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4 <개인주의자 선언> 독서 토론
지난 글(가벼워서 오래하는 독서모임)에서 짧게 본 독서모임의 취지와 진행 방식 및 구성원에 대해 밝혔다. 앞으로도 구성원의 동의 하에 토론 내용을 공유하려고 한다. 이번 주에 이야기를 나눈 책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저자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로 명명하는데, 이런 개인이 살아가기 힘든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풀어낸 책이다.
*커버사진 출처: yes24
모임에 참석한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K 영문학 전공. 온라인 콘텐츠를 만든다.
D 경영학/컴퓨터공학 복수전공.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고 요즘에는 코딩에 미쳐있다.
J 전자공학 전공. 대학원생. 성우가 되고 싶어 한다.
C 경제학 전공. 통일, 중국 정치 및 경제 등 국제 이슈에 관심이 많다.
많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번 글에서는 목표에 대한 강박과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진짜 '쉼'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D 117쪽. 두 번째 문단에, "인간은 미래에 대해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답한다."
최근 일본 청년들의 행복 지수는 근래 40년 중 최고치라고 한다.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의 저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에 만족한다’고 해석했다. 저자는 일본 청년들이 고도성장기의 버블이 다 꺼진 지금,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별로 없기 때문에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고 이해했다.
K 이거 왜?
D 음… 다들, 과거 혹은 현재에서 어떤 희망을 갖고 사는지 궁금했어. 나는 어릴 때 야망이 되게 강했는데. 내가 오지는 인간이 되어가지고, 다 조져야지! 이런 느낌이 강했어. 점점 그게 없어지더니 지금은 제로가 되어가지고. 되게 무상해졌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했어.
J 난 다른 사람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그 정도의 인간이 되고 싶어. 최소한. 왜냐하면 나부터 소시민으로 태어나기도 했고, 차별받고 억압받는 애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좀 많이 봤거든. 내가 만약 삼성전자에 들어가서 치열하게 연구직을 하면서 글을 쓴다? 생각해봤을 때, 그렇겐 안 될 것 같아. 성우라는 직업 자체가 이야기꾼이잖아. 그런 이야기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야.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것 때문에 공부한 것도 있지.
K C는 어때?
C 나는 진짜, 스무 살 때까지는 좋은 대학 가야지. 이런 목표 의식 하나만으로 공부를 해왔고, 그걸 이뤄왔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건 그게 아니란 말이지. 세속적인 가치를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하고 싶은 것 해도 잘 살 수 있고. 그러면서도 딴 거 다 잘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런 사람들 많이 봐왔고. 아, 나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되겠다. 대학 와서는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이렇게 하자. 는 주의였는데.
사실 그것 자체도 내가 하고 싶은 걸 규정을 하면서 '내가 대학에서 이건 진짜 다 하고 졸업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되면서 어릴 때랑 크게 다른 게 있나? 는 생각을 하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를 찾고, 그것도 목표로 잡고 거기에 해당하는 모든 퀘스트 같은 걸 깨야겠다는 강박 관념이 생기다 보니까. 내가 이걸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아니면 이 끝에서 직업이라는 세속적인 가치를 갖기 위해서 하는 건지. 그게 모호해서 요즘 고민 중이야.
J 답이 없지. 근데 사실 그 답은 본인이 찾아야 하는데.
D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로 판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저걸 이루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데 지금은 불행하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저축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뭐랄까. 너무 목표지향적으로 달리고 있다 해야 하나? 과정보다는. 난 그런 식으로 계속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내가 뭔가를 할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너무 많이 받으면 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만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 방향을 찾았던 것 같아.
D 생각해보면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되게 강한 것 같아.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 보면, 다 그 얘기 하잖아. 목표가 중요하다. 명확한 목표의식과 열정과 도전적인 정신이 중요하다. 그래서 졸라 달려야한다.
K 맞아.
D 이 책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 못해도(목표가 없어도) 상관없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못하면 너 왜 이렇게 못 하냐. 넌 패배자다. 그러면 나 패배자구나. 생각하면서 좀 더 소극적으로 되고, 못하게 되고, 스트레스 받고. 다들 빡세게 사는데, 불행한 느낌이 들잖아. 다들 욕을 하면서 빡세게 살아.
J 지금은 그렇지. 그런데 어느 순간 더 좋아질 거야.
D 응.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아, 확실히. 근데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
J 다음 세대에는 다들 행복 수치가 높게 형성된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D 근데 그렇게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에선 복지 얘기 하면서 "북유럽은 솔직히 우리한테 안 맞다."라는 얘기를 하거든. 나는 되게 공감했어. 북유럽은 아니고, 영국에 가서 그걸 많이 느꼈는데. 여기 왜 이렇게 심심한 동네지? 라는 생각을 했거든. 한국인들은 심심한 걸 오히려 싫어하잖아.
북유럽은 졸라 심심한 동네인데, 한국인에게 그걸 권유한다고 해서 과연 좋아할까? 이게 멀리서 보면 복지가 너무 좋아서 일 안 해도 괜찮은, 적당히만 해도 다 잘 먹고 잘 사는 사회이긴 한데 과연.
J 그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없는 거지.
D 오, 맞아. (그 사람들은)그냥 살면 사는 건데. 우리는 가만히 누워있으면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잖아. 왜 내가 가만히 있지? 뭐 하고 싶다. 이게 약간 옛날부터 계속 쌓여온 것 같아. 그렇다면 북유럽을 따라가는 게 맞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복해지려면 뭘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
K 그러게. 책에선 그런 얘기도 있던데.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D 아, 그거 재미있던데. 그거 보고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 읽고 싶어졌어. 되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
J 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만족감, 편안함이 척도 같아. 이 집단 안에서 살아갔을 때, 무언의 압박도 없이 편안함을 느끼는 게. 아까도 말했지만 경쟁이 지쳐서 쉬고 싶다는 마인드가 생긴 것처럼. 그런 것 없이 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인간관계 안에 있는 게 행복 아닌가.
D 멍하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맞아, 그런 집단을 여러 개 가지면 되게 행복할 것 같아. 만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밥만 먹어도 신경 쓰이지 않는. 그런 편안함.
J 그냥 친구 만나서 이렇게 살고 있어, 저렇게 살고 있어하면 서로 터치 안 하고. 경쟁에 대해서도 신경 쓸 것 없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관계.
D 형은 휴식이 주는 만족감을 행복으로 느끼는 거네. 난 이 모임도 쉬는 느낌인 것 같아. 편해서.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는 노력을 해서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 예를 들면 소개팅 같은 거. 그런 건 스트레스가 되는데, 지금은 스트레스가 아니라서.
C 나도 이 모임 자체가 쉬는 모임이었으면 좋겠다는 지향점을 갖고 있긴 한데. 아직까지 뭔가 내가 살아온 방식이, 이런 걸 하면서도 뭔가 얻어가야겠다. 배워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돼서. 그런 생각 할 때만은 쉰다는 느낌이 안 들어.
D 최근에 읽은 칼럼 중에 그런 얘기가 있었는데. Take a productive break. 요즘 사람들은 생산적인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그거보고 많이 찔렸어. 보통은 쉴 때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린다는 표현을 하잖아. 뒹굴거리면서 이것저것 재미있는 걸 많이 보는데 나는 누워서 유튜브로 강연 보고 책 읽고. 쉬고 있지만 생산적인 걸 해야 한다는 강박이 되게 강한데. 요즘 계속 그런 걸 덜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
이 모임을 만들면서 가볍게 가려고 한 이유도, 갑자기 발제 빡세게 하고, 독후감 쓰고 하면 쉬는 느낌이 안 들 것 같아서. 다 안 읽어도 되고 참석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이런 식으로 하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