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원하는 걸 위해선 감당해야 하는 무게

by 나라 연

어느 날, 다른 사람을 도와 마케팅 블로그 컨설팅을 해주고 있었다.
블로그 제작과 검토를 포함해 서비스처럼 작업을 함께 진행하는 일이었다.



컨설팅 측은 답이 늦어지면 소통이 부족하다며 예민하게 반응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막상 본인이 바쁘거나 개인 일정이 생기자, 며칠씩 연락을 주지 않아 검토와 게시 작업이 늦어진 적이 있었다.



밤낮 상관없이 자신의 타이밍에 맞춰 다짜고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앞뒤 맥락도 없이 “왜 검토도 안 하고 올렸냐”는 식의 말투에 나는 잠시 당황했고, 이어진 건 사과 한마디 없는 마무리였다.



다행히도 내 실수가 아닌 잘못 글을 읽어서 생긴 작은 오해였지만 그날 밤에 잠이 다 깰 정도랄까.



돈을 냈으니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의 태도나 마찬가지였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과 통화를 하던 어느 날 나는 그 목소리에서 묘한 하소연을 느꼈다.

본인도 어떤 답답함 속에 갇혀 있었던 건 아닐까.



상대의 말투와 호흡 사이에서, 내가 그동안 품어왔던 억울함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이건 그 사람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람을 조금 떨어져서 보니 모든 감정이 정답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나 또한 티를 안 낼 뿐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불안과 피로, 감정의 무게를 푸는 속도도 다르다.

나는 그걸 너무 가까이에서, 너무 선명하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왜?’라는 질문을 지나치게 붙잡았고, 결국 피곤해진 쪽은 나였다. 글을 쓰는 게 좋고 강의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됐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위해 꺼내놓은 말이었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미워하지 않기로 한 마음.


그게 내 마음을 덜어주는 방법이자, 이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숨구멍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의 인성을 바꾼 건 아닐지 모른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다음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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