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포인트의 시점
최근 글을 안 썼다.
큰 이유는 없었고 막연히 쓰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어 멈춰버렸다.
핑계처럼 이불 속에 갇혀 멍하니 누워 sns나 하면서 잡생각이나 하다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하루하루를 길게 보냈었다.
사람이 유난히 간절했던 일주일이었는 듯 하다.
연달아 약속도 힘들어 하는 사람이 연달아 사람을 만나니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갈 정도로 말이다.
양심에 찔리긴 했다. 글을 안 써서…
주말,
친목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과 따로 밥을 먹게 되었다.
간절했던 거다. 혼자서 정리가 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말이다.
조언을 바라진 않았다.
어차피 선택하는 건 나니까.
만났던 지인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이 비슷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며 쳐져 있던 저의 몸이 얘기를 통해
점점 활기를 느끼게 될 정도로 말이다.
면접 강사에서 글을 쓰는 작가로 직업을 바꾸자 하는 데에 사실 걱정도 되고
고민이 많았다. 불안한 건 당연했으니.
막연하지 않을까? 내가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하루하루가 점점 나태해지고 있었다.
그 지인과 얘기를 하면서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하고 앞으로 어떤 목표를 위해
다시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이 그러더라, 갑자기 내 눈빛이 살아났다고 말이다.
글을 쓰면서 ‘너무나도 한 쪽 감정에 치우져있진 않는가?’라는
꼬리를 무는 질문을 자주 했었다.
평소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다면 일기를 쓰는 편이다.
일기를 쓴 후 다시 쓴 일기를 보지는 않았다. 일기에 한 쪽 감정으로 치우진 내용이 많으니…
괴로웠던 감정이 글로 표현되어 일기로 봉인하는 느낌이랄까?
일기를 퇴고하는 사람도 있고 일기를 다시 보며 감정을 다시 다스리는
사람도 있다기에 신기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썼던 일기를 한 번 봐보자.라고 생각했고
앞으로 그럴거다라는 의견을 말하자,
지인은 물었다.
왜 갑자기 일기를 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 일기를 다시 본다면 어떤 걸 발견하고 싶어?
그 질문이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일기에서 어떤 걸 발견하고 싶냐고? 그저 그땐 그랬구나,를 느끼지 않을까?
막연했다.
지인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때 느꼈던 감정에서 뭘 배웠는지 어떤 게 달라졌는지 한 번 써봐,
그게 글 쓰는데 새로운 걸 만들어주지 않을까?
찾고자 했던 답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이게 맞나? 이렇게 해도 될까? 하던 생각들이 한 번에
정리가 되던 순간!
아, 나는 방황하고 있었구나. 막연하게 감정을 토해내는 글만 썼구나.라고
생각되었다.
여전히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다만,
하루를 막연한 감정이 아닌 하루에서 포인트가 되었던 순간,
그 포인트가 글로 풀어졌을 때의 감정을 써보려고 한다.
쓰면 쓸수록 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태해도 그 나태한 순간에 포인트를 찾아 글을 써보려고 한다.
어떠한 글에서도 터닝포인트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