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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삭 Sep 21. 2024

아직도 애기인 30대 딸내미

2024년 6월 말엄마와 함께 8박 9일간 동유럽 여행을 떠났다.

생각지도 않았던순전히 나의 충동적인 결정으로만 시작된 여행에서 

우리는 조금은 가까워져 돌아왔다이 글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구석구석을 빨리 돌아봐야했다. 일행들과 갈라지자마자 나는 프라하 시내 전경이 보이는 곳으로 먼저 엄마를 이끌었다. 겹겹이 모여 있는 붉은색 지붕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다 이렇게 빨간색 지붕이 있네."


 엄마는 오른손을 들어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리 갔다리하고,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말했다. 그리고 멀리 시선을 두고 풍경을 바라봤다. 나는 거기서 일부러 한 마디 던졌다. 더 좋아하라고 바람 잡는 말이었다. 


 "거 봐. 예쁘지? 유튜브에서 본 것보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집에서부터 DSLR을 들고 왔다. 렌즈까지 합쳐서 무게가 꽤 나갔다. 카메라를 긴 스트랩을 달고 어깨에 메고 다녔는데 무거워서 어깨와 목이 담 걸린 것처럼 결려왔다. 


 이런 카메라를 왜 굳이 여기까지 들고 왔는가. 요즘은 휴대폰 화질도 워낙 좋으니 휴대폰으로 찍어도 충분했지만 그냥 가지고 오고 싶었다. 예쁜 곳에서 엄마 사진을 잘 찍어주고 싶었으니까. (나의 열정엔 박수를 보내지만, 사실 휴대폰과 별 차이가 없어 잘 사용하진 않았다.)


 이렇게 도시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기는 건 필수다. 본격적으로 나는 엄마의 사진사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포즈를 한 번 잡아보라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엄마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데, 이땐 괜히 수줍어했었다. 내가 사진을 찍어주는 게 영 어색한 듯. 


 하긴, 나도 내가 엄마 사진을 이렇게 정성들여 찍어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나도 너무 오랜만에 하는 짓이라 낯설고 어색하긴 했다. 


 "뒤를 돌아보고, 저기 멀리 바라보고 있어봐." "이쪽을 보고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여." 나는 사진이 예쁘게 나올만한 느낌의 각을 잡으며 포즈를 주문했다.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나는 사진을 좀 찍는다. 전문가처럼 수준급으로 잘 찍는다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나 누군가를 찍어주면 상대가 만족해 할 만큼은 찍는다. 그래서 여러 컷을 신나게 찍고 아주 자신 있게 엄마에게 보여줬다.


 "자, 봐봐. 어때? 예쁘지?"

 "응." 

 "딸내미가 사진도 잘 찍고 좋겠어." 

엄마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만족한다는 듯 싱긋 웃었다.


 우리는 프라하 성 정문 앞에 있는 광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다양한 패턴을 가진 주변 건물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건물 위 바로 보이는 하늘에 새들이 날아갔는데 정말 그림 같았다. 


 장미꽃이 환하게 피어 있고 초록의 나무들로 둘러싼 벤치들도 있었다. 엄마에게 어서 가서 앉아보라고 했다. 진분홍색 장미들은 저마다 색깔이 달랐다. 어떤 꽃은 색이 바래서 노란색에 가까워져가고, 어떤 꽃은 아주 붉어서 싱싱한 모습을 자랑하고. 제각각이었다. 나는 이 배경이 아주 예뻐 보였다. 그래서 더 신이나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너도 찍어야지." 엄마가 말했다.

 "됐어, 별로 안 찍고 싶어." 


 나는 더운 날씨에 피곤함이 살짝 겹치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 사진을 찍는 것에만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찍어야지. 휴대폰 줘. 너도 저기 서 봐."


 엄마는 내가 찍어준 것처럼 똑같은 곳을 배경으로 해서 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혹시 그런 거 아나. 사람이 나를 찍고 있는 각도와 위치를 보면 사진이 대충 어떻게 나오겠구나 감이 오는 거.


 "자, 마음에 드나 한번 봐 바." 휴대폰을 받아서 엄마가 찍어준 사진을 하나씩 넘겨봤다. 


 아, 역시. 작가는 어떤 느낌으로 이 인물을 찍고 싶었는가, 기준이 뭐였는가 묻고 싶었다. 


 "아, 이게 뭐야. 다 이상한데!" 


 너무 이상하게 찍힌 컷을 보면 크게 웃음이 나왔다. 렌즈 때문인지 얼굴이고 몸이고 한쪽이 크게 찌그러져 굴곡지게 나온 것도 있고, 눈이 감겨있거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거나 말하는 도중에 찍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이 사진에는 엄마만의 깊은 감각과 감성이 담겨 있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누군가 네가 못생겨서 사진이 그렇게 나온 걸 어쩌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엄마가 찍은 사진 3,40장 중에 5장 정도는 마음에 들었음을 확실히 밝혀둔다.)


 "쳇. 다시 줘봐." 


 엄마가 도로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다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 정말 열심히 찍어줬다. 


 그러나 결과는 비슷했다. 나는 또 크게 웃었다. 엄마는 그것을 보고 자존심이 꽤나 상한 것 같았다. 내 입에서 '대만족 합니다!' 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사진을 찍을 기세였다. 


 "됐다. 그만! 시간 얼마 안 남았어. 빨리 아까 못 본 곳에 가자."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보고선 엄마를 재촉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다시 프라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까 봤던 비투스 대성당으로 향했다.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아쉬운대로 성당 외부를 더 꼼꼼히 둘러보기로 했다. 


 성당 정문 기준에서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긴 세월을 반영한 것인지 이제 누런 빛보다 검은 빛을 더 띠는 피에타 상이 있었다.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놓여진 예수. 그리고 그 옆으로 천사가 십자가를 들고 있었다. 작은 지식이지만 엄마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나는 이게 어떤 모습인지 설명을 덧붙여 보기도 했다.


 옆 쪽으로 이동해 출입구 부분 위쪽을 바라보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선악과를 따먹는 아담과 이브 등의 그림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이 성당에서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같았다. 


 성당의 뒤 편으로 가보니 카페가 있었고 오른쪽에 좁은 골목길이 하나 나 있었다.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따라갔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반갑게 말을 걸며 우리에게 다가 왔다.


 "재밌게 보셨어요? 어디 보고 오셨어요?" 우리와 함께 성을 둘러봤던 젊은 부부였다. 


 "저희는 여기 카페에서 좀 쉬고 있다가 나왔어요. 저쪽 길 가봤는데, 저긴 별로 볼 게 없더라고요." 이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에게 꽤나 살갑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줬었는데, 그래서 엄마는 '사람들이 참 마음에 든다, 참 좋다'며 나한테 연신 칭찬을 했던 터였다.


 "저희는 정문 앞에 광장에서 사진 찍고 이제 막 들어왔어요." 라고 내가 대답하는 찰나에 엄마는 다짜고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휴! 우리 애기 사진 좀 찍어주세요! 내가 사진을 너무 못 찍는다고 해요!"


 엥? 애기? 애기가 웬 말인가. 30대 중반을 넘긴 나에게 애기라니. 당황한 나는 순간 부부와 눈이 마주쳤고, 손을 마구 휘저으면서 괜찮다고 자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얼른 가서 둘러보시라고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엄마의 말이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나는 그새 또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진짜 주책이야! 여기 애기가 어디 있어! 사진 안 찍어도 된다니까!" 나는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는 좀 찍어달라고 할 수 있지 않냐, 별 것도 아닌데 내가 유난을 떤다고 했다. 


 나는 빨리 골목길이나 한번 들어갔다가 오자고 했다. 시간에 쫓겨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는데, 옆에 있어야 할 엄마가 안 보였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얼마만큼 떨어진 자리에서 휴대폰을 들고 나를 찍는 엄마가 보였다. 


 "어휴, 참나" 


 그 모습은 또 왜 그렇게 웃기던지. 나도 카메라를 들어 나를 찍는 엄마의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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