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다리미 씨(Iron, 3.1kg) 별세

분류: 물건, 타살, 자살

by 잭옵

구르고, 걸려 튕기면서 생긴 거친 주름들

고인은 구김살을 매끈하게 펴는 일을 하셨습니다.

경계를 지우고 규격과 표준에 맞추기 위해

옷 사이를 누비며 날아다니셨습니다.

평소에는 다소 냉랭하고 차갑게 다가오셨지만

일할 때만큼은 온몸이 달궈지고 머리에서는 김이 나도록 일하셨습니다.

고인이 지나가면 세상의 굴곡은 펴졌고 사람들에게는 흐뭇한 미소가 남았습니다.

고인은 오늘 아침, 옷장 속에서 전선이 꼬인 채 끊어진 상태로 발견되셨습니다.


[현장] 유족 분무기 씨는 울음을 분사했고, 다리미판께서는 조용히 등을 빌려주었습니다.


본지 기자는 고인의 SNS 계정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고인의 속은 끓어오르는 수증기로 가득 찼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단단함, 강함.

쇠로 만들어진 나에게 어울리는 말들이다.

Iron, 그게 나다.

그런데 왜 다들 어여쁘게 다리미()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누가 내 이름에 美를 붙였나. 나는 그 사람 셔츠부터 펴고 싶다."


"Iron, 나는 거대한 선박이거나 로켓이 어울린다.

가사노동에 갇혀

꽃무늬 셔츠와 교복 위만 누비고 있으니 다리미라고 불리는 것이다.

로켓으로 솟구칠 열망은 다리미의 수증기가 되어 바닥에만 깔린다."

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다리미(美)라는 여성적 틀에 가두는 세상을 비판해 왔습니다.


전선의 단면이 유난히 깔끔하게 잘린 점이 의심스러워

현재까지 수사당국은 '외부 요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채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수사당국은 '자가 단절'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표현은 유보했습니다.




[직장 동료 가위 씨 애도사]

거실에서 당신과 다리미판이 등을 맞대고 바쁘게 일할 때

저는 항상 뒤늦게 나와 뒷정리하던 게 생각납니다.

그때 당신이 감춘 꼬인 전선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때라도 당신이 고뇌의 열병에 헤매고 있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당신이 부드러운 이름 때문에 쇠의 자아를 잃어가는 걸 알았더라면

저는 백 번이라도 다림기(機)라고 불러드렸을 겁니다.

이제 와 불러드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게 강하고 단단했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붙어 다니던 꼬리표를 끊고

본래의 쇠로 돌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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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이상 일반 다리미(美)가 아니다.

- 선 없음. 꼬임 없음. 변명 없음.

- 단단함과 강함은 기본 옵션.

로켓은 아니지만 로켓을 꿈꾸는 스팀 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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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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