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도. 담배랑 같은 1군 발암물질!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본가는 대구다. 한 번 내려가려면 장장 3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야하다보니, 출발 전에 식사를 해도 중간에 간단한 요기를 할 수밖에 없다.
가장 선호하는 휴게소 메뉴는 핫바였다. 국물류를 좋아하지만 시간에 쫒겨 먹고 싶지 않았고, 고로케나 샌드위치는 밀가루라 피하게 되고, 알감자는 양이 많아서 버스에 타기 전에 몇 알을 남기곤 했기 때문이다.
핫바는 맛있는데다 한 손에 쥐고 빨리 먹을 수 있고, 왠지 모르겠지만 라면이나 쥐포같은 군것질거리보다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도 틈만 나면 핫바를 돌려 먹던 내게, 다큐에서 접한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보건기구)가 가공육을 발암물질로 분류했다는 사실. 더구나 1군 발암물질(담배도 1군 발암물질). 더 충격적인 사실은, 2군 발암물질에 레드 미트(소고기, 돼지고기 등 적색육)가 있다는 것.
*다큐에서는 흡연과 가공육 소비를 동일하게 여겼지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1군 발암물질이란 발암 확률이 높은 순서에 따른 것은 아니고, 그 증거가 확실한 것에 대한 분류라고 한다.
소고기는 약간 덜 익었을 때 먹어도 괜찮지만(오히려 그때 먹는 게 더 맛이 좋다고) 돼지고기는 무조건 완전히 익혀 먹어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왜냐고 물어보면 막상 돌아오는 대답은 "몰라, 그렇대. 나도 어디서 들은 거야." 어디 TV나 신문에서 나온 거겠지 싶어 검증되지 않은 미신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러나, 소고기라고 딱히 날 것으로 먹는 게 더 안전한 것은 아니다.
1993년, 미국 워싱턴 주에 살고 있는 어린이 수백 명이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햄버거를 먹고 O-157에 감염되어 그중 여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에는 O-157에 감염돼 사경을 헤맨 아들을 둔 어머니의 경험담이 수록되어 있다.
제 아들은 작은 햄버거 한 조각을 입에 넣자마자 그거이 곤죽처럼 풀어진 날고기였음을 알았다고 하더군요. 그로부터 정확히 6일 후, 피가 섞인 설사가 시작되면서 아들의 혈소판 수치가 떨어졌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은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신부전 증세가 나타나 투석을 하게 되었고,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폐에도 문제가 생겼답니다. 폐에 물이 차서 인공 호흡기에 의존해 숨을 쉬면서 폐에 구멍을 뚫어 튜브를 받아놓고 물을 빼내야 했어요.
심장에도 문제가 발생했어요. 심장이 괴기스러울 정도로 부풀어오른 거에요. 정상보다 2.5배나요. 몸을 열어보니 액낭은 갈기갈기 찢겼고, 그 안에는 고름이 가득 들어차 있었어요. 의사들은 그것들을 몽땅 들어냈어요.
그 병은 너무나 무섭고 악질적이었어요. 이제 당신도 그 병의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 도살장의 불결함이 바로 그것이에요.
마지막 줄에서 밝혔듯이, O-157이 발견되는 이유는 공장식 축산의 비위생적인 환경이다. 소들은 송아지 때부터 고기가 질겨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자란다.
그곳 근로자들은 시간당 평균 330여 마리를 죽여야 한다. 절개 과정에서 실수를 하면 창자에 구멍이 뚫려 배설물이 쏟아져 나온다. 다음 소를 잘라야 하기 때문에 잘려진 몸통은 곧바로 냉탕에 던져진다. 그 물은 배설물탕이 되고, 고기 덩어리는 잘게 갈려 햄버거 패티로 탈바꿈한다.
햄버거가 만들어지는 과정
*혐오스러운 장면이 포함되어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0zVEntiQC4
육류업계는 O-157을 포함한 다른 병원균이 초래하는 문제점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감염의 주요 원인인 불결한 공장식 목장과 도축장 개선이 아니라, 방사선 조사법이다. 병원균을 죽이기 위해 식품을 핵방사선에 노출시키겠다는 뜻이다.
존 W. 고프먼 박사(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분자생물학 명예교수)는 방사선 조사가 식품 안에서 불가사의하고 예측할 수 없는 화학반응을 일으킨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발생한 화학물질은 암 유발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육류업계가 방사선 조사에 덧붙여 O-157 박테리아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육류를 완전히 익혀 먹을 것'이다. 불결한 관리의 책임을 '제대로 익혀먹지 않은'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광우병은 사람, 양, 소, 밍크, 사슴, 양 등 다양한 동물에게서 발생하는 전염성 해면상 뇌질환(transmissible spongiform encephalopathies) 혹은 TSEs라 불리는 전염병이다.
대부분의 공장식 축산을 택하는 목장에서 소에게 먹이는 사료에는 소의 뼈와 몸통을 갈아만든 분말이 포함되어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채식동물인 소를 동족을 잡아 먹는 육식동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햄버거에 손을 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는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장식 축산의 폐해는 소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돼지들은 자기 몸보다 조금 더 큰 우리에서 살아가는데, 자신이 배설한 소변과 대변을 몸에 묻히고 24시간 내내 고약한 악취를 견뎌내야 한다. 참고로 돼지의 코로 들어가는 냄새의 농축도는 인간의 200배에 달한다.
비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는 닭들 역시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날개 한 편 펴지 못하는 공간에 갇힌 닭들은 난폭해져 다른 녀석들을 부리로 쪼아 죽이기도 한다. 업계는 이러한 동족 살해를 방지하기 위해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부리 자르기가 꼭 필요한 절차라고 말한다. 좁은 닭장에 갇혀 미쳐버린 닭들이 서로를 죽이니 죽이지 못하게 부리를 잘라버린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물론 소비자들에게는 동물의 건강을 위한 절차라고 말하지만.
산란닭들의 부리를 잘라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종을 잡아먹는 본능에 따라 닭들이 서로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동물산업재단
또한 광우병 파동으로 소고기와 뼈를 다시 소에게 먹이는 행위는 금지되었지만, 돼지와 닭의 뼈, 뇌조각, 살덩이, 깃털, 배설물은 여전히 같은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엄청난 사실을 알게된 양,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가공육이 발암물질로 분류되었다면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 날 저녁, 친구는 약속이 있다며 돼지고기 무한리필집으로 갔다.
친구도 위 사실들을 몰랐던 건 아닐 것이다. 내 친구와 마찬가지로(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다만 채식주의자들은 신념을 지키기 힘든 여건에 놓여 있다. 들을 때는 충격적이라도 막상 먹으려고 하면 고기가 아닌 게 없으니까.
특히 한국에서는 채식 메뉴는 커녕 메뉴판에 재료를 표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얼마 없다. 그나마 서울까지나 와야 몇 군데 볼 수 있을 뿐이고, 지방에 내려가면 많아봐야 다섯을 넘지 못한다.(적어도 대구는.) 해외에서 채식을 하던 사람들도 한국에 들어와서는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완전한 채식을 하지 못하는 것에 강박을 갖지 말고, 비덩(덩어리 고기만 먹지 않는)이나 간헐적 채식, 페스코 베지테리언 등 할 수 있는 데까지만이라도 채식을 실천해보자. 다행히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많은 음식들이 나오고 있으니까. 그 중 오늘 소개하고 싶은 음식은 콩고기다.
사실 '고기를 대체한다'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음식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특히 예전에 갔던 채식 식당에서 비건 베이컨이라는 이름으로 얇게 썬 두부구이가 나왔을 때는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콩고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콩'이라는 재료부터 의심이 가기도 했고, 동생(고기 찬양자)은 우연히 학교 채식 뷔페에서 콩고기를 먹어봤는데 엄청 맛이 없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친구도 어렸을 때 사찰 음식 체험(?) 비슷한 것을 할 때 먹었다가 너무 충격적인 맛이라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러다 채식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합정역 2번 출구에 있는 <야미요밀>에서 처음으로 콩고기를 먹게 되었고, 그곳은 내 단골식당이 되었다.
평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사이에 가면 햄버거, 감자튀김과 수제청 에이드를 7,800원에 먹을 수 있다. 위 사진은 친구가 시킨 메뉴인데 햄버거 속에 아보카도가 한가득 들어있다.(난 아보카도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계란, 우유, 버터, GMO, 백설탕, 방부제, 백밀가루, 화학첨가제 무려 8가지를 제외한 엄격(?)한 식당. 요즘 동물성 식품을 제외하고 식사를 하다보니 밀가루 소비량이 증가해서 조금 걱정이었는데, 비건에다 건강한 재료들로 요리를 한다니 들어가기 전부터 호감도가 만점에 가까웠다.
내가 시킨 메뉴는 숯불구이 버거. 사실 별 기대 안했는데 비주얼부터 진짜 고기처럼 생겨서 놀랐다. 버거 안에는 토마토, 양파, 양상추, 이름 모르는 풀 한장(...), 피클, 비건 소스(아마 마요네즈?)와 진짜 숯불 맛이 나는 콩고기가 들어있다.
개인적으로 진짜 고기라고 해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게 재현했다. 식감이 조금 다르긴 했는데 소스를 일반 숯불 구이에 쓰는 양념으로 하니 맛이 거의 똑같았다. 친구는 먹어보더니 씹는 맛이 유부와 비슷하다고 하더라.
맛집 리뷰는 블로그에 나보다 훨씬 자세하고 맛깔나게 쓰시는 분들이 많을테니 더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설명보다는 내가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를 보여드리는 게 소개에는 더 효율적일 것 같아서...) 사진에서 보듯이 접시를 싹싹 비웠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다섯 번을 방문했다. 지금도 대구에 내려와있어서 어쩔 수 없이 못 가는데... 올라가자 마자 갈 것 같다. 두 번째 사진 빼고는 친구와 함께 갔을 때 먹은(그러고 보니 다섯 번 다 혼자 갔다. 따로 약속이 있어서 간 것도 아니고, 너무 맛있어서 혼자서라도 가고 싶어서...) 숯불구이 버거를 먹었다. 18일에는 다른 버거도 이만큼 맛있을까? 싶어서 시켰는데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숯불구이 버거가 최고길래 저녁에 다시 와서 먹었다. 하루 두 끼를 같은 식당에서ㅋㅋㅋㅋ
올때마다 사진 찍어서 글 쓸 때 첨부해야지,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항상 먹는 메뉴만 먹다보니 그 날 여러장 찍은 건지, 다른 날 찍은 건지 알 수 없는 사진이 되어버려서 마지막 두 장은 손을 내밀어서 찍어봤다. 물론 갈 때마다 마지막 사진처럼 클린이팅! 콩고기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첫 식당으로 강추한다.
채식을 시작하고부터 매주 느끼는 것이지만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이 더 생겼다는 점. 내 입에 직접 들어가는 음식을 좀 더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느낌에 만족스럽다.
재미있다. 내가 몰랐던 분야를 새롭게 알아간다는 게 흥미롭고 일상에 에너지를 준다. 가격표만 보고 물건을 집던 내가 성분표를 확인해본다. 신기한 일이다.
안좋다는 음식은 다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지만 건강이 나아졌냐 하면 그건 또 모르겠다. 오히려 요즘 몸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닌데, 채식 때문일까 생각도 들고. 조금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린을 더하다' 도시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그린 라이프를 제안하는 매거진, 에드지와 함께하는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