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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 Oct 23. 2022

난 기분이 울적할 땐 닭봉을 뜯어.

[프롤로그]

 2020년에 2020일을 맞이했다. 애인은 군대에서, 나는 2평 방 안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지 어언 세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애인이 보고 싶단 생각을 간간히 하면서 글을 쓰다가, 저녁 9시면 핸드폰을 손에 쥐고 기다렸다. 배가 고파도 화장실이 급해도 참았다. 그러다 부우웅 진동 소리가 울리면 재까닥 귀에 핸드폰을 갖다 댔다. 요즘 군인은 카톡도 할 수 있다지만 목소리가 귀한 건 마찬가지였다.

 유난히도 그의 부재로 울적했던 건 2020년인 탓이었다. 유별난 전염병으로 반복적이고 갑갑하게 지냈던 2020년. 이러다 서로가 어색해지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길어진 서로의 공백은 당연했던 연애의 일상을 추억처럼 바라보게 했다. 앨범 속 몇 만장의 사진이 꼭 남의 것을 보는 것 같았달까.

 짧디 짧은 통화를 마치고 에어 후라이어에 냉동 닭봉을 와르르 쏟아 넣었다. 째깍째깍 시한폭탄 같은 소리를 내는 에어 후라이어 옆에 앉아 핸드폰 속 갤러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연도별로 정리된 사진은 내려도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몇 만’이라는 숫자가 가늠이 되질 않아서 저장공간을 보니 정확히 123GB였다. 동영상을 제외한 사진만 총용량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진 한 구석엔 애인, ‘해’가 있었다.

 타이머가 한번 째깍 일 때마다 상념과 불안이 하나씩 피어올랐다.


남들은 헤어지면 연인의 흔적을 다 지운다던데, 만일 우리가 그래야 한다면 핸드폰에 사진 1000장은 남길 수 있을까?

어쩌다가 사귀게 됐지?

애당초, 첫 만남이 어땠더라.


 띵!

 과거로 과거로 떠나다가 경쾌한 알람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뜨끈한 바스켓을 꺼내자 지글대는 닭봉이 맥주를 불렀다. 그 부름엔 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냉장고에서 시원한 레몬 맥주 한 캔을 꺼내 들고 서둘러 식탁에 앉았다.

 아뜨뜨,

 바삭하고 눅진하게 눌어붙은 껍질과 뜨거운 육즙이 성질 급한 입천장을 때렸다. 부들거리는 뽀얀 살이 잇자국을 만들며 따끈한 김을 모락모락 내뿜고 있었다. 분명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는데....

 혀와 어금니에 닿아있는 살코기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묘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난 애꿎은 닭봉을 노려보다가 타바스코 병을 거꾸로 들어 접시가 축축해질 때까지 뻘건 소스를 잔뜩 부었다. 시큼하고 알싸한 맛이 이제야 혀를 자극했다.

 해는 내 옆을 떠나면서 입맛마저 앗아가 버렸다. 걔가 뭔데, 있으면 맛있고 없으면 맛없는데. 나쁜 놈. 사실 안 나쁜 놈. 아니, 그래도 나쁜 놈.

 혼자 울적해있는 날이면 해는 내게 매운 불날개를 시켜줬다. 시뻘건 소스로 범벅된 불날개를 뜯다 보면 입술은 저리고 정수리까지 찌릿해서 우울해 있을 틈이 없었다. 얼른 몽글몽글한 계란찜과 달큰한 쿨피스를 번갈아가며 입에 넣어줘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데운 무(無) 맛의 냉동 닭봉이나 우적이고 있으려니 괜스레 처량하게 느껴졌다.

 2020일. 연애가 아닌 어떤 일을 갖다 붙이더라도 이견이 없을 긴 시간. 100일엔 벌써 100일인가, 1주년엔 벌써 1년인가 했었는데, 까마득해지는 숫자였다. 2020년의 내게 약 6년은 인생이란 피자를 다섯 조각낸 것 중 하나였다.

 겁이 났다. 한 사람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게 변했다. 좋아하는 음식, 취미, 친구, 성격, 직업까지.

변한 모습이 스스로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난 좋아하는 사람이 곁은 비웠다고 맥주와 닭봉이 맛없어지는 게 싫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며 맛을 음미하기보다 애인부터 생각하게 되는 게 조금은 허탈했다.

 나는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연애를 시작했다. 오늘부터 1일이 8년의 세월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사귄다는 소꿉놀이 같은 둘만의 약속이 인생 제3의 길로 가는 출발선이었다니. 매일 밤 자기 전 각종 웹툰과 넷플릭스를 정주행 하면서 주인공이 연애를 통해 신분 상승하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악인이 되고, 갱생하는 모습을 봐오면서 정작 내게 생기는 변화엔 무뎠다. 다들 간질간질한 시작과 갈라서게 되는 극한의 슬픔만 말해서 ‘같이’의 가치와 책임이 이리도 무섭도록 묵직한지 몰랐다. 끝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거나 ‘홀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라는 결과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확신하건대, 연애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나라는 사람과 인생은 전혀 달랐을 거다. 마냥 싫은 건 아니었지만 아쉬웠고, 퍽 마음에 들다가도 후회됐다. 이 복잡스러운 싱숭생숭함은 에어 후라이어에 닭봉을 데우는 20분 동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한 번 제대로 음미해보기로 했다. 내가 만들어낸 사랑이 어떤 풍미를 갖고 있는지, 어떤 맛을 내는지. 언제부턴가 맛있는 걸 먹어도 맛없는 걸 먹어도 애인부터 떠오르는 건 괘씸하지만 내게 애인은 떼어낼 수 없는 존재다. 때론 번거로워도 식사를 미워할 수 없는 것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애인을 여전히 사랑하니까.

 살아온 시간의 0.25 분량만큼 한 사람과 연애하면서 피와 살이 되어버린 가볍고 묵직한 침투들을 써내려 갔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다른 사람의 연애 썰이라고 하던가. 부디 내 이야기가 연애 속 맛과 식감을 더듬어가는 맛있는 로맨스 소설처럼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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