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끼임에서 벗어나
페이지 사이가 비었다.
책갈피(間, 사이)가 떠났다.
독자의 역사적 이정표였고,
과거의 위치에서 현재를 깨우며 미래를 기다리던 자였다.
둥근 곡선을 그리며 넘어간 과거에
쐐기를 박듯 제 몸을 꽂아,
많은 독자들을 조용히 응원하던 그였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작은 세포에서 거대한 우주까지,
세상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인간의 추악과
그걸 뛰어넘는 신의 사랑까지.
많이도 보고, 많이도 들었다.
평생 ‘마음의 양식’만을 취했고,
야윈 몸으로 활자와 활자의 중압감을
온몸으로 견뎌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고인은 피살된 채
자택 서재에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연인이었던 ‘짝수쪽’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책갈피 씨는 평소
‘홀수쪽’과 ‘짝수쪽’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두 사랑 사이에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고,
“더 이상 다음 장의 ‘홀수쪽’ 꼴은 못 보겠다”며
‘짝수쪽’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사당국은 다른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최근 책갈피 씨 주변에 포스트잇이 자주 출몰한 점,
‘이북’ 씨의 인기로 입지가 줄어들었다고
고인이 자주 토로해 왔던 점이 그 이유다.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며,
추모에 동참하고자 하는 분들은
잠시 책 속의 책갈피를 빼어
3초간,
책등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쉬게 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