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번씩 하는 발표를 잘하고픈 당신에게
발표, 스피치 등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메러비언의 법칙'을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나는 처음 이 '법칙'을 누군가의 강의에서 들었을 때 좀 불쾌했다. 날밤을 새기도 하고 길게는 한 달 가까이 나름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에서 내용의 중요성이 고작 7%에 불과하다고?
포털의 지식백과에도 이렇게 나온다.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과 청각이 각각 55%와 38%, 말의 내용은 7%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7%-38%-55%법칙
[네이버 지식백과] 메라비언의 법칙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당신이 메라비언의 법칙을 철썩 같이 믿다가는 큰코다친다. 아니 정확히 알고 쓸만한 이들만 적용해야 한다. 메라비안의 법칙에 대해 제대로 정리한 다른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우선 링크한다.
왜 메라비안의 법칙을 무조건 믿으면 안 되는 걸까? 왜 메라비안의 법칙이 잘못 사용되고 있을까?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보통 말을 잘하는 법, 발표를 잘하는 법에 대한 공부(검색)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1) 아나운서나 강사 등 전문적으로 말을 하여 먹고사는 사람
2) 먹고사는데 중요하지만 어쩌다 말을 잘해야 하는 사람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메라비안의 법칙을 좀 더 유의 깊게 참고할 만하다. 하지만 2)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겐 글쎄다다. 어쩌다 말을 잘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나운서식의 정돈된 몸가짐과 세련된 제스처, 전달력 강한 목소리를 단기간에 가지기는 매우 힘들다. 단언한다.
그 시간에 내용을 더 충실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 '충실히'의 방법에는 발표의 내용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 논리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는지, 슬라이드를 사용할 경우 너무 불필요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발표자로서의 기본인 발표 콘텐츠의 전체적인 내용을 잘 숙지하고 있는지 등등 등등, 메라비안 교수가 (그렇게) 말한(것으로 오해되는) 7%의 언어적인 요소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2)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발표가 끝나고 후회하는 것들은 세련된 발표자, 연사로서의 모습을 청중에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기획, 당신이 그동안 준비해 온 것들, 당신의 생각에 대해 청중을 설득시키거나 공감을 일으켰느냐다.
본인의 발표가 아나운서 콘테스트인지 아닌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참고로 나의 경우, 발표를 앞두고 본인의 사투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일부러 고치려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어쩌다 말을 잘해야 하는 이들에겐 사실상 불가능한 도전이다. 사투리가 너무 강해서 그 지역 사람들 아니면 추정조차 불가능한 수준의 말만 고치라고 한다. 사실 이 또한 기준이 모호한데, 이때는 슬라이드를 활용하면 된다. 적어도 발표용 슬라이드에 의도적이 아닌 이상 사투리를 넣지는 않을 테니까.
더불어 사투리를 자신 있게 사용하는 사람은 되려 자신감이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약간 디스(?)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설득을 하는 발표나 강의 등을 할 때 근거에 목마르다. 그러면 설득력이 강해지니까. 그런 중에 학자들의 연구 결과나 유명인들의 말 등이 나의 입맛에 맞으면(아니 맞아 보이면) 맥락을 생략하고 일단 가져다 쓰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 역시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꼭 근거가 있어야 하나. 물론 그러면 좋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나는 국내에서 발간된 프레젠테이션 관련 서적을 90% 이상 봤다고 자부한다. 지금도 신간을 꾸준히 챙겨보고 있다. 한데 이제까지 내가 본 프레젠테이션 관련 서적에서 '메라비안의 법칙'을 제대로 설명한 경우는 TED TALKS(국내 발간명 테드토그) 한 권뿐이다.
또 내가 몇 번 들었던 프레젠테이션 관련 강의에선 강사들이 한결 같이 다 1)의 사람들(아나운서나 강사 등 전문적으로 말을 하여 먹고사는 사람)을 위한 메라비안 법칙을 얘기했다. 그리고 분명 몇몇은 이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 어렸을 적 음악시간에 배운 복식호흡부터 다시 연습해야 하나..."
아직도 1967년(고전이 무조건 틀린 건 아니나…) 연구를 예로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이들이 검색해보면 더 많아서. 이게 대세 혹은 정답으로 착각해서.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당신은 매우 절체절명의 일분일초가 소중한 상황일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당장 해야 할 일의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인 행위가 무엇인지 따져볼 일이다. 그 효율적인 행위를 정함에 있어 틀린 근거는 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늘 이런 글에는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며, 당신의 발표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