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75]
새벽 두 시에 달달한 포도가 먹고 싶어서 부엌 불을 켰다. 절대 달달할 것이 틀림없는 오동통한 포도는 그 이름도 샤인! 머스캣! 딴딴한 알갱이들이 서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듯 빈틈없이 울룩불룩 덩치를 키운 모습이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다. 가지 사이사이로 베이킹소다를 뿌려 뽀득하게 씻어내다 보면 숱이 많은 브로콜리를 씻을 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포도를 세척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알알이 떼어내서 헹구는 쪽이다. 정성스레 한 알 한 알 손으로 문대며 뽀득함을 느껴야 깨끗해진 걸 실감할 수 있달까.
문제는 마지막 헹굼물을 버릴 때다. 노란색 플라스틱 바구니 전면에 손바닥을 한 껏 펼치고 물을 낙하시킨다.
내가 잡고 있어! 걱정 마! 날 믿어!
망고 포도에게 건넨 결연한 다짐이 무색하게 한 두 알이 데구룩 하수구를 향해 굴러 떨어진다. 그러면 난 떨어진 포도알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지기 전에 낚아채려고 허둥대며 손을 뻗는다.
내 손이 왕따시만해서, 혹은 고무줄처럼 늘어나서 모두를 안전하게 잡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항상 오만하도록 용감했고, 때문에 놓치고 허둥댔다. 그럴 때마다 난 결정해야만 했다. 저 다디단 포도를 뒤늦게라도 볼품없이 허둥대며 손에 쥐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저건 신 포도가 분명할 거라며 포기할 것인지.
내게 탐스럽게 빛나는 포도는 돈과 명예였다. 나르시시즘을 낙으로 사는 사람은 사랑만으로 먹고살 수 없다. 난 매우 속물적인 사람이어서 돈과 명예가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걸 애인이 군에서 제대하기 직전에 깨달았다.
나는 해가 제대할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했다. 얼른 만나고 싶었지만 모순되게도 ‘드디어!’ 보다 ‘벌써?’란 생각이 앞섰다. 그가 입대할 당시, 2년 뒤의 내 모습을 자주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2년 뒤의 나는 안정적이고 돈도 여유롭고 커리어와 실력도 쌓아서 믿음직스러운 사람일 줄 알았다. 먼저 사회에 나가서 해가 민간인이 되었을 때 이끌어주려고 했다. 개뿔, 어림도 없었다.
해가 입대하고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코로나의 풍파를 전면으로 맞았다. 그로 인해 난 몸도 마음도 변했다. 만사에 무심해지고 입꼬리가 무거워졌다. 옷차림도 한껏 꾸민 모습이 어색하게만 느껴져서 트레이닝복과 캡 모자만 걸치고 다녔다. 유행하는 질병 속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무력감과 싸워야 했다. 해가 없는 동안 난 자기 계발은커녕 투병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그러다 2년이 삭제되고, 나보다 앞서 책 출간이 확정된 해가 자긴 애인이라고 봐주지 않는다며 키득거렸다. 농담인 걸 알았지만 찌질하게 울컥해버렸다.
- 뭘 봐줘? 날 얼마나 등신으로 보면 그런 말을 해.
- 그렇네. 미안.
싸해진 분위기에도 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군인 신분을 벗은 해는 내가 멈춰서 겨우내 회복할 동안 빠르게 앞서 나갔다. 그야말로 군대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일 뿐이었다는 듯이 많은 것을 척척 해냈다. 성큼성큼 앞서가는 그의 모습에 벼락 거지가 된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잘 되는 게 기쁘면서도 죽도록 부러웠고 분했다.
가장 초라하고 불안하던 시기였다. 내 장점은 참으로 별 거 아닌 것들이었고 세상은 온통 안개가 낀 듯이 뿌연 했다. 그런데 앞서가는 해를 보며 구질구질한 열등감마저 출렁였다.
나는 다디단 포도를 수월하고 간단하게 쟁취하는 해를 항상 질투하고 있었다.
나는 예술을 사랑했다. 경제학과 미술사학 중 양자택일을 해야 했을 때 ‘미술’이란 이름이 붙어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학과에 덜컥 입학했을 정도였다. 대학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대학원과 유학 중 무엇이 좋을까, 어떤 연구로 이 바닥에 뼈를 묻을까 고민했더랬다. 난 미술관에만 가면 미친 듯이 가슴이 두근거려서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 확신했다. 영감이 사방에 가득 찬 곳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애먼 갈증이 느껴졌다.
아, 창작을 하고 싶다.
연구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나도 이야기를 쓰고 붓을 쥐고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 미술관에만 가면 두근거림보다 부글거리는 열등감을 느꼈다. 그렇게 난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해는 나와 같은 학문을 공부하면서도 취미처럼 대했다. 그는 전공과 상관없이 항상 쓰거나 그리고 있었다. 해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독특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틀에 박힐 수밖에 없는 리포트 글조차 온전히 그를 닮아서, 이름이 쓰여있지 않아도 주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도 독보적이었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려서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이야말로 모두가 갈구하는 ‘개성’ 아니겠는 가.
정반대로 내 글과 그림은 모두 딱딱하고 모범적인 무게를 갖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동화책에 둘러싸여 자랐던 해와 달리 난 스펙과 관련 없는 건 취급도 안 하며 살아왔다. 동화책은 읽어본 적이 없고 내 곁엔 읽고 싶은 책 보다 읽어야 하는 책들만 가득했다. 답을 도출해내는 논술 글쓰기만이 내가 배운 유일한 글쓰기였던 셈이다.
해의 글과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난 절대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꼈다. 너무너무 부럽지만 난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을 것들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창작은 항상 동경해오던 것이라 하루는 그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글을 어떻게 잘 쓰냐고.
해는 어렵지 않게 답했다.
- 나도 이상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때 해의 말은 여느 교수님들의 말보다 충격적이었다. 무례하게도, 나는 그의 글과 그림을 노력과 의도가 아닌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노력 자체를 포기하고 있었다. 부모님한테 재능이 없단 말을 듣고 체념했고, 선배들의 타박에 주눅 들었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을 때, 불현듯 번개를 맞은 거다.
다행히도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가 되는 데는 자격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뒤처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난 졸업논문을 쓰다가 결정했다.
교수님, 전 모범생은 그른 것 같아요. 저 예술하겠습니다. 그게 무엇이든지요.
지금도 나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난 너를 뛰어넘을 거다. 너와 함께 걸을 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른 분야일지언정 예술을 할 거다. 너같이 자유롭게 선을 긋지 못해도 내겐 정갈한 선이 있고, 독특함은 없어도 힘이 있을 거다.
돌이켜보면 난 데구룩 하수구로 떨어질 위기였던 포도알을 언제나 무사히 구출해냈다. 얼굴을 설거지통에 처박고 낑낑댈지언정 빼내지 못한 적은 없었다.
몇 알을 놓쳐도 재빨리 잡아챈 뒤 다시 깨끗한 물에 헹궈내면 그만이다. 낙오는 없다. 손끝에 느껴지는 동그랗고 뽀득한 감각이 증명하고 있다. 떨어진 포도알은 어쩐지 예쁜 그릇에 담긴 포도송이보다 달게 느껴진다. 결국은 맛보고야 마는, 놓친 한 알.
이제 나도 논리 정연한 글보다 은유로 가득 찬 시가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