상황 때문에 회사에 잡혀있던 프로젝트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또는 이민법이 갑작스럽게 바뀌면서 영주권 신청이나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기거나. 어쩌면 그렇게 운이 나쁠 수가 있는지, 마치 내가 그것들을 몰고 다니는 것처럼 내가 가는 곳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생기곤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또 얼마나 운이 좋은지, 언제나 또 다음 기회를 얻어 새로운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운이 좋았다. 언젠가 이 이야기도 한번 글로 써보면 좋을 것이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경험들을 했고, 또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배운 진부한 교훈 하나만 얘기해 보자. 인생의 수많은 일들이 당신의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다. 당신이 재능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일이 안 풀리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회구조 탓만 하면서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거나 정말 실력이 없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아무튼 기본적인 조건들을 다 갖추고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인생은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당신에게 마구 던져준다. 그러한 실패의 경험이 자꾸 반복되면서 나는, 세상 속의 작은 티끌뿐일 존재가 가져야 할 겸허함에 대해서 정말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한약방을 하셨던 증조할아버지를 비롯해서 외가 쪽 집안에 의사들이 많다. 그래서 어머니와 외갓집 가족들은 나도 의사가 되기를 강하게 바랬고, 가끔은 내 진로에 대해 직접적으로 압력을 넣기도 했었다. 의사였던 이모부가 날 설득하기 위해 찾아와서 같이 잠들면서, 의사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밤새 설교들 들었던 적도 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나는 의사라는 직업이 끔찍이도 싫었다. 하루 종일 그 좁은 곳에 앉아서 사람만 치료하는 일이 뭐가 재미있을까. 내가 의대에 갈 정도의 공부머리가 없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내가 왜 의사가 되어야만 하냐고 되물으면 어머니나 외가식구들은 안정적이고 존경받는 삶을 그 이유로 들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대답하곤 했었다.
"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싶어요."
결국 어릴 적 소망대로 파란만장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찌감치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늘에서 내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어쩌면 가슴 아파하실지도 모르는 일이다.
파란만장이란 단어는 어떤 로맨틱한 미화가 들어있는 것 같아서 이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또 나는 별것 아닌 나의 삶에 그런 식의 단어를 붙여가며 미화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양심은 있다. 비록 방랑은 할지언정 방황은 하지 않는다. 또 방황을 파란만장함으로 착각하지도 않는다. 어릴 적 철없던 소망과는 다르게 막상 변화가 심한 삶을 직접 겪어보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헤어져야만 한다. 집이나 차를 사기도 힘들다. 계속 이사 다니느라 돈이 안 모인다. 마음에 드는 가구가 있어도 사지를 못한다. 내년이면 다시 버려야 할지도 모르니까.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막연한 불안감은 항상 따라다닌다. 친척 어르신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해 소개팅을 받았다. 상대가 마음에 들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문자를 보냈다. 물론 답장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런 식의 삶의 스타일을 계속 유지할 것 같다. 계속되는 옮겨다님과 변화에 스스로 지쳤던 것일까? 몇 년 전 스스로 어떤 역설적인 선언 같은 것을 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절대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