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하지 말자 유혹당하지 말자
발표가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여기저기 웅성웅성. 역시나 그랬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이들이 사전 테스트를 하며 화면에 띄워놓은 슬라이드를 보고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마침 스크린도 작았는데 슬라이드 속의 글자들의 크기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들은 대안이 없다. 그냥 불평불만들 속에서 준비한 대로 하는 수밖에.
프레젠테이션 준비라 하면 PPT 작성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프레젠테이션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시청각 설명회'라는 해석이 나오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시청각을 자극하기에 PPT나 키노트, 프레지만큼 효율적인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일부러 PPT 사용을 제한한다는 유명기업들의 사례가 나오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설명회'의 개념이 좀 적게 적용되는 상황에서 일거다. 내부(사내) 인원이 아닌 다수의 청중을 모아놓고 줄글을 읽게 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우선 다수의 청중이라 함은 대부분 프레젠테이션 콘텐츠에 대한 사전 정보가 많지 않은 경우라 전제하겠다. 청중의 눈은 빠르다. 발표자가 설명하기 전에 텍스트나 이미지를 먼저 읽고 내용을 대강 파악한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한데 문제는 발표 슬라이드의 특히 텍스트를 청중이 잘 읽지 못하게 만들 때 발생한다. 글자가 너무 작을 때가 문제란 것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일단 슬라이드 작성자는 노트북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코앞에서 보며 콘텐츠를 만든다. 크기 10pt의 활자 정도는 충분히 식별 가능하다. 잘 보인다. 그러니 무던히 작성한다. 본인에게는 잘 보이니까. 그러나 프레젠테이션 현장을 생각해보자. 우선 PT 전 그곳을 미리 답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만 답사가 가능한 현장은 학교 말고는 별로 없다.
실제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청중과 슬라이드가 비치는 모니터나 스크린 사이의 거리가 노트북을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가까운 곳이 있던가? 청중들 앞에 모니터 하나씩 다 비치되어 있는 곳이 있던가? 화면에 가까운 청중도 있을 것이지만, 먼 이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에 앉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가?)
아무리 큰 화면이나 스크린이라 하더라도 원본 자체가 작은 텍스트를 모든 청중이 쉽게 식별하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 패턴이 반복되면 청중은 짜증이 날 것이다. 아니면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워낙 쪼매난 것이니까.
광고회사에 다닐 때였다. 광고주는 광고물에서 본인들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잘 보이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예쁘길 바란다.) 특히 인쇄 광고물에서는 헤드라인이나 장점을 요약한 텍스트가 제품 어필에 주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텍스트들의 크기다. 디자인에 대한 나름의 감각이 있는 광고주는 무작정 텍스트의 크기를 키우다간 '세련됨'이란 개나 줘버리는 상황에 도달한다는 걸 안다. 꽤나 많은 비용을 투자한 인쇄광고가 소위 전단지나 찌라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진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미련을 잘 버리지 못한다. 고로 담당 기획자에게 늘 요청하는 사항이 '디자이너 분에게 광고물 내의 글자를 조금씩만 더 키워서 달라'는 것이었다. (기획자는 그 조금씩이 과연 몇 pt인가란 의문에 빠지고...)
그렇다면 폰트가 작으면 세련되다는 것인가? 일면 맞다.
유명 홈쇼핑에서 2D 디자이너로 꽤 오래 일한 이와 폰트 사이즈와 관련해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똑같은 말이었다. "일단 글자는 작으면 예뻐 보이죠..." (그러곤 본인이 맡은 디자인의 글자를 키우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일단' 맞는 말일뿐 커뮤니케이션적으론 맞지 않다. 대다수의 청중에게 읽히지 않는 정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슬라이드에 안 넣는 게 났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밤새워 제작한 슬라이드를 아낌없이 청중에게 보여주고 싶다면 폰트 사이즈부터 키우길 바란다. 스티브잡스의 프레젠테이션, 갤럭시 언팩 프레젠테이션 등에서 가장 먼저 본받고,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글자 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