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세계를 만질 때 (상)

몸-세계 사이가 아니라, 몸-세계의 겹침

by 잭옵

오늘 상담자로 인해 지난 2개월 동안 나의 손발은 바빴다.

그의 거대한 몸짓만큼이나, 나의 생각도 미리 맞춰 움직여야 했다.

시청과 구청에 오가며 신고하고 허가를 받았다

'사람 한 명 오는데 신고와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문하겠지만 그를 만나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디서 걸어와 어디에 서 있다가 어디로 걸어 나갈지

걸음 하나하나에 머리를 써서 준비해야 했다.

심지어 그가 화장실이라도 요구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미리 계획해야 했다.

오래전에 그는 오줌으로 파리를 잠시 베니스처럼 만든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올 생각만 하면 머릿속은 꼬이고 가슴은 막혔다.

내가 체크리스트의 항목을 하나하나 줄 치며 확인하면

그녀는 일은 뭔가 빠진 듯 준비해도 다 돌아간다며 체크리스트를 가볍게 웃어넘겼다.

나보고 너무 빡빡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지혜가 부족하단다.


그렇게 말하던 분이

정작 오늘만큼은 나보다 먼저 준비해야 한다며

빙의할 내 몸부터 내놓으란다.

일찌감치 내 몸을 입은 그녀는 창문을 다 열어젖히고

등은 바닥에 대고 다리는 창틀이 있는 벽에 기대고는,

누워서 창문을 통해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한 손은 부채를 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놓은 것도 아닌

놔쥐고 있다.

그리고 진작에 뽑아놓은 각주쌀은 호주머니 안에서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하늘의 구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정도 크기의 솜사탕정도가 되어야 팡타그뤼엘은 만족하겠지?"

"저런 구름은 텔렘수도원 잔디밭에 누워서 본 것 같다.

텔렘수도원은 지금도 그대로 일까?"


누운 채로 고개를 나에게 돌려

"아저씨도 거기서 한 달만 지냈다면 신병에 안 걸렸을지 몰라."


나는 반사적으로 책장을 훑어봤다.

'텔렘 수도원, 라블레, 가르강튀아, 네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라'


그녀는 다시 하늘을 쳐다보면서

"텔렘에 갔어야 해. 암 갔어야 돼. 지혜는 책에만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웃음과 같이 흘려 나오기도 하고"


이번엔 부채로 자신의 머리를 탁탁 치면서

"세상과 몸이 부딪히면서 얻어지기도 하거든."


옛날의 나였다면 콧방귀로 밀쳐내고,

차분한 논리를 머릿속에서 꺼내어 반박했겠지만

이제는 우신이 말할 기회를 막지는 않았다.

'세상과 몸.. 그럴 수도..'


크르르 크르르

땅에 박힌 건물의 몸이 무언가를 느낀 듯 미묘하게 떨렸다.

꽉 끼는 책장을 옷처럼 입고 있던 책들이

답답해서, 금방이라도 그 옷을 찢고 나오려는 듯 책들이 들썩였다.


쿠르르르 쿠르르르

우신당이 일어나 걸음마를 배우는 듯 박자에 맞춰 흔들렸다.


"드디어 오고 있나 보군"

설렘이 묻어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도대체 누구의 발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이런 요란을 만들어 낼 것인가?'

'몸이 세상과 부딪혀 지혜를 얻는다고? 그렇다면 오늘의 주인공이 여기를 왔겠어?'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책장을 바라봤다.


이제 발자국 소리가 동네 전체를 흔들었다.

다리의 움직임에 눌렸다가 밀려오는 공기는 바람이 되었다.

거대한 그림자는 햇살을 끊고 대낮의 밤을 만들었다.


하늘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우신은

하늘 보기는 포기하고 일어나 확성기를 찾아들었다.

"웨엥~ 웨엥~"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창가에 몸을 반쯤 내밀었다.


어마어마한 팡타그뤼엘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여기 같은데"


그리고는 버스만 한 손가락으로 건너편 건물을 건드리려 했다.


급히 우신, 그녀는 사이렌을 울리고

"아냐 아냐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 네 뒤에 있어. 뒤란 말이야!"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뒤로 돌아"


거인은 조심해서 아주 천천히 그녀의 말을 따라왔다.

큰 바위산의 작은 시내가 이마와 등뒤에 흘렀다.


"오랜만이야 팡타그뤼엘, 여전히 어마어마하군. 살 좀 빠진 것 같은데"

그녀는 크게 웃었다.


크게 울리는 목소리로

"맘에도 없는 말로 놀리기는. 모리아, 당신의 조롱이야 말로 여전하네."


"그런데 아름답던 모습은 어디 가고 평범한 아저씨가 된 거지?"

풀잎 달팽이를 쳐다보는 아이처럼 쪼그려 앉아 그녀를 관찰했다.


"어리석음이 지혜란걸 알려주려다 보니 이리됐어."

"팡타그뤼엘, 너 안 되겠다. 너 쪼그리고 앉는 거 너무 불안해 보여. 주저앉기라도 하면 어쩔 거야."

"내가 네 귓속에 들어갈 수 있게. 나 좀 태워줘 봐."


그렇게 그녀는 커다란 귓구멍 속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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