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주디와 앨리스

by 생각많은얼룩말


전혀 예상치 못한 토끼의 말에 앨리스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토끼는 앨리스가 그 어떤 반응을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오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친구가 되어 줄지는 고민을 더 해봐야겠지만 같이 점심을 먹어줄 수는 있다니.'


앨리스는 호의를 가장한 주디의 점심식사 초대가 은근히 신경 쓰였다. 총총거리며 앞서가는 토끼의 모습이란. 누구든 주디의 말을 들었다면 앨리스와 함께 흰 토끼의 뒤통수를 살며시 노려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노려보고만 있다간 주디를 놓칠 판이었다. 앨리스는 어쩔 수 없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선 주디를 뒤따랐다.


'무슨 토끼가 말 한마디에 큰 의미를 부여했겠어.'

'아니야, 속이 시끄럽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보통 토끼는 아닐지도 몰라.'

'그래도 마침 배고픈 참이었는데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자.'


새침해 보이는 흰 토끼의 식사 초대가 앨리스를 적잖이 당황시킨 건 사실이지만 곧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앨리스의 기분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주디와 함께 5분 정도 걸었을까, 지붕이 초록색인 아담한 통나무집이 보였다.


주디네 집 앞 정원의 한 귀퉁이에는 당근 밭이 있었고, 또 다른 쪽에는 예쁜 꽃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앨리스는 주디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토끼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집 천장이 너무 낮지는 않았다.


"실례합니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 부모님은 외출 중이시지."

"아, 그렇구나."


주디가 어떤 토끼인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앨리스는 주디의 눈치를 보느라 에너지가 쭉쭉 닳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디는 나름 손님을 맞이한다는 표현으로 소파 위에 있었던 옷가지들을 방 안에 두고 나왔다.


앨리스는 거실 한 귀퉁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서랍장에 눈이 갔다. 서랍장 위에는 라임색 격자무늬 손수건과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주디, 이건 가족사진이야?"

"맞아, 우리 가족사진. 내가 어렸을 때 찍은 거야."



눈앞에 있는 주디도 아직 아기 토끼 같아 보였지만, 앨리스는 굳이 그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오, 그렇구나. 너무 귀엽게 잘 나왔다. 귀여운 토끼 가족인 걸. 넌 아기였을 때부터 쭉 귀여웠구나, 주디?"

"세상에, 귀엽다니!"


앨리스는 주디와 친해지고 싶어서 나름 칭찬의 단어를 선택한 것이었는데, '귀엽다'는 단어는 아무래도 주디의 취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디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작년에 사바나 고등과정을 끝낸 몸이라고!"

"아, 미안해 주디. 얼굴만 보고는 나이가 전혀 가늠이 안돼서 말이야."

"네 눈에는 내가 그냥 '토끼'겠지만 나는 '그냥' 토끼가 아니라고. 그리고 '토끼는 귀엽다'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주길 바랄게."

"응, 알겠어. 그래, 편견일 수 있겠다. 내가 했던 말은 취소할게!"


앨리스의 반응이 마음에 든 주디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선 자신을 따라오라며 부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난생처음 듣는 '사바나 고등과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자신의 생각보다 주디가 훨씬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 토끼처럼 느껴졌다.


"앨리스, 손을 씻고 싶다면 저기 화장실로 가면 돼."

"응, 고마워 주디."


주디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화장실' 팻말이 붙은 문이 보였다. 앨리스는 성큼성큼 걸어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장실 안은 재스민 향으로 가득했다. (주디가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면대 앞에 놓인 발 받침대를 한쪽으로 치우고 세면대 앞에 서서 손을 씻었다. 앨리스는 화장실 안을 가득 매운 재스민 향이 비누에서 나고 있다는 걸 금세 알게 되었다.


손을 다 씻은 후 앨리스는 고개를 들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거울을 봤을 뿐인데 앨리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참 멍하게 거울을 들여다보던 앨리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뭐야? 내 머리색이 왜 이러지?"


자신의 머리 색이 평소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위에서부터 노랗게 물들어 있다는 걸 안다면, 그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앨리스가 거울로 본 자신의 모습은 노랑머리의 끝부분이 갈색으로 물들어 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그리고 이 헤어밴드는 또 뭐야?"


분명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헤어밴드는 없었다. 앨리스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왜 하필 그날 고심해서 골라 입었던 셔츠의 색이 하늘색이었을까. 머리카락이 끝까지 노란색으로 바뀌기만 한다면 앨리스는 영락없는, 자신이 책에서 봤던 그 '앨리스'가 되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그제야 왜 머쉬도, 주디도 자신을 앨리스라고 불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