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너 안 맞는 거 같아서 자르려고 했어"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초반에 들었던 말이다. 지금 기억으론 한두세 번은 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처음 그 말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거 보니.
일하는 곳 자체가 소수 인원으로 일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대표와는 쉽게 친해졌다. 그만큼 편하게 일하게 해 줬던 것도 있지만 문득 밥을 먹다 저 한 마디를 하니 처음엔 당황했지만 일부분은 수긍했다.
밥 숟가락 들기 전부터 듣는 소리가 자르려고 했다는 소리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밥은 아주 야무지게 먹었다.
밥은 죄가 없으니까.
노련하게 잘하지는 못했다. 익숙한 업무를 하는 거지만 회사마다 다른 경영 방식과 다루는 시스템과 다루는 분야가 다른 만큼 처음은 당연히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수습 기간이 왜 있었겠나.
하지만 대표가 가볍게 던진 그 한 마디가 어이없음과 배신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대응조차 못한 나에게 화가 났다.
' 처음부터 딱딱하게 할 일만 시키고 편하게 일하라는 투로 대하지 말던가'
그땐 한없이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득할 때라 속으로 난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사실이기도 했다.
어떤 분야를 다루는지 어떤 걸 조심해야 는 지 어떤 식으로 일을 해야는지 체계가 없이 무작정 단순한 한두 개만 알려주고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알려주는 식이었고 모르면 무조건 물어보라는 식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내가 다 알아내고 물어보고 배워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 무식한 방법과 체계가 없는 회사에서 어떻게든 배우고 방식을 찾아내고 하다 보니 어느새 능숙하게 일 처리를 하게 되었고 대표는 나중에서야 그 말을 했던 걸 후회하면서 나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있으니까.
모든 일을 맡기면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어느새 당연하게 '나'라는 존재를 여겼고 당연히 내가 일 시작부터 뒤처리까지 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표의 실수를 내가 대부분 뒤처리를 했다.
솔직히 말해 경영자의 마인드가 아니라는 걸 일하는 태도와 말투를 보고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라도 생각을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 안 하는 말투에서 '나는 배려했다'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반영된 채 회사가 운영되고 있었다.
당연한 존재, 능숙하게 일 처리를 하게 된 건 나에게 아주 좋은 이득이다. 반대로 바쁠 때 내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구멍이 생기고 나를 찾는 일이 많아져 다른 직원들 마저 나에게만 신뢰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거다.
물론 내가 그만두더라도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금 나름 매출과 별개로 편하게 돌아가고 있는 회사가 다시 처음부터 다른 누군가로 인해 회사 시스템이 돌아가야 한다면 대표는 견딜 수 있을까?
대우가 더 좋아지는 것도 없고, 환경이 더 나아지는 것도 없었다. 그저 당연한 존재.
그럼에도 내가 일하고 있는 건 경험과 경력을 쌓는 것에는 무시할 수 없다. 당연한 존재로서 편하게 나의 방식대로 회사 시스템에 터치를 할 수 있어서가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대표는 어느새 내가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거고, 난 참견할 수 있는 권한에 익숙해진 거다.
무식하게도 일을 배우다 보니 요령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익숙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으니 나 또한 큰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 듯하다.
직장인은 끊임없이 나만의 역량을 쌓기 위해 무언가를 배우고 알아가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걸 누군가는 긴장해야 한다. 모든 직장인을 당연히 여기는 태도, 안심하는 순간 그 '누군가'는 다시 처음부터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