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자 하는 방향을 정해놔도 실천 또한 내 몫이다.
그 몫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또 쉬엄쉬엄 했다.
사람이 이렇게도 나태해질 수 있구나,를 느껴가고 있는
하루들이 쌓이고 또 쌓이고 있다.
‘일기에 썼던 감정들이 현재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여러 생각들을 글로 풀어가 보려 했다.
그러다 폰에 적어뒀던 감정들을 보게 되었다.
무서울 게 없냐고 질문을 던진다.
짧은 글로 저에게 남긴 메모가 있었다.
2년하고도 반년 전, 뭐가 그렇게 무섭고 두려웠던 건지.
보이는 생각과 진짜 속마음의 그 괴리감이 날 이상하게 만들 정도였다.
약해지고 싶지 않아 강한척하지만 속에서는 불안과 무서움에 지배당해
덜덜 떨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그땐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니 일에 대한 불안함과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불안함이었을 거라 보다.
웃기게도 그런 생각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거다.
달라진 거라면,
무서우면서도 올해 남은 시간들은 제가 하고자 하는 길로 나아가 보자는
목적을 가지고 힘겨워도 나아가 보려는 차이가 있는 정도랄까.
그 차이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일 거라 본다.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음에도 불안함이 덜 하다는 건 더 깊은 괴로움에
날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다.
그때보다 지금의 내가 자신을 더 사랑할 줄 알게 된 듯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날 설레게 하였는데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뜻깊은 감정이 잘 느껴지진 않았다.
아마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었을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감정으로 느껴야 하는지 몰랐었을 수도 있다.
메모에도
무서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해. 사랑도 세상도 생각했던 믿음과
달리 나를 두렵게만 해.
라는 문장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정말 나를 아무도 찾지 않았으면 했던 걸까? 누군가 나를 힘듦을 알아주길
바라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한 번 더 믿어보고 매달려보고 싶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과거의 나를 알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때는 몰랐던 나라는 사람을 다른 나이가 되어 다른 감정을 알게 되면서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은 듯 하다.
무서울 게 없었던 아이와 달리 세상을 살아가며 무섭고 두려운 순간들이
순식간에 불어닥치는 시간을 견딜 때가 더 많아진다.
그럴 때마다 과거의 나를 어떻게 두려움을 이겨냈는지 그때 두려웠던 감정들이
지금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아가는 것 또한 내 몫이라 생각한다.
또 한 번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오늘도 살아가 보자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