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보호자가 된 게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은 이십 대 초반. 간이침대에서 '보호자' 목걸이를 엄마가 아닌 내가 걸고 있을 때의 기분은 잊을 수가 없어. 걱정에 잠이 안 온다던 엄마 손을 붙잡고 불이 꺼진 새벽 병원을 걸을 때, 사실 나도 겁이 났어. 마취에서 깨어나서 아픔에 허덕이는 엄마의 얼굴은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이라, 어쩔 줄을 몰랐던 것 같아. 그때 기억이 내겐 오랫동안 각인이 되어서, 고작 건강검진 때문에 마취했을 때도 걱정이 돼서 깨어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 같아.
코로나 때문에 방 안에 갇힌 엄마의 삼시세끼와 간식을 챙길 때, 아이도 없는 내가 엄마가 된 기분을 느꼈어. 자식인 내가 다른 점이라 한다면 엄마를 챙기면서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다는 거겠지. 복숭아의 볼기를 잘라 어여쁜 그릇에 담고, 나는 뼈를 갉아먹고 있을 때. 조금 뭉클했어. 내가 챙겨준 밥들을 하나하나 사진 찍어서 간직하는 거. 딸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호강한다, 말을 듣는 거. 다 우쭐할 수가 없었어.
그래도 기분이 좋더라. 단호박 수프가 먹고 싶대서 두 시간 동안 끓인 수프를 입맛이 없는 와중에도 맛있다며 잘 먹길래. 생닭 손질도 처음 해봤어. 어려워만 보였던 엄마의 영역이었는데, 그냥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게 되더라. 중학생 때 했던 해부 실험을 하는 것 같아서 조금 웃겼지만. 내가 삼계탕을 하다니! 엄마가 해줬던 맛 하고 똑같아서 나도 놀랐지 뭐야.
어려워만 보였는데 다 하게 되더라. 할 수 있더라. 그러니까 걱정 마. 딸, 이제 다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