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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 Oct 23. 2022

사랑과 평화는 까눌레로부터

[에필로그]

 처음 먹게 됐을 때 가장 임팩트가 컸던 음식이라고 한다면 단연 까눌레라고 할 수 있다. 소꿉놀이하듯 작은 사이즈에 그렇지 못한 값진 몸값. 포크로 퉁퉁 두들겨보아도 어떤 식감 일지 절대 가늠할 수 없었다. 이가 표면에 닿았을 때조차도 이 단단한 것을 먹을 수나 있을지 확신이 안 갔다. 하지만 크게 한 입 베어 물은 순간, 입안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해진다.

 장난감 같은 모습에 안은 성숙하고 고상한 어른의 맛이다. 스모키 한 설탕 향이 코끝을 찌르고 입안엔 짙은 럼의 풍미가 퍼진다. 파삭하다 못해 딱딱한 겉껍질이 깨지면 그 안엔 놀라울 정도로 찐득하고 부드러운 속살이 가득하다. 익지 않은 반죽인가 싶을 정도로 쫀쫀한 내부는 푹신한 공기층의 식감으로 혀를 감싼다.

 작디작은 덩어리가 사라져 가는 게 아까워서 한 입씩 쪼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껴먹는 일은 겉보기엔 깨작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음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천천히, 제대로. 풍미, 식감, 향기, 플레이팅까지.

 음식을 즐기는 일은 한 사람을 이해해나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까눌레를 눈앞에 두고 껍질을 퉁퉁 두들기는 일은 사람을 처음 마주했을 때라고 할 수 있다. 비로소 맛을 이해할 수 있는 건 껍질에 이를 박고 나서다. 답답하도록 의무적으로 이어나가는 대화를 시작으로 관상과 행동까지 말미암아 사람을 재단한들, 직접 사귀는 것만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타인을 침투하고 타인에게 부서짐을 당하는 일이야 말로 삶의 복잡 미묘한 풍미를 알아가는 무료한 일상의 즐거움인 것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자꾸만 시선이 멈췄던 것처럼 인연은 설명할 수 없는 기류로 이루어진다. 계절이 반복해서 지날수록 당신의 옷장 속 재킷, 바지, 셔츠, 파자마까지 낱낱이 알게 되지만 어느 날 스쳐 지나가는 네 표정은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사랑에 대해 서술하고 기록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부족함을 느낀다.

 긴 연애의 의의를 말한다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모습을 관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경험하는 것에 있다. 음식도 사랑도 사람의 정성과 의도가 응축되어 만들어진 노동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식사와 사랑이란 것은 사실 무엇보다 사적이고 은밀하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너.

 우리.

 그럼에도 나와 너.

 나는 나를 지켜나가는 중이다. 인생의 4분의 1조각만큼 함께 했어도 애인은 영원히 함께 맞춰나가야 할 타인이니까. 타인이 내 일상에 들어와 1을 향해 성장하는 고군분투기. 그게 내가 주인공인 로맨스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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