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2 - <원더>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눈물을 흘렸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울었다. 내려오는 길에 엘리베이터 거울을 봤는데 볼을 가로질러 죽죽 그어진 눈물자국이 참 우스워서, 피식 웃었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나 울었던 적이 있었던가.
영화를 보면서 흘린 눈물은 주인공의 좌절이 슬퍼서도, 그 역경을 극복한 피날레가 감동적이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주인공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 스스로가 벽을 넘는 과정이 부러워서였다.
영화 <원더> 메인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cOsTkVLXcmY
영화 <원더>의 주인공 어기는 유전적으로 기형적인 얼굴을 타고났다. 27번의 성형수술을 거쳤지만 여전히 괴이하다. 다스 시디어스, 골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그가 놀이터에 나가면 모래집을 쌓던 아이들은 슬금슬금 피한다. 그런 탓에 밖에 나갈 땐 항상 우주선 헬멧을 착용했고, 6학년이 될 때까지 홈스쿨링을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아이들이 최고의 휴일로 크리스마스를 꼽지만, 어기가 가장 좋아하는 휴일은 할로윈이다.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때문에 모두와 어울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갈 수만은 없다. 어기의 부모님은 그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개강 전, 교장 선생님의 호의로 어기는 같은 반이 될 친구 세 명으로부터 학교 안내를 받게 된다. 부잣집에다 얼굴도 반반하게 생긴 줄리안은 어기에게 “넌 얼굴이 왜 그렇게 생겼냐”, “사고라도 당한 거냐”며 상처를 준다.
안 그래도 또래 아이들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던 어기는 더 움츠러들게 된다. 이후 잭이라는 학생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지만, 할로윈 때 분장한 어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과 어기를 욕하면서 둘의 사이는 틀어진다.
어기가 학교에서 잭을 잃고 돌아와서 화가 나 있을 때, 어기의 누나 비아는 엄마와의 데이트를 잃었다. 엄마가 아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듣고 딸을 내버려둔 채 학교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아픈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항상 부모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던 그녀는, 반항 한 번 없이 꿋꿋이 어른스럽게 지내왔지만 그 날 만큼은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집어던진다.
그럼에도 그녀는 동생을 위해 할로윈 분장을 하고 그를 찾아간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동시에, 자신의 고통만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어기는 자신의 기분은 몰라주고 한껏 분장해 온 누나가 야속하기만 하다. 무작정 “나가”라며 화를 내다가 천천히 말해보라는 누나의 말에 “잭이 뒤에서 내 욕하는 걸 들었어!” 절규하며 누나를 등지고 앉는다. 비아는 그의 등에 대고 차분한 목소리로 “너 혼자만 불행한 건 아냐.”라고 말한다.
어기는 “누나가 내 마음을 알아?” “다른 사람들이 누나 얼굴을 보고 피해?” “병이 옮는다고 싫어해?”소리친다. 비아는 잠깐 말이 없다가 “아니.”라고 답한다. 화를 내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네 곁엔 내가 있다는 둥 어설픈 조언이나 위로를 하지도 않는다.
단지 몇 초 기다렸다가 “나 요즘 미란다(단짝 친구)랑 얘기 안 하는 거 알아?” 그간 털어놓지 못했던 자기 얘기를 솔직히 꺼낼 뿐이다. 놀라운 것은 어기의 반응이다. 그는 언제 슬펐냐는 듯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려 “왜?”, "정말?” 물어본다.
"그래서 누나가 나보다 더 힘들다는 거야?" 꼬아 듣지도 않고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대충 흘려듣지도 않는다. 어기 역시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알고, 상대가 상처를 드러냈을 때는 자신이 힘든 상태더라도 그 상처를 거절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다.
자신의 상처가 언젠가 반드시 받아들여질 것을 아는 사람은, 상대의 상처를 진심으로 들여다 봐 줄 준비가 되어있다.
어기는 첫날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집에 돌아와 내내 우울해했다. 집에서도 밖에서나 쓰던 우주선 헬멧을 뒤집어쓰고, 밥도 먹지 않고 부모님의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가족의 질문 공세에 그만 식사자리를 박차고 방으로 뛰어가버린다.
엄마는 어기의 방으로 쫒아 가 잘 타이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 하지만 그는 이미 상처받은 영혼.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해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안 그래도 아픈데, 그걸 눈 앞에 보이게 꺼내는 순간 그 상처가 더 선명해지고, 고통이 한 번 더 반복되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기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며 엄마를 밀어내지만, 결국에는 꺼이꺼이 울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실토해낸다.
“괜찮은 척할래도 그게 안 돼. 계속 이럴까?” 불안에 떠는 어기는 울먹이며 말한다. 나는 겪고 있는 고통, 불안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에 쥐약인 사람이다. 혼자 알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하고 말지만 그걸 꺼내서 타인과 공유하는 순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 속엔 이미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은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상처란 드러내 놓는 순간 그것이 생각보다 거대하지 않고, 극복할 만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기의 엄마는 상처를 끌어내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비아(누나)가 그랬던 것과 같이, 어설픈 조언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나도 몰라.”하고 그의 불안에 전적으로 공감해줄 뿐이다.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괜찮아. 등의 막연한 긍정은 상처 주변을 뱅뱅 겉돌 뿐.
(쉽지 않겠지만)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고 모호한 조언을 던지기 전에, 그가 느끼는 감정에 깊이 공감해주어야겠다. 그것만으로도 상처를 솔직하게 꺼내 보임으로써 스스로 극복할 힘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엄마가 시켜서 놀았지만 함께 있으면서 점점 어기에게 애정을 느낀 잭. 할로윈이 지나고 갑자기 차가워진 어기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후에 친구들과 욕하던 자리에 어기가 있었음을 알게 되고, 어느 날 둘은 마인크래프트에서 만난다. 잭은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게임을 할 수도 있었지만 용기를 내서 말한다. "그런 말 해서 미안해."
잭의 용기는 물론 이어지는 어기의 답변에 진하게 감동했다. "정말 나처럼 생기면 자살할 거야?" 앞에서도 말했듯이 상처를 다시 꺼내는 일은 괴롭다. 특히 직접적인 텍스트를 재현해내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어기는 자신이 상처받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정확히 그 말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상처를 꺼내는 게 두려웠지만, 어중간하고 애매한 사과를 받고 마음속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 정확한 단어를 꼭꼭 눌러 담아 말했다.
우리는 흔히 사과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말한다. 당연히 잘못한 사람이 알아서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책임을 논외로 했을 때, 상처 준 사람과 상처받은 사람 모두를 위해서는 사과를 받는 방법도 중요하다. 잘못한 사람이 아무리 진심이고 정성을 들여 사과한다고 해도, 그게 정확한 상처 부위에 닿지 않고 모호한 말들로 주변을 맴돈다면 어떨까.
우리는 때때로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렇기에 넘겨짚는 사과만으로는 그럴 확률이 높다.(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만약 어기가 잭이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지 않았다면, '미안해'라는 말에 마음이 풀어지긴 하겠지만 잭이 생각하는 '그런 말'이 무엇인지, 정말 자신이 상처받은 말을 뜻하는 게 맞는지 계속 고민해야만 했을 것이다.
정확한 사과는 상처받은 이의 찝찝함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물론, 상처 준 이가 자신이 한 잘못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 <원더>의 등장인물과 스토리 진행은 내내 그랬다. 상처 입고, 극복하고, 또다시 상처 입고, 극복하고.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사람이 극복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언제나 주변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
어기가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