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았다 다시 뜨면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어있기를
그 설원의 한복판을 따라서
뚜렷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기를
그리하여
여백으로만 남아있던 12월의 일기장을
까만 손글씨로나마 희미하게 채울 수 있기를
희미한 전등 사이를 감도는 적막감
순백의 찰나로 고요를 지워낼 함박눈
그의 등장을 기도하며 눈을 감는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했던 눈은
애석하게도 월요일 새벽에 펑펑 내려서
곱게도 쌓여버렸으니
인파의 발끝에서 떠돌던 먼지
제설차가 흩뿌린 소금과 모래
걱정을 한껏 품은 입김이 한데 섞여
회백색 덩어리로 다시 태어났다
그때부터 눈이란
하루를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
그 성가심이 한숨 섞인 짜증으로 변할 때쯤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바랐던 것은
눈내림이 아니라
눈내림이 품었던 설화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