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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많은얼룩말 Sep 13. 2021

쉽게 우울해지는 하루


 나는 내가 이렇게나 쉽게 우울해질 수 있는지 예상치 못했다. 남편의 말마따나 나는 평소 긍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긍정적인 사고도 멈추게 만드는 이 상황과 환경에 모든 탓을 돌려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군인의 아내다. 남편과 교제를 시작하기 전, 어느 햇살이 좋은 날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편, 아니 나보다 5살 어린 남자는 내게 '미래의 아내'에게 벌써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이는 본인의 직업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미래의 남편'이 될 그에게 "그건 결코 너 혼자 싸매고 끙끙댈 문젯거리는 되지 않을 거야. 너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그 문제를 함께 풀려고 하겠지. 그래서 어쩌면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어."라고 말했다. 세상에, 내가 그런 말을 했다니.


 후에 나는 남편의 사랑 고백을 받고 많은 고민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 고민의 중심엔 그가 군인이라는 사실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난 그의 고백을 받아줬다. 미래에 군인의 아내가 될지도 모르는 내게 모험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나는 그와 결혼을 했다. 남편은 공군 조종사로 부대 내에 거주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남편을 따라 부대 생활을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었고 예상했던 삶 속에 내가 첫 발을 내디뎠을 땐 생각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이 주어지면 무언가에 적응이 되듯, 나는 곧 부대에서의 삶이 현실로 느껴졌다.


 새로운 지역과 부대라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꼬박 100일 정도 걸렸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주부로 살아가는 데는 아직도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결혼을 준비하며 직장을 그만뒀던 터, 프리랜서로 살아가던 나에게 이곳은 매일 텅 빈 시간을 선사한다.


 나는 이곳에 온 후로 매일 텅 빈 시간을 운영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때론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만났지만, 코로나로 그마저도 쉽지 않은 요즘이다. 매번 텅 빈 시간을 사람으로 채우는 건 못 할 노릇이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잘하는 계획 세우기를 이렇게 저렇게 해봤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나는 내가 입력한 대로 바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었다.


 나의 몸부림과 마음앓이를 지켜보는 남편은 늘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는 남편의 사과가 참 고맙고, 그로 인해 위로도 받는다. 하지만 결국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다고 나는 남편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늘 이야기한다. 나는 이 시간을 잘 통과할 것이고, 이것이 남편을 향한 나의 또 하나의 사랑 표현이 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하루가 너무나 낯설었고 막막했다. 나는 나의 하루가 이렇게 쉽게 우울해질 수 있는지 몰랐다. 우울할 땐 우울해서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 내 상태를 적나라하게 글로 써버리면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쓴다는 건, 우울했던 그날들보다 오늘이 훨씬 낫다는 사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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