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아닌 낮에 나갔습니다. 그마저도 해가 질 무렵이었지만 그래도 해를 정면으로 본 채로 걸었습니다. 낮에는 사람이 많았고, 얼굴과, 눈과, 표정이 선명하게 보였어요. 평소와 같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걸었는데 간만의 새파란 하늘이 모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밤엔 닫혀 있던 가게들이 노래와 사람들로 가득해 저도 괜히 들어가 서성였습니다. 가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알았는데, 낮의 선명함에 모자로 가려지지 않는 삐죽거리는 떡진 머리와 붉그스름한 피부가 부끄럽게도 느껴졌네요. 파스와 팩이라는 실용적이고도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손에 든 채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택배가 아닌 점원에게 물건을 사는 일이 좀 어색해졌어요.
밤에도 붐비던 길인데, 이상하게도 붐비지 않던 거리에 죽은 비둘기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평화롭게 살살 걷다가 뒷 머리가 삐쭉 설 정도로 깜짝 놀랐어요. 마음을 가다듬고 그 아이로부터 비켜 걸었습니다. 내일이면 어디론가 사라져 있겠지요. 낮에 죽은 비둘기는 그래도 많은 눈길을 받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눈초리도 받지 못한 채 죽은 길거리의 동물들도 많으니까요.
편의점에서 병 음료를 사서 한적한 벤치에 앉았습니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다 보면 동물들을 많이 마주칩니다. 역시, 오늘도 고양이 한 마리가 멀리서 숨어서 바라보다 점점,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미안하다. 음료수 말고 뭐라도 사 올걸 그랬네. 먹을거리가 없는데도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가 되어 다가와 곁에 앉아있는 걸 보면 단지 함께 볕을 쬐고 싶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네요. 기꺼이 잠깐의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공원의 입구에서 만난 고양이씨는 성큼성큼 다가와 다리에 몸을 부비기에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습니다. 너무 좋아서요. 미쳤다, 미쳤어. 이 아이도 기꺼이 정을 나눠주었어요. 근처를 지나가던 꼬맹이가 발을 구르자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는 것을 보면 사람을 봐가며 다가온 것 같아 우쭐하기도 하고,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을 구르고 겁을 주었을까. 그럼에도 다가와줬을까. 그만큼 보이지 않는 밤에 이 아이를 챙겨주는 따뜻한 누군가가 있겠거니. 그래서 먹이를 구걸하기 위함이 아닌 정을 나누러 가까이 왔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설설 걸었는데도 목덜미와 등줄기가 축축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씻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낮 내내 괴롭히던 우울하고도, 추레하고도, 치졸하고도, 의미 없는 감정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밤의 외출은 조금 쓸쓸했습니다. 시야가 어두워 자유롭게 느껴졌지만 왠지 모를 공포감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마주치게 되는 고양이씨들도 바삐 뛰어다니고 사람들의 표정도 보이지 않지만 취하거나, 지쳐있었습니다. 낮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날파리 한 마리가 팔뚝에 앉는 것까지 보이니까요. 선명한 시야만큼 선명한 감정들이 들어옵니다. 생생한 모습들이 불확실한 감정을 몰아냅니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햇빛이 필요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