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Fable 2.
* 이론 이야기 중간중간 분위기 전환을 위해 오래 묵혀둔 짧은 이야기 하나씩 업로드합니다.
# 1
참외 농사를 짓던 농촌 마을, 로스빌을 다른 곳과 이어주는 유일한 도로는 먼지가 풀풀 날리고 군데군데가 파여 있는 비포장 시골길이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여름 한철에만 수확하던 참외 농사가 일 년 내내 수확이 가능해지자 로스빌 마을 주민들의 소득이 갑자기 늘었다. 참외 운송용 트럭만 타던 주민들은 늘어난 소득으로 승차감이 아주 좋다는 최고급 승용차를 하나둘 구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에서는 승차감이 좋은 최고급 승용차를 맘껏 달릴 수 없었다. 결국 승용차를 구입한 여러 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마을까지 이어진 시골길을 깨끗하고 평평하게 아스팔트 포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주민들의 늘어난 소득만큼 늘어난 세금으로 예산이 넉넉해진 로스빌 관청 건축과에서는 너무나도 흔쾌히 그리고 신속하게 로스빌 마을 도로를 아스팔트로 깨끗이 포장해 주었다.
#2
지난 2년 동안 로스빌 관청 교통과에 신고, 접수되는 교통사고의 비율이 엄청나게 늘었다. 차량이 부셔지는 사고는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도 급격하게 늘었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로스빌 마을의 도로가 포장된 이후 자동차의 늘어난 통행량과 과속이 그 원인이었다. 이에 로스빌 관청에서는 운전자들의 과속 운전을 방지하고 또 과속 운전자에게 과태료를 물리기 위해 과속 차량을 촬영할 수 있도록 감시 카메라를 도로 곳곳에 설치했다. 카메라 개발 업체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주간은 물론 야간에도 차량의 번호판을 아주 선명하게 촬영할 수 있는 초고화질, 초고감각, 초스피드 센서 카메라입니다. UFO라도 자신 있게 찍을 수 있다고 할까요? 하하하”
#3
고혈압 증세가 조금 있는, 로스빌 주민-스피덤씨는 어느 날 로스빌 관청이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난생처음 관청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스피덤씨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봉투를 찢고 내용을 확인했다. ‘귀하가 소유한 차량번호 15GR 980이 규정 속도를 위반하였기에 과태료 부과를 통지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일 이내에 다음 은행들 중의 한 곳으로 입금하시기 바랍니다.’ 내용을 확인한 스피덤씨의 혈압이 순식간에 목숨을 위협할 만큼 높아졌다. 간신히 혈압을 진정시킨 스피덤씨는 이 사실을 마을 주민들에게 알렸다. 마침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있던, 로스빌 1호 대도시 유학생 토디가 번호판 가림 페인트를 제안했다. “카메라는 차량 번호판을 찍을 때 플래시를 터뜨립니다. 이 페인트는 그 빛을 난반사시켜 하얗게 형태를 지워버리니 카메라에 찍혀도 숫자가 나타나지 않죠.” 로스빌 주민들이 빠짐없이 이 페인트를 구입한 것은 당연. 대도시 유학생 토디가 진행한 공동구매를 통해-
#4
로스빌 관청 소속 교통경찰인 매튜 씨는 허탈했다. 야간 근무 중 로스빌 대로를 질주하던 차량을 발견하고 다음날 카메라를 열어보니 찍힌 사진 속 차량의 번호판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사진 속 차량의 번호가 하얗게 찍혀 번호를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매튜는 이 사실을 신속하게 자신의 상관에게 보고했고 로스빌 관청에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을 아이디어를 관청 소속 모든 공무원에게 공모했다.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선택된 것은 바로 일명 ‘속도방지턱’이다. 도로를 가로질러 반원통형의 시멘트 턱을 만드는 것이다. 차량이 과속으로 이 턱을 넘을 경우 차량의 바닥이 닿아 차량이 망가질 수밖에 없으니 운전자로 하여금 속도를 줄이게 한다는 것이다. 효과는 대단했다. 과속 카메라가 필요 없을 만큼 과속 차량들이 줄어든 것이다. 그와 함께 사고도.
#5
로스빌 대로에 속도방지턱이 설치되고도 한참 지난 어느 날이었다. 자신의 최고급 승용차로 잘 닦인 도로를 달리던 로스빌 주민 스피덤씨는 앞에 속도방지턱이 나타날 때마다 혈압이 신경 쓰였지만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고 속도방지턱을 넘었다. 이때 문득 스피덤씨는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울퉁불퉁 거리면서 느리게 달릴 거면 도로는 왜 포장했고, 차는 왜 바꾼 걸까?’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도 최고급 승용차는 계속해서 울통불퉁, 꿀럭꿀럭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 옛날 비포장길을 꿀럭꿀럭 울퉁불퉁거리면서 달렸던 참외 운반 트럭처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