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동굴을 모교라 부르는 ‘외고 졸업생’이다.
3년간의 동굴 속 생활은 아늑했다. 내가 들어간 ‘외고’라는 동굴은 다른 여느 동굴보다 대우가 남달랐기에.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을 덕지덕지 붙여 낑낑 올라간 그곳은 겨울엔 따뜻했고 여름엔 시원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어느 분야에서든 미래의 리더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금 예민하지만 자신감이 넘치고, 서로를 질투하지만 인정하고 그 또한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그들은 빛이 났다.
타 동굴의 질투를 받아야 했지만 우리 동굴은 비가 와도, 태풍이 와도 안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높은 곳의 동굴에 자리 잡아 우위점을 선점했기에 여유로웠다. 다른 동굴의 아이들은 동굴 속에 위치한 길잡이 어른들을 믿고 따랐으나 우리 동굴의 아이들은 길잡이를 믿지 않았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길잡이의 역량이 부족하다 생각되면 때론 비난하고, 내쫓으려 했다. 그들은 그럴 자격과 능력과 행동력이 있었다. 이렇듯 우리 동굴은 매우 잘 만들어진 동굴이었고 그를 모두가 자랑스러워했다. 분명 그러한 듯했다.
모두가 빛나는 동굴 속은 행복하고 즐거워야 마땅했다. 그런데 웬 일. 하나 둘 미쳐가기 시작했다. 어둠에 가까운 빛을 내는 이는 도태되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으며 강한 빛을 내는 자들은 더욱 큰 빛을 내기 위해 예민해졌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피해망상에 시달렸고, 더 이상 망상이 아닌 소외감과 절망감에 괴로워했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그들은 괴롭힘도 품격 있게, 지능적으로. 괴롭힘을 토로하는 자는 망상자 혹은 이상자 되어 동굴 구석에서 지내거나 동굴을 뛰쳐나가 받아주는 다른 동굴로 들어갔다. 물론 도망자는 거의 없었다. 있긴 했으나 그들은 떠날 때조차 품격 있게 자유를 찾는다며 유유히 나갔다. 그러나 똑똑이들에게 그들은 불량품이었기에 그렇게 되지 않고자 바득바득 빛을 키우려 애썼다. 더 나은 대우를 위해, 그리고 그다음의 더욱더 나은 ‘대학’이라는 동굴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그중 어둠에 가까운 희미한 빛을 내는 아이였다. 분명 밝은 줄 알았는데 다른 아이들의 빛은 태양과 같이 넘볼 수 없는 밝기라는 것을 동굴 속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부터 깨달았다. 그래, 처음부터 깨닫게 해 줬다. 이 동굴의 출입증을 쟁취하였으나 다시금 이 400명에 다다르는 아이들의 경쟁과 수련은 시작된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많은 아이들 중 고작 400 정도였으나 그들은 정예부대와 같다. 옆 자리 짝의 성적은 전국 2퍼센트이며 뒷자리 아이는 1퍼센트, 또 그 옆으로 가면 소수점대. 이 동굴의 전교 1등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매 시험마다 아이들은 파도에 휩쓸리듯 출렁이며 전교 등수의 앞 뒤 숫자를 번갈아 가져 간다. 그만큼 모두가 우수하고, 간절하고, 노력한다. 이 분위기와 인맥을 얻기 위해 모두들 이 곳에 왔겠지. 아니, 원한 건 그들이 아닌가?
앞 서 말했듯 나는 그곳에서 어두웠다. 분명 중간에 있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구석과 가까워졌다. 분명 노력하고 노력하는데 파도가 너무 거세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 거센 파도가 치는 망망대해를 속절없이 바라만 봐야 하는 처지가 된 불량품은 피부가 망가졌고, 몸무게가 불어났으며 머리털이 줄었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굳이 숨기지도 않는 파벌을 만들어 불량품을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물론 똑똑한 아이들이니 폭력은 금물이다. 단지 입만 움직이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탈출을 꿈꿨다. 새벽 1시에 잠들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는 루틴 속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창틀에 서서 자습을 하는 시간만이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줬다. 끔찍했으나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괴로웠으나 쌓아온 것이 와르르 무너질까 두려웠다.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친구 하나 없었으나 이 안에 있으면 미래에 보답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 난 그 동굴을 모교라 부르는 졸업생이다.
무릇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괴로워도 버티고 절제하며 견뎌야 하는 1년, 고 3. 그 1년이 나에겐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심적으로 편안한 시간이었다. 그 1년은 암묵적인 법칙 마냥 누구도 서로를 건들지 않았다. 모두가 예민했기에 조심하고 넘어가고 허락됐다. 교복을 안 입어도, 일탈을 해도, 급식을 안 먹어도, 야자가 아닌 학원을 가도 건드는 이 하나 없었다. 그만큼 그 동굴 속 아이들은 알아서 자신을 관리하고 책임졌으며 그럴만한 성적과 결과를 선생님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 무엇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입장인 난 더더욱 케어를 받기는커녕 선생들의 무시와 비난 속에서 1년을 보내야 했으나 400명 모두가 홀로 싸우는 1년간은 매우 평화롭게 지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 동안을 함께 할 친구도 사귀었다. 그리고 더 놀랍게도 그 친구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를 위하는 친구로 남아있다. 고 3에 친구다운 친구를 사귀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다니. 그 동굴은 참으로 아늑한 지옥이었나 보다.
드라마, 영화, 웹툰 할 것 없이 ‘학창 시절’은 흔한 소재이고 그 속엔 우정이 빠질 수 없으며, 주인공과 친구들은 풋풋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 풋풋하고 아름다운 추억? 나는 모르겠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어야 괴로워도 살만하고, 비난을 당해도 같이 욕해줄 이가 있어야 나아갈 힘을 얻는 법이다. 나는 그 아이들에 비해 빛이 너무너무 작아서 누구에게도 쉽사리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내 학창 시절은 외롭고 괴로웠나 보다고 대학에 들어가 뒤늦게 만난 연인에게 털어놓으며 한참을 울었다. 그는 내 빛의 밝기가 아닌, 선명한 빨간 빛깔을 봐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