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건 아직 충분히 모르고 있다는 것-
(* 글 하단부에 삽입되어 있는 연재의 차례에 따라 읽으시면 조금 더 이해가 쉽습니다.)
바닷속 더 깊은 곳의 고기를 잡기 위해
낚싯줄을 더 깊은 바닷속으로 풀어 주듯
더 멀고 더 깊은 곳의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생각의 고삐를 슬금슬금 풀어놓다 보면
생각은 전혀 가보지 않던 곳에 다다르게 됩니다.
낯선 동네를 산책하듯 두리번거리다가
우연히 고개를 돌려 본 좁다란 골목길의 끝-
모퉁이를 휙 돌아가는 아이디어의 그림자가 보일 때
망설이면 놓칠세라~ 하는 마음에
반사적으로 급히 그 뒤를 쫓아가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그토록 찾던 아이디어라면
한껏 고양된 마음이 식을 새라
다시 사무실 책상 앞으로 순간 이동해
노트북에 아이디어를 바쁘게 기록합니다.
이쯤 되면 긴긴 겨울잠을 보내기 위해
도토리를 한껏 쌓아둔 다람쥐마냥
늘 스트레스의 근원이던
회의 시간이 전혀 두렵지 않고
늘 좋은 아이디어로 팀장의 인정을 독점하던
김카피마저 전혀 부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회의시간-
누가 들어도 깜짝 놀랄 아이디어를 설명할 생각에
다른 팀원들의 아이디어 설명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어.차.피. 내 아이디어로 결정될 게 뻔한데…’
팀원들이 괜히 힘만 빼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회의실 테이블에 펼쳐져 있는
다른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밀어내며
호기롭게 꺼내놓는 나의 빅 아이디어!
그런데, 막상 꺼내놓고 보니
그다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만큼 완벽하고
그렇게 빛나게 보였던 아이디어였는데
왜 그냥 좋다!는 느낌 같은 느낌.뿐이지?
설명이 되지 않으니 주위에 구걸하듯
‘이거 좋지 않아요?’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되고
거기서 조금만 지나면
내가 왜 아이디어를 좋다고 한 거지?
하고 바로 자신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주화입마’의 상태입니다.
‘이거다!’ 하는 느낌 같은 느낌은 있는데
말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
원인은 간단합니다.
‘이거다!’하는 느낌 같은 느낌을
팀원들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연히 일찍 깬 어느 날 아침
공원 산책에서 마주친 새벽 안개의 느낌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들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말이든 그림이든 어떤 수단/장치/논리/설명을 갖추는 것이
제대로 아이디어를 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많은 경우 그런 ‘느낌 같은 느낌’입니다.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착각입니다.
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분입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진짜 '안다! 는 것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안다는 ‘착각’ 일 가능성이 대부분입니다.
그 놀랍고 멋진 느낌! 을
상대가 누구라도 실감할 수 있게 하고
그래서 동의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설명하는 것-
그것까지 준비되어야 진짜 아이디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느낌과 좋은 아이디어-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요?
아니 좋은 느낌 같은 느낌일지
좋은 아이디어가 될 느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요령은
출발점/원점으로 돌아가면서 그 경로들을 짚어보고
또 출발점에 서서 그 ‘느낌’들을 평가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데려가야 할 다른 누군가의 가이드가 되어
내가 지나온 생각의 경로를 설명하고 되짚어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설계되어
누구라도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미궁(미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미궁 속에 살면서 선남선녀를 먹이로 삼는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죽이는 데 성공한 테세우스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는
그가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한 다음-미리 매어둔 실타래를 따라
미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결국 좋은 아이디어란
괴물 미노타우르스의 베어진 ‘머리’만이 아니라
미로의 안과 밖을 이어주는 그래서,
누구라도 되돌아 나올 수 있게 하는 ‘실타래’가
함께 필요한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 매주 화/목에 업로드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롤로그]
• 001 발상법 책들이 실패하는 이유 : 수학을 잘하는 방법은 수학을 공부하는 것
[PART 1] 내일 아침-D-1 상황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
Chapter 1. 갖다 붙이기의 기술
• 002 스퀴즈 번트: 레퍼런스 혹은 강제 결합
• 003 갖다붙이기 사례: ANA + 해양수산부
• 004 '갖다 붙이기'에 숨은 방정식: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의 차이
• [ThinkingFable 1] 냉장고 의사
Chapter2. 더하고 빼고 비트는 기술
• 005 1+1+1은 3보다 크다 : 나란히 3의 법칙
• 006 빼고 빼고 또 빼면 더 커지는 : 인쇄광고처럼 영상만들기
• 007 부작용 혹은 Side Effect : 막다른 길인줄 알았는데 지름길
• 008 세상에서 가장 쉬운 피칭법 : 아이디어의 첫 순간부터 시작하라
• 009 '좋다'는 느낌, '안다'는 착각: 설명할 수 없으면 설득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