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부 Oct 23. 2022

연어살은 경쾌한 작은 햇살을 닮았다.

[0.25]

 연어살에 희고 경쾌하게 그어진 흰색 줄무늬는 빛줄기를 떠오르게 한다. 선명한 선홍빛 살은 부드럽고 기름져서 마음 한편에 위로를 가져다준다.

 그래서일까. 지치고 힘든 날에는 어김없이 연어회를 찾게 된다. 밖에서 먹어야 할 때는 아쉬운 대로 연어덮밥을 먹곤 하지만, 일요일 밤에 홀로 맥주 한 캔을 곁들일 땐 직접 회를 뜬다. 호화롭게 덩어리 살을 통째로 숙성시키는데, 커다란 다시마 조각이 있다면 좋지만 없으면 굵은소금만으로 충분하다.

 물을 잔뜩 뱉어내 탱탱해진 살을 과감하게 손으로 잡아 도마로 올린다. 가장 날이 선 칼을 골라 살덩이를 설컹설컹 두툼하게 썰어내고 간혹 나오는 자잘한 조각은 바로 초장에 찍어 날름 입안에 넣는다. 간혹 흰 줄무늬 사이로 피가 배어 나오기도 하는데, 살아생전의 생동감이 떠올라서 그런지 맛있다며 거침없이 입에 넣다가도 얼굴을 찌푸리게 된다. 비릿하게 내뿜는 생명의 존재감. 

 사실 회를 먹는 행위 자체가 날 것의 음식이 물컹하게 이를 밀어내는 반동을 즐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선한 식감’은 잔인하고, 야만적이고, 동시에 생명의 위로를 안겨준다. 외롭고 쓸쓸한 날에 해산물의 진한 내장이나 알, 날 것의 살덩이를 찾게 되는 건, 이 때문이지 않을까.

 생물을 먹는 감각보다도 진한 위로는 사람의 살갗에서 온다. 혈액이 흐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갗. 신기하게도 지문의 모양새가 사람 수만큼 있듯이, 사람의 살결과 살내음도 각기 다르다. 누군가의 살내음은 이상하게도 불쾌감을 주고, 누군가의 향기는 아무 이유 없이 안도감을 준다. 왜 일까? ‘살내음’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고유한 냄새는 따뜻한 햇볕의 향기와 닮았다.

 해를 만날 때면 항상 서로를 꼭 안는다. 그저 안고 있는다. 서로의 가슴에, 어깨에, 정수리에, 목과 귀 사이에 코를 두고 천천히 숨을 쉰다. 여의치 않을 때는 팔 하나를 기도하듯 움켜쥐고 이마와 볼 옆을 쓸어본다. 우리는 함께 살아있구나.

 어느 날 많이도 쌓인 편지들을 읽다가 우리 사이에 번갈아 찾아왔던 우울증의 흔적을 발견했다. 네가 우울증을 겪을 때 써주었던 시, 내가 우울증을 겪을 때 네게 보냈던 절박한 편지들에 마음이 울렁였다. 텅 빈 자취방에 혼자 들어가서 남아있던 내 향기에 조금 울었단 이야기에 왜 나까지 눈물이 나던지. 얼굴이 흙빛이 되어 불안하게 눈이 흔들리던 네게 쓴소릴 늘어놓았던 내가 얼마나 무력했는지. 우리는 서로의 우울이란 심해를 알고 있다.

 해는 우울하고 불안할 때면 나를 찾았다. 언제부턴가 어리광이 늘었고 함께 있지 못할 땐 전화로 대신했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난 섣불리 어느 얘기도 하지 못했고, 그도 이야깃거리가 있어서 건 게 아니었다. 통화 중이라는 핸드폰 화면과 서로의 숨소리, 그리고 간혹 들리는 부스럭거림, 서로의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과 안정감. 단지 그것들이 필요한 것 같았기에 기꺼이 당신의 힘든 순간순간을 함께 했다.

 네가 기대는 무게가 무겁기도 했다. 해줄 수 있는 것이 함께 해주는 것뿐이라서. 내 숨소리를 영원히 전해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난 모진 말을 던지곤 했다. 상담을 권하고, 부질없다 회유하고, 불안해봐야 소용없고 앞으로의 네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는 그런 나를 다시 꼭 껴안았다. 너는 나의 강함과 온기에 파묻고 위로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함께 울어준 적이 없다. 되레 눈썹과 입꼬리를 내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에게 동정이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냥 나도 마주 안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진짜 진짜 괜찮다고. 

 해는 끊임없이 물었다.

- 진짜 괜찮아?

나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몇 번이고 답했다.

- 진짜 괜찮아.

 부디 네가 바라보고 느끼는 나의 강함을 말미암아 나를 믿기를. 괜찮다는 내 말에 너도 괜찮다 생각하기를. 당신이 부디 나를 강한 사람으로 믿어주기를. 그래서 용기를 얻기를. 당신의 막연한 앞 날에 설레는 날이 찾아오기를.

 언제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작은 태양을 안았다. ‘괜찮아’라는 말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 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그게 위로가 된다면, 버티고 나아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말이라면 기꺼이 그 무게를 짊어지려 했다. 당신이 내 말에 괜찮은 미래를 꿈꾸게 되는 신뢰의 무게만큼 나도 당신을 신뢰한다. 당신은 보이지 않을 당신의 빛을 신뢰한다.

 그러다가도 내가 침대에 폭 파묻혀 해가 보내준 영상편지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날도 있었다. 난 핸드폰 디스플레이 속 그의 얼굴을 향해 ‘살려줘’라고 말했다. 그의 상황을 고려하고 이해할 여력조차 없었던 날도 있었고, 버스의 날 선 기계음 소리와 떠있는 구름조차 불안하던 날들이 있었다. 옛날 사진 속의 나는 너무 행복해 보이는데, 지금 찍힌 나는 끔찍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앞으로도 우울증을 겪을 너와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 있겠지. 마치 인생의 끝을 코 앞에 둔 것 마냥 나이를 먹어가는 게 시간제한같이 느껴질 수도 있고, 벌레가 바글거리는 소리가 문득 들려오는 것 마냥 내가 서 있는 장소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끔찍한 기분도 느낄지 모른다. 여린 살갗이 다 터지도록 긁어서 피가 굳고 마르길 기다리지 못해 고통을 고통으로 삭일 지도 모른다. 자글자글한 흙바닥에 누워있는 것 마냥 잠을 이루지 못하겠지.

 하지만 내가 널 돕고, 네가 날 돕는다면 살아감이 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힘들 거야. 알아. 내가, 네가 그리도 힘들었는데 당연하지. 다시금 네가 물렁해질 때를 대비해 나는 얼른 단단해지려 한다. 꿋꿋하고 단단하게 버텨보려 한다. 따뜻한 살갗을 내어주기 위해서.

이전 11화 고요한 스몰 펍의 감자튀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