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s
7년여 전 모교의 학회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1시간여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특강이라는 말이 보기 따라서 거창할 수 있지만, 주제는 '선배의 경험담' 정도였다.
청중을 분석해야 했다. 특강이던 프레젠테이션이던 기본이니까.
다행히 청중은 말 그대로 '후배'들이었기에 대략적인 그들의 상황이 짐작되었었다. 그리고 나는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학회는 특정한 직업군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모인 것이었기에 청중의 관심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되었었다. 특강을 의뢰한 학회장과 통화하며 내가 생각한 청중분석 내용에 대해 간략히 확인해보는 절차를 거친 후 청중분석을 종료하였다.
사전 답사가 필요했다. 특강이던 프레젠테이션이던 기본이니까.
특강을 의뢰한 학회장에게 확인해 본 결과, 내가 재학 시절 수업을 듣던 강의실이란다. PC와 마이크가 포함된 전자식 교탁과 스크린이 있는 강의실이었다.
PC와 스크린의 연결은 잘 되었지만, 간혹 마이크 혹은 PC에서의 소리가 스피커로 연결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굳이 동영상이나 소리가 나는 콘텐츠들을 특강 자료에 넣지 않기로 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특강에서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마이크가 달린 교탁에 붙어서 특강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 목소리를 좀 크게 할 각오, 그리고 후배들을 싹 다 강의실 좌석 맨 앞좌석 쪽으로 모아놓고 시작해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선배이기도 하고 나의 특강을 원해서 들으러 온 이들이기에 후배들은 기꺼이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학회장에게 특강 전 꼭 기자재의 정상 작동 유무를 확인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렇게 맘 편히 준비할 수 있는 특강이 어디 있나 싶기도 하다.)
특강 당일, 특강 시작 10분 전 다음 페이지를 우선 띄워 놓았다.
기획의도는 이랬다.
비교적 넓은 강의실이었고 나는 마이크를 쓸 생각이 없었기에 핵심 청중인 후배들을 내 앞으로 모으고자 했다. 그리고 나의 특강을 참관(?)하러 온 직장인 졸업생들에겐 특강 중에 본인이 아는 얘기 한다고 괜히 끼어들지 말라는 선전포고가 필요했다. (물론 졸업생들은 다 친한 이들이기에 좀 더 맘 편히 요구할 수 있었다.) 특강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질문은 일단 나만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어차피 특강이 끝난 뒤에 질문은 따로 받을 생각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이유는 무엇보다 발표자에게 호의적인 청중이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기꺼이 본인의 시간을 내어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었기에 발표자의 부당하지 않은 요구를 안 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세 번째 이유를 붙인다면 내가 특강 시작 전에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이렇듯 발표장의 Rule을 항상 발표자가 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