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유 Mar 05. 2018

가벼워서 오래하는 독서모임

벌써 1년이 지났다.


가벼워서 오래하는 독서모임

 

2주에 한 번씩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있다. 월 두 권에, 발제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분야의 책을 정해놓고 읽는 것도 아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쉬기도 하고, 바쁜 일이 있는 사람은 미리 말하기만 하면 빠져도 된다. 느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느슨함 때문에 이 모임은 작년 2월부터 끊어진 적 없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모든 인원이 책을 추천하면 한 표씩 투표를 하고, 그 중에 표를 많이 얻은 것들만 모아 다시 투표를 하고. 그래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책을 읽었다. 이것도 처음에는 모두 다 의무감을 갖고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없어도 찾아내서 제안하곤 했는데, 요즘엔 그냥 읽고 싶은 책이 있는 사람만 제안한다. 투표 방식도 조금 바뀌었다. 원래 하던 방식으로는 모두가 적당히(열렬히가 아닌) 읽고 싶은 책이 몰표를 받아 결국 정말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표를 여러 장 주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억지로 읽지 않는 장치를 만들어뒀다. 그 외에도 한 주는 책 대신 영화를 보거나, 엠티를 가거나, 보증금 제도를 도입했다 없애기도 하고. 말이 길었다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저런 시도를 거쳐오면서 많이 단단해진, 애정이 가득 담긴 모임이라는 것.


총 인원은 열 네명으로, 사회과학/인문학/미술/공학 등 다양한 전공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다. 책의 장르도 딱히 구분해서 읽지 않는다. 소설 읽고 싶은 날은 소설, 아닌 날은 에세이. 토론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비문학. 과학 서적도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모두가 한 팀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고, 매 회차마다 좋은 책을 투표해서 같은 책을 고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토론을 한다. 한 팀당 최소 인원은 3명, 최대는 5-6명 정도 된다. 그러면 매 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책들을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 1년 쯤 되고 나니 그간 해왔던 얘기들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나름의 기록을 남겨보려고, 우리가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물론 내가 있는 팀에 참석한 멤버 전원이 동의하는 책에 한해서.


지금까지 읽은 책들은 이런 책들.

<개인주의자 선언>, <1984>, <시지프 신화>, <지적 자본론>, <철학 이야기>, <쇼코의 미소>, <팡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안>, <오직 두 사람>, <낭만전사: 여자는 왜 포르노보다 로맨스 소설에 끌리는가?>, <해변의 카프카>, <사피엔스>, <지금 여기 힙합>,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나쁜 페미니스트>,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달과 6펜스>, <인간 실격>, <자기 앞의 생>, <속죄>, <감정 교육>, <채식주의자>, <자기만의 방> ...


모임의 분위기는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공지사항(이라 쓰고 뽕이라 읽는다.)을 첨부한다. 이 공지사항을 처음 읽었을 때 너무 설레고,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편지처럼 줄글로 쓰인 글이었으나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소제목을 달아보았다.(제가 쓴 것 아닙니다!)



모임이 만들어졌을 당시 공지사항


모임 개설의 취지

지난 금요일에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읽었어요.

독서 모임: 독서 모임을 만들거나 가입하는 것도 좋다. 모임을 하게 되면 의무적으로도 책을 읽게 된다. 또한, 책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모임은 삶의 질을 향상해 준다.


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모임에서 무언가 대단한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책을 즐기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주변 몇 명에게만 한 번 연락을 해봤습니다. 생각보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연락한 것도 아닌데, 30분만에 12명(일단 8명, 대기인원 4명)이 모였어요.


그런데, 시 읽기 모임 외엔 독서 모임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사람을 모아놓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확신하는 건 있습니다. 책이란 건 우리의 사고의 틀을 박살내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검증된 도구라는 것. 그런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모이면 대단한 무언가가 생길 거라는 것.


그래서,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어떻게 읽을 것인지. 좋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좋은 의견들이 나올 것이라 생각해요.


시작하기 전 준비해야 할 것

일단, 여러분들을 잘 알고 싶습니다. 다음 질문들에 대한 답을 작성해서 제게 보내주세요. 제가 정리해서 첫 모임 때 그 대답을 가지고 자기소개를 해볼 겁니다.

1. 이 모임에 왜 참가하게 되었는지. 무엇을 얻고 싶은지.

2. 정말 좋아하는 게 있다면? 전공이든 취미든 뭐든 상관 없습니다.

3.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여러 권이면 더 좋습니다.

4.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진행 방식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아서 진행 방식에 대 조금 정해봤습니다. 이틀 간 이것저것 많이 생각해봤는데, 다음에 얘기하는 것들은 웬만하면 했으면 하지만 충분히 바꿀 여지가 있습니다.


1. 한 달에 두 권.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을 읽을 겁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조금 적은 것 같고, 한 주에 한 권은 부담이 되죠.


2. 책은 구입해서 지저분하게 읽기.

저희 모임은 회비가 없습니다. 하지만, 책을 구입해서 읽어야 합니다. 빌려서 책을 읽는 것과 책을 사서 읽는 건 많이 다릅니다. 산 책이 훨씬 애착이 가죠. 책에 형광펜으로 칠하고, 메모하고, 포스트잇 붙이고, 마음에 드는 페이지 접고, 캡처도 하면서 지저분하게 읽읍시다. 자신이 책에 남긴 흔적들을 모임에서 나누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해요.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어요.

"오늘 예전에 읽었던 책을 들추어 보는 것은 그것들이 사라져 버린 날에 대해 우리가 간직하는 유일한 기록이기 때문이며,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거처와 연못의 그림자가 그 책장 위에 비치는 것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재독은 과거의 나를 만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이자 곧 내 이야기이다. 내 20대가 쓰인 자서전이다. 지금 자신의 책장을 돌아보면서 과거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펼쳐 보라. 멋진 자아의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과거에 읽었던 책을 읽으면 과거의 내가 보입니다. 당시에 남긴 흔적들을 보면 더 생생하게 보이겠죠. 책을 지저분하게 읽으면 더 집중하고 읽으면  책이 소중한 물건처럼 느껴집니다. 나중에 들춰볼 수 있는 추억이 되기도 하죠.


그러려면 일단, 책을 사야겠죠.

저희 모임에서 읽는 책은 사서 읽도록 합시다. 아마 한 달에 3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얻을 거라 확신합니다.


3. 책별로 4명씩 묶어서 여러 그룹으로 진행.

시 읽는 모임을 하고 있는데, 7명이었어요. 5시에 시작했는데, 다들 할 말이 많았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발제문의 내용을 다 논의하지 못한 채 끝났어요. 끝난 시각은 9시였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각자 얘기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4명씩 묶어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4명도 시간이 부족할 수 있어요. 지금은 8명이라 두 그룹으로 나뉘겠는데, 운영해보고 괜찮으면 4명 단위로 인원을 충원할 계획입니다. 현재 대기인원이 4명이에요.


여러 그룹으로 진행하는 것의 장점은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책을 선정할 지에 대해선 같이 논의해볼 건데, 각자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별로 안 끌리는 책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함께 논의해서 여러 권을 정한 후,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의 그룹에 들어간다면 그런 상황을 조금 방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더 다양한 선택지를 위해서 모임이 원활하게 진행되면 빠르게 4명을 충원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3권의 선택지가 생기는 거죠. 자신이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합니다.


물론, 좋아하는 책만 읽는 것보다는 다양한 책을 읽는 게 모임의 목표입니다만, 제 경험상 안 끌리는 책은 읽고 싶은 마음이 안 들고 독서에 소홀해지게 되더라고요. 그것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읽으면서 모임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분야를 접하는 건, 이후에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계속해서 모임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건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선 함께 나눠봤으면 좋겠어요.


요약하면,

1. 책을 정한다. (8명 기준 2권)

2. 책별로 4명씩 묶는다.(몰림 문제에 대해선 함께 논의)

3. 그룹별로 모임을 진행한다.


필수는 아니지만 고려해보면 좋을 것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정해놓은 것이고, 다음은 제가 생각해본 것들입니다.


4. 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혼자 발제하면 로드가 심하다.

발제없이 그냥 진행할까 했는데, 그러면 논의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이라이트만 나눠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발제를 했으면 하는데 최대한 부담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생각해본 건, 각 참여자가 가장 논의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 질문을 1~2개씩 가져오는 겁니다. 질문을 만들려고 하면 더 집중해서 읽게 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4명의 질문을 모으면 4~8개가 되는데 그 정도만 되어도 논의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5. 책을 어떻게 선정할까요.

함께 서점에 가서(강남/광화문 교보 or 최인아책방 추천) 그 자리에서 끌리는 책을 들고 와서 투표를 하고 Top 2를 뽑아서 진행할까 했는데,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 읽기엔 좋지만 함께 읽기엔 부적절한 책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객관적인 정보 전달 중심의 책이라면 "와, 이 책 좋더라. 신기하더라." "응, 맞아." "더 할 얘기 없네.. 맥주나 마시러 갈까?"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이야기를 나눌 거리가 많은 책을 골라야 할 것 같습니다.


책 선정 방식에 대해선 다같이 논의해봅시다. 의견이 있다면 바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6. 모임에서 얘기한 것들을 정리해서 컨텐츠화하고 추후에 모아서 책으로 제작.

모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이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면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될 것 같아요. 뭐, 이건 제 개인적인 욕심입니다.


하고 싶은 말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어느 정도 제가 괜찮다고 생각한 방식인데,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다 엎어도 됩니다. 그리고 각 그룹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모임을 진행하고 서로 피드백을 하면서 운영 방식을 계속해서 개선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4명 단위로 계속 충원해서 더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는 독서 모임이 되는 겁니다. 각 그룹 사람들만 만나기보다, 정기적으로 친목 모임을 가져서 다른 모임은 어떻게 논의가 진행되는지 얘기하면서 다른 분야의 서적에 관심을 가져보고,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이만 줄일게요. 모임에서 많이 이야기해봅시다.


환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글에서 개발한 5일 완성 기획 프로세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