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근무를 할 적에 회사 동료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00 씨는 티 없이 자란 사람 같아. 사랑 많이 받으며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고생 많이 안 해봤을 것 같아.”
물론 사람이 겪는 고생과 힘듦이라는 것을 객관화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꽤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면서 살았다. 다섯 식구가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반 지하에서 살아야 했고, 그런 집이 싫어 독립을 했을 때에도 가난을 버티다 못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었다. 돈이 없어도 마음이 행복하면 부자라고 하던데 나는 마음조차 가난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불만이었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늘 질투하며 살았다. 그렇게 질투는 나의 삶의 원동력이자 힘이 되었다.
타인의 것을 부러워하다 보면 가지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렇게 나는 그것을 가져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것들은 가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질투는 내 삶을 더욱 좋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내가 도저히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족이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나는 가족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분명히 친구들과 같이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초중고를 지나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나오니 내 옆에 그들은 없었다. 친구들은 부모를 밟고 점프를 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도 함께 올라가고 싶었지만 우리 부모는 나를 있는 힘껏 띄워 올려 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어느 정도 포기한 체로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미래의 화목한 가족이었다. 다정한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었고, 돈이 많지 않아도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삶은 나에게 행복을 바로 주지 않았다. 여러 번의 만남과 가슴 아픈 이별을 겪고 나니, 결혼이라는 것도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누군가를 질투를 하는 일도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무엇인가를 질투해도 가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마저도 체념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과거의 나에게 민망하리만큼,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면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삶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그냥 그렇게 오고, 또 그렇게 지나간다는 사실은 나이를 먹으며 알게 된 진리 중 하나이다.
2022년을 살고 있는 나를, 타인이 지켜본다면 나의 삶은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나의 삶의 새로운 질투가 생겼는데 그것은 귀여운 아이이다. 최근에 카카오톡을 업데이트 한 지인들의 프로필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출산이나 아이들에 대한 사진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내 옆에 같이 걷던 친구들이 저만치 앞서가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몰려온다. 그러지 말자 다짐을 해봐도 꼭 해야 할 일을 못한 사람처럼 끙끙 댄다. 남들 다 결혼할 때 하지 못하고 느지막이 결혼식을 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는데 또 늦은 것 같은 생각에 질투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져봤자 해결될 것이 없다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가끔은 귀여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보며 질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며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냥 그렇게 되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다.