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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삭 Sep 18. 2024

프라하는 처음입니다

2024년 6월 말, 엄마와 함께 8박 9일간 동유럽 여행을 떠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전히 나의 충동적인 결정으로만 시작된 여행에서 

우리는 조금은 가까워져 돌아왔다. 이 글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여행하는 도시마다 각각 특유의 느낌이 있다. 프라하 역시 프라하만의 느낌이 있었다. 


 오래되고 작고 소박한 아기자기한 건물들 그리고 붉은 지붕. 버스가 블타바 강을 따라 관광 중심부인 프라하 성 방향으로 이동하는데, 마치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색깔의 느낌을 주는 도시는 또 처음인지라 시작부터 풍경에 푹 빠졌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프라하에 다녀와서 왜 그렇게 좋다고 예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 역시 그런 것 같았다. 등을 꼿꼿이 펴고 의자에 붙은 손잡이를 꽉 잡은 채로 밖을 보는 모습에서 나는 그걸 느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사진이나 TV에서만 보던 유럽이라는 곳에 왔음을 더 실감케 해줄 것이었다.


 트램이 왔다 갔다하는 비좁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목적지인 프라하성에 도착했다. 일행들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패키지여행을 하면 선택 관광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총 5개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나는 엄마가 좋아할 1가지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선택하지 않았다. 


 돈이 아까웠느냐고? 아니. 물론, 고성에 들어간다거나 음악회에 참석하는 것도 좋은 경험일 수 있는데, 나는 혹시나 뒤쳐질지 모를 엄마의 컨디션을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여유롭게 골목을 탐방하며 상점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많이 담아주는 편을 택하게 됐다.


 그래서 일행들은 인솔하러 나온 지역의 담당 가이드를 따라 성으로 갔고, 우리는 남았다. 우르르 이동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만 안 가나. 신청했어야 했나.’ 잠깐 생각하고 있는데, 옆을 보니 또 다른 1팀이 남아 있었다.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했던 젊은 부부였다. 


 서울부터 우리를 인솔해 온 담당 가이드는 자유 시간을 주기에 앞서 30분가량 주변을 설명해주겠다며 이끌었다. 


 우리는 프라하성 안으로 이동해 먼저 성 비투스 성당으로 갔다. 비타 대성당으로도 부르는  이 성당은 화려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규모가 상당히 컸다. 뾰족한 첨탑, 건물을 올린 시기에 따라 누렇고 검은 빛의 색깔, 톤의 감이 다르게 보였는데 그것이 건축을 하는 동안의 긴 시간을 담고 있는 것이라 했다. 하나의 건축물을 짓기 위해 세월을 담았다는 설명은 더 깊이 있게 그것을 바라보게 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알폰스 무하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하여 혹했지만, 엄청나게 늘어진 줄을 보고 바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비슷한 디자인의 성당을 여러 번 보았기에 나는 좀 익숙했지만, 엄마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곁눈질을 하며 엄마를 흘깃 쳐다보았다. 


 엄마는 가이드님 설명에 따라 ‘이게 그거에요? 아, 이게 저거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듣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일텐데, 이게 재밌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었다. 설명을 따라 위를 향한 눈과 살짝 벌어진 입이 얼마나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가이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는 건물 위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힘차게 펄럭이는 국기를 보라고 했다. 프라하성 안에는 일부는 현재 대통령 궁으로도 쓰이고 있는데, 깃발이 걸려있으면 대통령이 궁 안에 있다는 표시라고 했다. 


 그리고 프라하성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양 기둥 위에 칼을 들고 몽둥이를 들고 있는 거인 타이탄의 조각상이 있었다. 과거 체코가 탄압을 받았던 당시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아래 깔린 이들이 고통을 받는 체코인들. 위에서 위협하는 타이탄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를 상징한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아픔과 치욕의 역사일 수 있는데 이걸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성 정문에 떡하니 배치해놓다니. 와우.


 해박한 가이드님 덕에 건물 하나하나의 새겨진 의미, 역사 등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자유여행만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패키지도 나름 장점이 있구나. 특히 엄마를 데리고 즉흥적인 여행을 떠나온 내게는 딱이었다. 부담감을 조금 털어내도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성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늘빛이 도는 복장에 오른손에 총검을 들고 각진 자세로 멋지게 서있는 근위병과 함께. 그리고 1시간 남짓하는 자유 시간을 얻었다. 이제부터 엄마랑 나, 둘만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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