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려러니 하는 태도
그동안 연락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채팅방을 나갔고, 누군가는 끝내 한 마디 인사도 남기지 않았다.
예민했던 나로서는 그 섭섭함이 꿈에까지 나올 만큼 힘들었다.
잠을 설친 날이 여러 번이었다.‘그때 그냥 다르게 말할 걸 그랬나?’후회와 자책이 새벽잠을 흔들었다.
마침 다른 강사와 면접 질문을 정리하다가 자연스레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건 흔한 일이야. 연락 안 오는 사람, 진짜 많아. 그러려니 해야 돼.”
익숙하다는 듯한 그 말이 내겐 오래 남았다.
아, 나는 지금까지 정말 좋은 사람들만 만나온 거였구나.
나도 모르게 속으로 되뇌었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받고 싶었나보다.’ 그 말 한마디에 스스로를 조금은 돌아보게 됐다.
지금까지 몇 년을 해오면서 단 한 번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 없었다.
연락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야 처음 배운 셈이다.
그렇다고 생각을 깊이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내가 하나하나 따지고 들지 않는 이상 해결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정성스레 연락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더 깊게 느껴졌다.
아이처럼 ‘섭섭하다’는 감정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될 줄은 몰랐다.
다른 수강생들이 이 마음을 들키지 않았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감정을 다 드러내는 강사가 되고 싶진 않았다.
왜냐면, 감정에 쉽게 흔들리는 강사의 모습은 수강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한 사람을 오래 가르치는 분들이 더더욱 존경스럽다.
몇 년밖에 되지 않은 내가 쉽게 불만을 토로하는 게 민망할 정도였다.
무너지더라도, 결국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다.
겨우겨우 올라온 길에서 한 순간의 괴로움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 서고 싶진 않다.
설령 주저앉더라도, 그건 단지 다리에 힘이 풀려 잠시 쉬는 시간이라 생각하려 한다.
그리고 다시, 내가 아는 걸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아가고 싶다.
모르는 건 배우고, 이렇게 기록하며 더 성장하는 강사가 되고 싶다.
작은 일엔 그러려니 하는 태도 또한 결국은 배움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 더 보완된 모습으로,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덕분에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