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1)

by 하도

하나.


언제였는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십 대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내겐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앞날이라는 것은 스위치를 켜도 켜지지 않는 검은 스크린 같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런 상상도 안되었다. 내가 마주한 이 세상은 더없이 완벽하고 그 자체로 빛이 나 보였다. 하지만 그 앞에 선 빛 꺼진 나 자신은 너무나도 작고 초라했다. 어릴 때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오랫동안 시달렸던 나는, 그 무렵 죽고 싶다는 생각을 늘 달고 살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죽고 싶었다면 아마도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내가 일찌감치 죽지 못했던 것은 삶에 대한 욕망이 죽고 싶다는 감정을 넘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가슴 저 밑바닥에 흐르는 본능 같은 것 말이다. 아무튼 아직은 살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백남준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절대로 좋은 아들도,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장차 되지 못할 그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생이라고 스스로 폄하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이 주는 경이로운 두근거림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착각하곤 한다.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그저 경험하기 위해 태어난다. 물론 오랜 인류학적 관습들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문화적인 굴레를 지우고, 당신은 아마도 태어났던 그 순간부터 이미 어떤 역할놀이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떠하게 살아야 할 그 어떤 의무도 본질적으로는 없다. 그저 보고 듣고 걷고 웃고 울며 숨 쉬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삶일 것이다.


내가 아직은 죽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했을 때, 나는 외국에 나가서 남은 인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어느 가을날, 그렇게 해서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한 나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남들이 코피 흘려가며 토익점수를 올릴 때, 나는 도서관에 파묻혀 쓸데없는 책장만 넘기고 있었다. 세상살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개인적인 관심거리들이었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외국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일단 시작만 한다면 외국어도 쉽게 배울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한 자기기만의 근거는 고작 국어 실력이었다. 언어감각은 다 통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과감하게 외국땅에 도착하고 나서, 외국어 학습의 어려움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돌아갈 곳이 없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더라면, 내가 태어난 나라를 떠날 생각이나 했었을까?


아마 일생일대의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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