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피아노만 치다 입을 열었을 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회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접했고, 일곱 살 때 처음으로 피아노에 손을 얹었다.
처음 피아노학원을 간 게 아직도 생각나는 걸 보니 꽤 인상 깊었었나 보다.
낯선 환경과 친하던 이모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반말에서 존댓말로 대화를 한다는 건 사실 싫었던 감정이 더 앞섰었다.
'왜 선생님이라고 해야 하지? 왜 존댓말로 해야 하지?' 어린 나에게는 익숙한 방식에서 새로운 방식이 주어졌을 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예민했던 것 같다.
그때의 시작으로 당연히 음악으로 무언가 해내고 그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이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는 선생님의 피드백만으로도 눈물부터 났으니까.
학교를 다니면서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피아노를 입시로 다시 시작하게 됐을 때로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피아노 자체에 애정이 있었고 음표를 볼 줄 알았으니 크게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입시로는 낯선 재즈피아노를 접하고는 처음에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단순하게 보고 치는 게 아닌 그 음표와 코드, 음의 흐름과 그 악보의 느낌을 살려야 했던 거다. 1년 반을 입시로 피아노를 배우다 어느 한순간 음악으로 피아노를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겁을 먹은 채 엄마에게 말하면서 울었다.
이미 합격을 하나 해놓고 말이다.
소리 없이 울고 있을 때 아빠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난 우는 거에 혼나면 어쩌나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아빠의 말이 날 더 울게 만들었다.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돼. 다른 거 하고 싶은 게 있음 그걸로 하면 되지. 말하기 무섭다고 눈치 안 봐도 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미안하지만 그 이후로 정말 눈치 안 보고 하루하루 놀면서 즐기다 못해 눈치 없이 막 지냈던 것 같다.
워낙 눈물이 많아 툭하면 울었고, 입을 다문 채 손가락으로 감각을 느끼며 피아노를 치던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젠 입을 열어 말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걸 견뎌내야 하는 상황도 많았다.
선택했던 길에 나의 아주 큰 욕심이 반영되었으니 도망치다가 지쳐 이젠 숨을 곳도 없었다. 아니, 이젠 숨고 싶지가 않았던 거다.
하지만 그때의 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름 재즈 피아노를 했다는 걸 몇 년이 지나더라도 자부심과 작은 자랑 중에 하나로 생각하니까.
평생을 음악을 직업으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신기하게도 그 전혀 다른 길이 나를 새로운 사회의 바라보는 시선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기에 다른 누군가에게도 나의 선택을 통해 공감을 만들고 직업의 선택 폭을 넓혀줄 거라고 여겨본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야 할지, 전공과 상관없이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지 모두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 좋고 나쁘고를 떠나 선택에 있어 내가 뭘 더 경험하여 성장시킬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