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고갈되지 않기 위한 거리 두기 연습
타인을 이해하고자 애쓰는 태도는 때로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든다. 특히 누군가의 감정에 빠르게 공감하고 몰입하는 사람이 그렇다.
사실, 나는 원래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사람과 거리를 두고 사는 편이었고, 어떤 말도 '그렇구나' 한마디로 넘기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상담 업무를 시작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에 반응하고, 공감하려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하게 됐다.
'그랬구나'라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말의 습관도 바뀌고 표정도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잘 들어주는 사람', '상담을 받기 편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나 일이 쌓이고 관계가 반복되면서, 나도 모르게 습관적인 공감이 나를 지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반응했지만, 돌아서면 감정이 쉽게 소진됐다. 체력 소모로 이어질 정도로.
그 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경험이 있다. 수업 전 상담 중, 긴장하는 수강생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하고 싶어 부드럽게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색하며 내게 물었다.
“왜 웃으세요?”
순간 당황스러웠다.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려던 나의 미소가 오히려 경계심을 자극한 것이다.
"긴장하시는 것 같아서요"라고 조심스럽게 대답했지만, 그 사람은 “긴장 안 했어요”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그날 이후, 공감은 기술이지, 감정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쉽게도 말한듯 하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지."
하지만 그건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면 일단 자신의 감정을 잠시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그건 훈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공감이란 건 나를 잠시 잊는 일이고, 자주 그러다 보면 진짜 나를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경계였다.
공감은 하되, 상대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이 없으면 타인의 문제에 과하게 반응하고, 필요 이상으로 내 마음을 쏟게 되며, 그 끝엔 감정이 탈진처럼 찾아오는 게 느껴진다.
실제로 나는, 선한 의도로 한 친절한 공감이 되레 무례함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종종 했다. 그럴 때마다 자책했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곱씹으며 다시는 친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알게 됐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공감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공감도 맞춤형이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과의 거리두기’라는 것.
공감은 결국 내가 나를 잘 알고 있어야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 선을 그을 것인가.
그 기준이 없으면, 결국 좋은 사람이 되려다 지친 사람이 된다고 본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공감의 기술이자 경계의 기술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