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유럽과 북미와 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공부하고 연애하고 일하고 살아본 경험들은 내게 세상의 다양성에 대한 시각을 제공해 준 것 같다. 에스파냐에 대한 인상적이었던 경험 하나. 그곳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경험이나 삶의 방식을 일반화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언어적 진술을 한 다음 언제나 그 끝에 덧붙이곤 했다. 가령 '적어도 여기 마드리드에서만큼은 그래'라고. 그것은 일종의 관용구처럼 그들의 언어습관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스파냐는 4개의 다른 언어가 공존하는 4개국이 정치적으로 통합된 국가가 아닌가.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양성과 상대성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이 겪는 많은 경험들이 일반화되기 힘든, 실은 문화적 지역적 특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은 자연스레 체득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비좁은 경험만으로 세상만사를 규정하고 오지랖을 펼치는 한국의 꼰대문화가 그곳에는 없었다.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간혹 한국인 꼰대들을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통은 한 도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국을 벗어나도 겸손해지기보다는 더욱 기고만장해진다. 여기까지 와서 살아봤는데도 인생 별거 없더라는 식의 진부한 레퍼토리. 그들은 얼마나 다양한 문화와 얼마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모른다. 삶이 별거 없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별거 없음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도 나는 많이 걷는 편이다. 어릴 때처럼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다니지는 않지만, 이틀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산책을 나간다. 걷고 싶어서 걸을 때는 나도 좋지만, 가끔은 지치기도 하고 걸음을 멈추고 한차리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만 걷고 싶어도 계속 걸어야 하는 순간들도 있는 법이다. 백남준은 자신을 유목민족의 후예라고 생각했다고 하던데, 내게도 그런 유목민적인 유전자가 핏줄 속에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가끔은 내가 걷고 싶어서 걷는 것인지, 세상이 나보고 계속 걸으라고 총부리를 들이미는 건지 모를 때도 있다. 그렇게 가끔 걷기에 지칠 때면 백남준을 생각해 본다. 백남준은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 촌스러운 일본식 영어발음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품활동을 했다. 나는 흉내도 내지 못할 위대한 정신력의 소유자.
정말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이 도시에서 나는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까. 다른 한국인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씩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곳. 언젠가 영국인 사장이 위스키잔을 기울이며 농담 삼아 말했다. 우리 회사는 절반의 영국인들과 상당 수의 프랑스인들과 약간의 호주인들 그리고 한국인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현지인도 자리 구하기 힘들어하는 좋은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 행운. 날마다 원어민들에 둘러싸여 외국어로 일할 수 있는 이 행운. 물론 영원한 것은 없다. 얼마 전 회사해서 영주권을 신청해 주었는데, 어이없게도 리젝 당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민법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벌써 두 번째 영주권 리젝이다. 갑자기 슬픔이 몰려온다. 이 도시에 오래 머물면서 나도 남들처럼 가정도 이루고 하면 어떨까 하고 잠시나마 꿈을 꾸었다. 역시나 나는 꾸어서는 안 되는 꿈이었다. 일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계속 비자를 발급받아 나를 붙들어 두려고 하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떠나야만 할 것이다. 내년에 한 번 더 기회가 올 것 같기도 하지만, 상황을 보니 그것도 힘들 것 같다. 또 다른 나라로 가게 될까. 또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낙담하기도 잠시. 새로운 모험에 대한 흥분감이 몰려온다. 차리리 모든 것이 틀어져서 언제나 그래왔듯이 상황이 나를 새로운 여정으로 내몰기를 내심 바라기도 한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게 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끼어들수록 그 여정은 더 짜릿할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니 아주 엉뚱하게 스리랑카로 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자리에 계속 머물지 않으리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던 난 이미 준비가 되어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 다시 새로운 생활을 꾸려갈 준비.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준비. 그것이 어디가 되었던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일 준비를 이미 마쳤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녀 본 덕분이다. 그것은 가슴 설레는 모험일 뿐이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진 것들을 잃어버릴까 두려움 때문에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진 것이 처음부터 많지 않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 없는 마음에서 자유로움이 나온다. 자유로움. 내가 유일하게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일 것이다. 십 대 시절부터 다른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나는 행복이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어에는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돈, 안정, 성공, 친구, 사랑 그 모든 단어들에 시큰둥했지만 자유로움이라는 단어만큼은 어제나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나이는 먹어가고 딱히 모아둔 돈도 없고 어쩌면 빈털터리로 길 위에서 평생 외국어만 더듬거리며 배우다가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미성숙한 아이들처럼 더듬거리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렴 그런들 어떠하리. 백남준이 수십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의 입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던 예스러운 하오체가 튀어나와 모두들 경악했더라지. 언어란 그런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그가 정말로 존경스러울 뿐이다. 주위사람들이 그의 촌스러운 일본식 영어를 못 알아들어 곤혹스러워하곤 했었단다. 그가 언어적으로 얼마나 고립된 삶을 살았을까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그는 한 번도 언어적으로 완벽했던 적도, 언어적으로 품위를 구사했던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모든 곳에 있었고, 모두가 그의 존재 가치를 인정했다. 물론 그의 인생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고, 나는 그처럼 똑같이 품위 있는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이 아무리 초라할지라도 그것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길 위에서 성장해 가는 중일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대범함도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일이 잘 안 풀리면 한숨 정도는 쉰다, 무엇보다도 그 길 위에서, 세상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도 배웠다. 물론 그것이 꼭 연민만은 아니다. 대범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으면 먼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만 가능할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작은 것들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안정감을 취하려 들면 그것들마저 놓칠까 두려움에 떠는 새가슴이 될 뿐이다. 자유롭고 싶으면 그 새가슴을 극복해야 한다. 손아귀의 힘을 풀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놓아버려야 한다. 가장 안전한 길은 무엇일까. 남들이 또는 세상이 규정해 주는 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 지루할지는 몰라도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은 없을 것이다. 내 머리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불안감에 몸이 떨려도 한 번쯤은 자기 길을 걸어보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걷다 보면 그 끝은 어디일까? 아무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저 길 위에서 쓸쓸하게 죽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많이 걸었던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침대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아야만 잘 살아온 인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것은 그냥 문화적 관습이 주는 해피엔딩에 대한 어떤 관념일 뿐이지, 그것이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측면은 아닐 것이다. 유목민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은 다른 문화권의 그것과 조금 다를 것이다. 어차피 길 위에 나서 길 위에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문득 몇 달 전에 보았던 로건 <Logan, 2017>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생각난다. 노화와 죽음에 관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너무나 잘 만들어진 영화다. 이 정도의 진지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가 이 정도의 퀄리티를 가지고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독하게 슬픈 이 영화를 한 번 보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쓸쓸하게 길 위에서 죽어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견뎌온 삶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아무튼 나는 계속해서 걸을 것이다.
그저 느긋이 산책하듯. 그저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